그림책 에세이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사람은 가끔 별난 행동을 한다. 특히 힘들다고 느낄 때 평소였다면 하지 않을 선택을 한다. 내가 '그림책' '에세이'를 직접 읽고 싶은 책으로 고른 것처럼.
위로가 간절했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이미 벌어진 일은 그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시간은 거스름을 몰라 돌아가기는커녕 착실히 앞으로만 나아가는데 나는 자꾸 과거를 붙들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길게 봐야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읽었던 그림책을 선뜻 고른 것은. 게다가 에세이였다. 자기계발서와 에세이는 다른 영역이라지만, 나에겐 같은 것으로 보여 두 종류 모두 좋아하지 않았다. 긍정으로 점철된 타인의 글이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다.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을 읽은 후, 그래도 작은 의미를 찾았다. 가볍게 술술 읽히면서도 중간중간 깊다고 느끼는 대목 때문에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구나. 나와 다른 듯 닮은 생판 모르는 타인의 이야기가 나름 재밌구나.
책이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표지 때문이다.
나는 노란색을 좋아한다. 어쩌다 좋아하게 되었느냐 물어본다면 아주 어릴 때 기억을 가져와야겠지. 예닐곱 살쯤에 가장 좋아하던 옷이 있었는데 개나리 같은 노란색이었다. 사실 선후 관계는 불명확하다. 옷이 좋아서 노란색을 좋아하게 된 건지, 노란색을 좋아해서 옷을 좋아하게 된 건지, 혹은 그냥 '노란색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좋아한다고 느끼는 건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혼란. 순식간에 머릿속을 헤집어서 책 안을 살짝 열어봤다가 무심코 덮었다. 책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지.
나는 생각이 많다. 그런데 멈추는 법을 모른다. 내 생각을 내가 반박하고, 내 생각을 내가 공감하고, 내 생각에 내가 이유를 붙여야 했다. 이 생각은 왜 그렇고, 저 생각은 왜 저렇고. 딱히 들려주고 싶은 청자는 없다. 그저 끊임없이 생각으로 세상을 정의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 사색을 즐길 줄 아는 멋진 사람쯤으로 보일 수 있지만, 뭐든지 적당한 것이 좋다. 가끔은 생각이 나를 붙들고 놓아주질 않아 쉬고 싶을 때도 쉬지 못하는 기분이 든다.
오래된 습관은 나의 일부가 되어 고치기가 어렵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잡을 수도 없으니 떨쳐내는 법도 몰랐다. 그 기저에는 모든 일에 이유를 각주처럼 달아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왜? 무언가를 하기 싫다면 왜? 누가 좋다면 왜? 누가 싫다면 왜? 이렇게 말끝마다 물음으로 끝나는 사람을 우스갯소리로 '물음표 살인마'라고 하던가.
적어도 좋아하는 색과 숫자에는 이유를 붙이지 않기로 했다. 때로는 '그냥'이 필요하다.
*
이 책은 표지뿐 아니라 내용도 노란색 같다고 느낀다. 예전엔 노란색이 주는 밝은 기운을 좋아했는데 최근 들어 이 느낌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한눈에 봤을 땐 밝아 보여도 은근한 어둠을 가진 색. 이상하게도 노란색에서 검정을 간간이 발견한다. 마치 포토샵으로 검정의 불투명도를 한껏 낮춰서 만든 터라 그 색을 만든 사람만 아는 비밀 같달까.
앞서 말한 것처럼 책 내용도 그렇다. 따뜻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밝지만은 않다. 어두운 면을 긍정으로 덮어서 화사해 보이지만 그런다고 한들 기저에 딸린 어둠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오묘함이 마음에 들었다. 이 오묘한 이야기 중 일부를 사진으로 남겨 두기도 했다.
사진에 담긴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 잠시 책 구성부터 살펴보아야겠다. 작가의 경험과 관련된 그림책이 엮여 하나의 소제목을 이루고, 그 소제목들이 한 챕터를 만들고, 챕터 세 개가 모여 한 책으로 묶였다.
그림책 <수영장 가는 날>은 수영장을 가야 하는 아침이면 배가 아프다고 말하는 어떤 아이의 이야기였다. 이 대목을 읽었을 때 멈칫했다. 나와 똑같은 아이였다.
여덟아홉 살 때였나, 집 근처 수영장을 억지로 다녔다. 다니기 정말 싫었다. 무섭다는 표현이 맞을까. 물이 아니라 큰 소리로 말하는 선생님이 무서웠다. 시끄러운 물소리 때문에 소통하려면 크게 말해야 하고, 공간이 울려서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는 사실은 머리가 훨씬 자라서 알게 되었다. 당시엔 알 턱이 있나. 선생님이 볼 때마다 소리를 지르니 늘 나에게 화난 것 같았다. 매번 수업 시간에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로 가고, 그 칸 안에 계속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너무 안 오니까 다른 아이가 데리러 오기까지 했다.
책 속 아이처럼 함께 해보자고 다정히 말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나도 수영을 오래 배우며 첫 시도의 즐거움을 일찍이 깨달았을까. 그 선생님은 꾀병 피우고 물속에 머리를 박는 것마저 겁내던 학생을 내쳤다. 한숨을 푹푹 쉬며.
그래도 길게 보면 슬픈 결말은 아니다. 성인이 되고, 수영장 공포증을 없애고 싶다는 생각에 제 발로 수영장을 찾아갔고, 서너 가지 영법을 배웠고, 이제는 머리가 물속에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무섭지 않다. 오히려 코로나 때문에 수영장을 가지 못한 올해가 안타까울 뿐이다.
한참 내 이야기를 늘어뜨리고 나니 이게 그림책이 가진 힘이 아닌가 싶다. 사람을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옛 기억을 가져오고, 술술 입이 열리게 한다. 대체로 그림책의 주인공은 어린이들이라 그 나이에서 십 년은 더 지난 지금의 내가 과거보다 성장한 나를 말하는 것으로 나의 추억 되감기가 마무리된다. 꼬꼬마 시절과 비교하는 건 터무니없긴 해도 내가 몸뚱이만 커진 것은 아님을 새삼 느낀다. '예전'이 얼마나 멀던 착실히 자라고 있다고, 나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끝으로, 자신이 만드는 의미가 왜 중요한지 알려주는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게』의 한 대목.
오리는 문득 자신의 주변에 항상 죽음이 존재했음을 깨닫는다.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에 올리는 기뻐한다.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둘은 친한 친구가 되어 가까워졌다. 함께 나무 위에 앉아 연못을 내려다보며 시간을 보내던 둘. 오리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죽어도 세상은 나를 잊고 각자 잘 살아가겠지!' 울적해진 오리의 마음을 눈치챈 죽음이 건네주는 말은 큰 울림을 준다.
네가 죽으면 연못도 없어져. 적어도 너에게는 그래.
우리는 타인에게 죽어도 잊히지 않을 중요한 의미가 되고 싶어 한다. 외부의 것들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중요한 사실을 잊는다. 죽음은 내가 세상을 잃은 결과다. 내가 좋아하던 빵, 내가 자주 쓰던 컵, 내 핸드폰, 내 손길이 닿은 수많은 물건. 내가 그들을 잃듯이 그들도 나를 잃는다. 한 존재가 사라지면서 그 존재와 연결된 다른 존재들도 사라지는 셈이다. 적어도 그 존재에게는.
가볍고 따스한 위로에서 시작하여 조금 깊고 심오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책을 덮었다.
살아 있는 한 나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여전히 풀지 못한 질문을 남기며.
지은이: 라문숙
펴낸곳: 혜다
발행일
2020년 3월 10일
정 가
14,800원
판 형
130*188 | 276p / 올 컬러
ISBN
979-11-96719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