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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Oct 18. 2022

브런치 중독

텅 빈 강정


찹쌀 강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찹쌀을 씻어 3, 4일 물에서 발효시켜야 한다. 이때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 아침저녁으로 물을 갈아줘야 한다. 찹쌀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고 손가락으로 쥐었을 때 부스러지면 물기를 빼고 가루로 빻는다.


다음은 찹쌀가루를 반죽해서 밀대로 원하는 모양을 만든 후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려줘야 한다. 다시 3, 4일이 걸린다. 골고루 말리기 위해서 뒤집어줘야 하고 벌레가 알을 치지 못하게 덮개를 씌워줘야 한다. 너무 바싹 말리면 강정이 딱딱하고 덜 말리면 부풀지 않는다.


둘째를 출산한 후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다. 너무 답답해서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생각에 동네 문화센터에서 배운 찹쌀 강정 만드는 과정이다.

이제 산을 하나 넘었다.


적당히 마른 반죽을 잘 달궈진 기름에 튀겨내야 한다.

손가락 마디만 한 반죽을 넣는 순간 반죽은 풍선보다 빨리 부풀어 오른다. 아, 하는 탄성과 함께 강정이 풍선처럼 두둥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 눈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따라가곤 했다.

튀긴 강정은 기름을 잘 털어낸 후 조청이 끓고 있는 솥에 넣는다. 강정은 천천히 조청 속으로 내려앉고 조청은 은은히 강정 속으로 스며든다.

이때 조청의 질에 따라 강정의 맛이 정해진다. 물엿을 쓰면 만들기는 쉬운데 딱딱하고 깊은 맛을 낼 수 없다.

조청에 담겨 있는 시간도 중요하다. 빨리 꺼내면 파삭거리지만 단맛이 덜하고 너무 오래 담가 두면 끈적대고 달기만 하다. 그 시간을 잘 파악해내는 것이 손맛인데 문화센터 선생님 덕에 학생들은 최상의 강정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과정이다. 조청에 버무린 강정을  찹쌀 튀밥 가루에 굴려 서로 달라붙지 않게 한다.


그 맛은 쫀득하고 아삭하다. 한 입 깨무는 순간 빈 속이 탁 터져 오르며 쫀득한 조청과 어우러져 입 속을 가득 채운다.

그 맛이 그리워 집에서 시도 해봤는데 찹쌀 불리는 과정에서 실패했다.


그 후 나는 '속이 텅 빈 강정'이란 말을 들으면 잘못 만들어진 속담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강정은 속이 텅 비어 있어야 제대로 만들어진 강정이었다.

그런데 강정에는 종류가 많았다. 그런 강정들과 구분하기 위해 찹쌀 강정은 찹쌀 유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른 강정들은 찹쌀 강정과 만드는 방법이 달랐다. 쉽고 빠르다.

쌀강정, 깨강정 같은 강정은 재료를 조청에 버무린 후, 커다란 판에 쏟아 밀대로 밀어 납작하게 만든다. 그리고 잠시 식힌 후 칼로 썰어낸다.

이런 강정들에게도 속이 텅 빈 강정이란 말을 쓸 수 없을 텐데. 내 궁금증은 풍선처럼 부풀어갔다. 그러다 시장에서 산 찹쌀 강정과 깨강정을 먹으며 알게 되었다.

속이 텅 빈 찹쌀 강정은 딱딱하기만 했고 깨강정은 보기엔 속이 차 있었는데 씹으니 가벼운 부피만 느껴졌다.

텅 빈 강정이란 말이 가진 의미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늙어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전 카카오 데이터 센터 화재로 브런치가 다운됐을 때 텅 빈 강정을 되새기게 되었다.


브런치 중독, 난 브런치 중독자였다.

나는 내 자신이 의지가 약하고 귀가 얇다는 것을 잘 알아서 중독될 것 같은 일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어린 시절 컴퓨터가 집에 있었지만 오락도 하지 않았고 요즘도 인터넷 세상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다. 인스타도 트위터도 거기다 카카오톡도 잘하지 않아서 친구들이 제발 카톡 좀 보라고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브런치가 다운되고 나서 깨달았다. 난 브런치 중독이었다.

책이나 더 보자, 펼쳤는데 독서록도 브런치에 적고 있었다. 일기도 브런치에 쓰고 있었다.

권총 증후군으로 펜을 오래 잡지 못해 모든 것을 자판으로 누른지 오래였다. 옛날처럼 '한글'을 펴고 일기를 썼는데 레이아웃이 낯설었다. 매일 가던 도서관 내 자리를 누군가에게 뺏겨서 다른 자리에 앉았을 때 같았다. 책도 노트도 다 앞에 있는데 텅 빈 강정 같았다.


남편에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인터넷 같은 거에 중독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나 중독자였네. 허허."

금단 증상까지 겪는 것 같았다. 브런치 잡고 있는 시간을 줄여야 겠다고 다짐해놓고서 브런치가  복구되자마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거 보면 중증 중독자 맞다.


처방전을 만들어야겠다. 일단 브런치 들어오는 시간을 정하고 '한글'로도 글을 써야겠다.

중독이 심하니 처방전은 길어질 것이다.

잘 챙겨 먹고 텅 빈 강정 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

시간을 제대로 들이고 재료를 잘 골라 맛있는 강정을 만들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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