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이 있었다. 먼 기억 속 대학 시절, 시인의 시집 한 권이 학생들 사이에서 번져갔다. 쉽고 편했다. 한 편 골라 친구들에게 읽어줬다. '시'자만 들어도 시집 살이 시리게 하고 있는 며느리들처럼 진절머리 치던 물리학도 친구들이었는데 '그래도 이 시는 뭔지 알겠다' 고개를 끄덕였다. 한 편 더 읽어달라고 조르기까지 했다.
한동안 그 시집은 나와 한 몸이 되었다. 교보문고에서 샀던 것 같다. 광화문 한 복판 책들의 왕궁에 들어서면 세상을 잊었다. 마음이 허하다고, 지나가는 길이라고 그 왕궁을 매일 찾았다. 가난한 학생은 그 왕궁을 나오면서 항상 빈 손이었는데 그 시집이 다가왔다. 초라한 학생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손을 내밀어주었다. 다른 책들보다 싼 시집들보다도 500원쯤 더 쌌던 것 같다. 밥 한 끼 값을 털어 시집을 샀다.
외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좋아서 읽고 또 읽었다. 그 시집으로 다시 시인을 꿈꾸기도 했었다.
너덜너덜해진 책의 제목을 보고 오빠가 말했다.
"이 사람 등단 시인 아닌 거 알아?"
오빠는 문학계 소식통이었다. 그냥 책이 좋아서 읽는 나와 달리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책들을 읽었다. 거기에 감성과 문학적 재능을 더한 사람이었다. 그런 오빠가 나를 물끄러미 보고는 말했다.
"이 작가, 정식으로 등단한 사람 아니야. 자기 돈으로 책 낸 사람이야."
오빠가 피식 웃었다. 그것도 모르면서 책을 붙잡고 사냐고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 돈으로 책을 낸 작가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등단해야지 정식 작가로 인정하는 문학계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등단하지 못한 자신을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서로에게 익숙한 4지선다형인데 정답을 고르라고 하지는 못했다.
지금이야 자비 출판이 흔한 일이지만 30여 년 전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책 한 권 사기 힘든 대학생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자비로 책을 낸 작가의 시집이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이슈가 되면서 기존 시인들의 비난이 더 심해졌다고 오빠가 덧붙였던 것 같다. 시인들이 요즘 젊은이들의 '가벼움'을 지탄한다는 소리도 들렸던 것 같다.
모든 소리는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좌절했다. 좌절. 그 단어가 적확할 것이다.
내가 좌절한 이유는 무얼까?
첫째, 왜 시를 쓰는데 시인이 아닌 걸까?
둘째, 그 시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데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거기에 더해 왜 그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가벼운 사람들 취급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셋째, 이런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없다는 말인가?
문학적 허영심으로 가득 차 있던 그 시절, 난 시집을 멀리했다.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책 사이에 감춰버렸다. 말할 수 없는 나의 꿈처럼.
하지만 문득문득 시인 아닌 시인이 궁금해졌다. 돈이 그렇게 많나? 그래서 문학계를 놀이터 삼고 싶은 걸까? 화가 났다.
아니면 시를 쓸 수밖에 없을 만큼 힘이 든 걸까? 무의식의 골이 깊어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걸까? 두 눈이 시렸다.
여러 날들을 방황했지만 어린 나는 시인을 끝내 믿지 못했다. 아니, 등단한 시인이 아니면 필요 없다는 썩은 생각이 내 몸속에 기생하고 있었다. 나는 '정식 등단 작가'가 되고 싶어, 그러니 이런 시를 읽으면 안 돼, 정말 말도 안 되는 각성을 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그래서 나는 시인이 되지 못했나 보다.
시인 아닌 시인
시인 아닌 시인은 시를 씁니다
봄 가득 초록을 품고 살듯
온 맘 가득 십니다
꿈 가득 마음을 품고 살듯
두 눈 가득 십니다
시인 아닌 시인은 시로 삽니다
발아래 부스러진 시를 주워
꽃병에 담고
뺨을 어루만지는 시의 손을
두 손으로 감쌉니다
시에게 한 숨 부리고 나면
시는
시인 아닌 시인을 위로합니다
시인이 아니어도 괜찮아
넌 시를 쓰고
난 시가 되고
우린 시로 살 테니까
시인 아닌 시인은 그대로 시가 되었습니다
자기 삶을 고이 접어 시로 피어났습니다
- 소려의 못 된 시 '시인 아닌 시인'
시인 아닌 시인이 참 시인인 것을 알아볼 눈이 그때 내겐 없었다. 그만큼 배울 게 많아 돌고 돌아왔다.
전하고 전하는 소식이 아니면 한 사람의 개인사를 알기 어려웠던 시절, 시인과 시를 믿었어야 했다. 지금은 이름 하나 치면 몇 페이지에 걸친 그 사람의 행적을 찾을 수 있었다.
30년이 넘도록 묻어두었던 이름을 꺼낸다. 많은 이름들이 망각 속으로 흘러들어 갔는데 그분의 이름은 또렷이 떠오른다. 빚진 것이 많은 탓이다.
"조 병 화"
인터넷에서 세 글자를 친다. 명료하게 떠오르는 단어 '시인'. 나는 다시 시인 앞에서 좌절한다. 시인이 53권의 시집을 내는 동안 나는 그를 시인 아닌 시인이라고 내치고 있었다. 진정한 시인에게, 그리고 놓치고 살았던 시에게 무릎을 꿇는다. 배울 게 많은 나는 그렇게 돌고 돌아 제 자리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