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생도와 미대생의 만남

추억...

by 하랑 Harang

2004년 졸업전시회,

23세 미대생과 육사생도


2000년 12월 겨울이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폭설이

자주 내렸다. 수능을 치른 뒤 점수에 맞춰 대학 입시 전형에 필요한 3~4개의 실기시험을 준비하느라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힘들었던 계절로 기억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싸이월드와 아이러브클럽, 다모임 같은 사이트 활동을 하다가 초등학교 남자 동창이 나에게 쪽지를 보냈다고 알려왔다. 그 동창이 내 연락처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 온 나를 좋아해 등에 낙서를 했던 그 아이, 지금의 남편이었다. 친구가 남편에게 내 연락처를 알려주었다고 했지만 연락이 올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게다가 실기시험과 새벽까지 이어지는 연습 때문에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2001년 3월, 대학 새내기가 된 나는 MT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지역번호 02로 시작되는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처음엔 너무 당황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마지막에 남편은 육군사관학교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물었고, 나는 짧게 대답한 뒤 통화를 마쳤다.

며칠 뒤 만났을 때 왜 그런 질문을 했느냐고 묻자, 그는 내가 1학년 신입생이라 학교 생활에 대한 해프닝을 궁금해할지 몰라 미리 생각해 둔 질문이었다고 했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 때 학교 문제집의 표지 모델이 육사생도라서 자연스럽게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던 미대생이었다.

2001년 봄, 우리는 본격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당시 1학년 육사 생도들은 휴대폰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공중전화와 이메일로 안부를 전했다. 각자 바쁜 캠퍼스 생활 속에서도 도서관에서 들뜬 마음으로 메일을 확인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해 5월, 우리는 처음 만났다.

육사는 봄에는 ‘생도의 날’,

가을에는 ‘화랑제’라는 축제가 있었고

나는 파트너 자격으로 초대받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4년 동안 생도 시절 그가 훈련을 떠날 때마다 일기처럼

써서 건네주던 편지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그 편지들을 다시 펼쳐보면 가끔은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따뜻한 감정이 밀려온다.
이때부터 기다림은 마치 나의 운명처럼 따라다녔다.

만나 있는 시간보다 서로를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한 그해, 철원 신수리와 문혜리에서의 첫 발령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철원 신수리에 내렸을 때,

소위가 된 남자친구가 비포장 도로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넓은 시골 풍경과 스산했던 날씨는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겹쳐 보여 마음이 아프고 부정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날의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다.
서로를 향한 마음은 식지 않았고, 그렇게 이어진 애틋한

만남은 7년 동안 계속되었다. 결국 우리는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었고, 어느덧 16년째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001년 5월, 육사 생도로 미대생이었던

우리는 마흔 넘은 중년의 부부가 되어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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