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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Apr 29. 2023

낙하


도시의 빗방울은 두렵다

떨어질 곳이 아득하다

세상 구경 한 번 못하고 검은 하수구로 직행할 수도 있다

아니야, 아냐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젊은 여자의 검은 머리에 떨어질지도

음식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중년 남자의 희끗한 머리카락으로 스며들지도 몰라

아침에 엄마가 쥐어준 유치원생의 노란 우산 위에서 한바탕 미끄럼틀을 탈지도…,


도시의 빗방울은 모른다

흙으로 스며드는 법을

그것은 아주 운 좋은 몇몇 친구들만의 몫이지

누군가 베란다 난간에 내어놓은 화분에 떨어지는 것은 수백만 분의 일의

일이야

까만 흙이 배를 불린다

물을 찾아 나선 히야신스의 하얀 뿌리가 흙을 어루만진다

그런 빗방울만이 뿌리로 스며들고

뱃속의 생명을 깨우고  새벽 햇살에 꽃을 피우지


낙하

어디서 부서질까

어디로 스며들까

도시의 빗방울은 두렵다


토도독  톡톡  톡톡 톡 토톡톡 톡톡


아스팔트에 부서지는 수많은 빗방울들

손을 뻗어 받아보지만

빗방울들의 비명소리


부아앙 치킨배달

오토바이 바퀴에 부서진다

모퉁이 웅덩이에 모인 빗방울들이 신입에게 한 수 가르친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

한번 들어오면 다시는 못 나가지

낙하

토톡

바라는 것이 있다면 햇살 한 줌 받아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

어림도 없지

여긴 해가 들지 않거든

하늘을 가린 회색 건물들

저기엔 주인이란 게 있다네

토톡

도시의 빗방울은 두렵다

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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