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려 May 24. 2022

내 동생은 아기 공룡


둘째가 3살쯤 되었을 때였다. 한동안 동생 타령을 했다.

"동생 갖고 싶어요, 동생 낳아 주세요."

동생이 마트에 가면 파는 인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졸라댔다.

어른들이 셋째를 바라실 때라 안된다는 말도 못 하고 나도 슈퍼에 가면 파는 과자라도 되는 것처럼 '나중에'를 외쳤다.

하루는 안 되겠다 싶었던지 당장 동생이 없으면 안 될 것처럼 내 뒤를 쫓아다니는 둘째를 첫째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둘째가 뛰어나오면서 말했다.

"엄마, 엄마, 언니가 그러는 데요. 동생은 엄청 귀찮은 거래요."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사람처럼 둘째가 쫑알댔고 그 뒤로 '제가 처리했습니다, '하는 표정으로 첫째가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동생은 귀찮은 거, 귀찮은 거, "하면서 뛰어다니는 둘째를 보면서 나는 정말 '웃펐다.'


세월이 흐르고 흘렀는데 요즘 다시 둘째가 동생 타령을 한다. 언니가 분가하고 나니 많이 외로운가 보다.

"동생 갖고 싶어요."

"미안하지만 이제 아빠, 엄마 동생 못 낳아준다."

남편이 농담을 실어 진실을 말하자 둘째가 대답한다.

"걱정 마세요, 이젠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대학도 졸업하고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는 있는 아이가 그런 소리를 하니 괜한 상상의 날개가 펴졌다.


둘째가 자기보다 두세 살 어린 '처자'를 데려와서 인사를 시키며 말한다.

"인사드려라, 네 부모님이다."

'처자'가 무릎을 꿇고 둘째가 고개를 숙인다.

"아빠, 엄마. 제 동생입니다. 앞으로 잘 키워주세요."

의자매나 의남매 하나 생기면 좋기도 하겠다. 내가 동생이 있어서 아는 데 동생은 귀찮기도 하지만 귀엽기도 하니까.



 

며칠 전 동생이 가족 톡에 뉴스 기사를 올렸다. 회사에서 행사를 했단다. 조카가 캡처해 놓은 사진 속에 윤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보였다. 가족 톡에 왜 이런 사진을 올렸지? 했는데 가만? 가운데 있는 아저씨 하나가 익숙하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사진을 확대해보니 동생이었다.

"아이고 귀여워라, 내 동생이었네."


그런데 귀엽다고? 사회생활하고 있는 동생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객관적인 눈이 잠시 작동했다.

동생은 키가 182 센티미터에 살이 쪄서 네모난 몸에 네모난 상자를 얹어 놓은 것 같다. 가수 산들이 네모난 상자라는 뮤직비디오에서 상자를 쓰고 나와 뒤뚱거리는데 그때마다 나는 동생이 생각난다. 누나, 하고 다가올 때면 육식 공룡이 쿵쿵쿵 뛰어오는 것처럼 울리던 땅도 떠올랐다.


나랑 세 살 차이가 나는 동생은 어려서부터 키가 컸다. 네 살 쯤부터 이미 나보다 컸던 것 같은데 병약해서 부모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내 존재가 눈에 가시였나보다. 누나, 누나 하며 들러붙을 때도 많았지만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빠지면 '우 씨, 우씨' 거리면서 주먹을 들고 내 앞을 막았다. (물론 동생은 한 번도 그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 무섭지는 않았지만 귀찮았다. 

엄마는 동생이 자꾸 '까불면' 한 번 따끔하게 혼내주라고 하셨다. 일곱 살 난 나는 그 '따끔'의 의미가 궁금했는데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날도 동생이 내 앞에서 주먹을 들고 '우씨'거릴 때였다. 그날따라 내 앞을 비키지 않았다. 나는 손을 들었다. 주먹으로 때려봤자 동생 얼굴에 콩 하나 던지는 것 같아 약한 짐승이 몸을 부풀리 듯 손바닥을 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난 손가락 힘이 세다. 식구들이 나보고 모든 힘이 손가락에 몰려 있느냐고 한다. 남편은 등 좀 주물러 달라고 했다가 아프다며 도망을 갔고 눈 좀 만져 달라던 딸은 눈가가 더 욱신거린다며 벌건 눈으로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의 손가락 힘을 몰랐던 어린 나는 그런 손가락 힘에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공놀이로 단련된 손목 스냅을 이용해서 동생의 뺨을 내려쳤다, 아니 올려쳤다. "짜아악."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졌다. 식구들은 놀라서 아무 말 못 했고 엄마는 다시는 따끔하게 혼내주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 후로 동생은 내 앞에서 주먹을 들지 않았다. '우씨'하고는 사라졌다.


"누나는 키가 왜 이렇게 작아? 5 센티만 더 크지?"

사춘기에 접어든 동생은 크긴 하지만 자기보다 작아진 형과 함께 나를 사이에 두고 '5센티만 더 커라, 더 커라' 주문을 외었다. 하지만 세상 넓은 지도, 세상 높은지도 모르던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숨쉬기 운동만으로도 살기 힘들었다. 

자신이 내 간식을 다 뺏어먹어서 그 5센티 미터가 크지 못했다고 생각하나? 동생은 나를 만날 때마다 맛있는 것들을 사 주고 만들어준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세상이 넓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알아버렸다는 것...


부모 눈에 자식은 늙어도 얘기라더니 몇 년 전 동생 집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가 생각난다. 잠결에 쿵쿵쿵 소리가 들렸고 거대한 그림자가 나를 덮었다. 놀라 눈을 떴는데 '잘 잤어?' 하는 사람이 동생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쿵쿵쿵 소리는 콩콩콩으로 바뀌었고 거대한 그림자는 작고 작아지더니 거기에 아기 공룡 둘리 같은 동생이 서있었다. 넉살 좋은 웃음과 언제든 '깐따삐야' 하면서 내 키를 키울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눈에 동생은 늙어도 아기 공룡이었다. 덩치 큰 아기 공룡.



객관적인 눈도 잠시, 카톡 사진 속에는 늙어버린 동생이 있었지만 나는 동생이 여전히 귀여웠다.

'내 동생, 열심히 살고 있구나.' 안쓰럽고 대견했다.


동생아, 너는 이 글의 존재도 모르겠지만 누나가 많이 사랑하는 건 알지?


아무래도 조만간 아기 공룡을 만나러 가야겠다. 보고 싶다. 아기 공룡의 짝꿍도 새끼 공룡들도...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중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