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 동네 동물 연대기 6

by 소려


세 녀석이 쪼르륵 앉아 있다. 야옹이, 똘똘이, 복실이다. 음식 냄새를 맡고 온 녀석들이 웃고 있다. 고양이도 개도 표정이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조르지도 않는다. 나란히 앉아 웃기만 한다. 생선 뼈와 돼지 뼈를 분배해 준다. 남의 것을 욕심내지도 않는다. 제 것을 먹는다. 웃으면서.


이제는 세 녀석 다 이곳에 살지 않는다. 가끔 들리던 소식도 그나마 사라지고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에 대해 묻지 않는다. 그 녀석들은 어디로 갔을까?


처음으로 사라진 녀석은 똘똘이였다. 죄목은 풍기문란! 태어난 지 5개월밖에 안 됐다는 녀석의 행태가 좋지 않았다. 동네를 휘젓고 다니면서 분위기를 흐렸단다. 어린 녀석이 암컷이면 모두 좋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좋고 싫고도 확실한 녀석이었다. 우리 옆에 집을 짓는 아줌마가 내 옆에 서자 곁에 있던 똘똘이가 짖는 소리도 아니고 구시렁대는 듯 이상한 소리를 내며 멀찍이 떨어져 째려본다.

"왜 저래?" 내가 무심결에 말을 뱉으니 옆의 아줌마가 "쟤, 나 싫어해요." 한다.


집을 짓던 중이라 일주일에 한 번씩 걸음을 했다. 석 달 후인가, 똘똘이가 보이지 않았다. 물으니 원래 주인에게 돌려보냈단다. 더 이상 봐줄 수 없는 짓을 했단다. 무슨 짓일까 잠시 호기심이 일었지만 묻지 않았다. 능글맞게 나를 잘 따랐었는데 잘 지내겠지, 마음을 접었다.


집이 들어서면서 동네가 바빠지고 사람들 마음이 변해갔다. 유유자적 일상을 즐기던 야옹이와 복실이도 불안해 보이기 시작했다. 이사 온 후 한 달쯤 지났을까, 2층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데 야옹이의 울음소리가, 정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여태까지 들었던 야옹이 소리와 달랐다.


야옹이는 고양이가 아니라 개 같았다. 요즘 '개냥이'라는 말이 있던데 야옹이를 만나고 나서 '개냥이'가 이런 거구나 알게 되었다. 야옹이는 사람을 보면 다가간다. 만지라는 듯, 아니 만지라고 주위를 맴돈다. 안 만져주면 자기가 와서 몸을 문지른다. 이야기 나누던 사람들의 무릎 밑은 야옹이 털로 범벅이 되곤 했다.


야옹이가 내 기척을 느끼고 달려왔다. 야옹아, 무슨 일 있어? 물었지만 야옹이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풀 사이에서 빠져나온 야옹이를 보는 순간, 집으로 뛰어 들어가 남편을 찾았다. 야옹이의 오른쪽 앞 발이 덜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이 마당에 나가 야옹이를 살피고 들어왔다.

"덫에 걸렸나 보네, 뼈까지 부러진 거 같은데."

야옹이의 주인아주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여러 사정이 겹쳐 시내에 나가 살기 시작한 아주머니가 놀라 달려오셨다. 병원에 갔지만 야옹이는 끝내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새 집을 짓기 위해 집을 헐고 터만 남은 자리에 야옹이와 복실이가 덩그러니 남겨졌다.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번갈아 오시긴 했지만 점점 발길이 뜸해지셨다. 동네 사람들이 밥을 챙겨주었지만 야옹이와 복실이도 눈칫밥 먹기가 힘들어졌다.

야옹이와 복실이에게 밥을 주자 멍진이가 질투를 하기 시작했다. 야옹이가 아는 척하며 절뚝절뚝 내게 다가오는데 멍진이가 잡아먹으려는 듯 달려들었다. 큰 일 나겠다 싶어, 야옹이를 쫓았다.

"저리 가, 야옹아, 이리 오면 다쳐."

변해버린 내 모습에 많이 놀랐겠지. 한참을 나와 눈을 맞추며 야옹거리다가 절뚝절뚝 뒤돌아갔다. 길 끝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던 야옹이의 뒷모습이 아프게 남았다.


이미 사라진 녀석들을 사진에 담지 못했다. 그저 그리워할 뿐.

사장님 내외가 키우시던 개는 똘똘이, 복실이 외에도 순실이가 있었다. 인가가 드물어서 멧돼지들이 가끔 내려오는 곳이라 집을 둘러 가며 개를 많이 키우셨다. 모든 동물들을 풀어 키우셨는데 유독 복실이는 항상 묶여 있었다.

뒷마당 구석에 묶여 있던 복실이는 우리가 간식을 들고 가면 너무 좋아하며 말뚝을 뽑을 듯이 뛰어올랐다. 덩치가 복실이보다 크긴 했지만 사나워 보이지는 않는데 왜 묶어 놓으셨을까? 물으니 너무 말썽을 피운단다. 청계를 낳는 닭을 20마리쯤 키우셨는데 그중 12마리를 순실이가 잡아먹었단다. 복실이도 한 두 마리, 그리고 매가 나머지를 처리했단다.

자연에 동물들이 순응한 것이겠지만 순실이는 자기 터전을 넘어서서 온 동네를 쑤시고 다니며 말썽을 피웠단다. 그때 최순실 사태가 터졌고 둘이 너무 닮은 거 같아 순실이라고 이름 지으셨단다. 몇 주 후에 갔을 때 순실이는 다른 독방으로 이송되었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복실이는 점점 초라해졌다. 윗집에 놀러 가면 문 앞을 지키며 꼬리를 흔들던 하얀 털의 복실이. 믹스견이라고도 하고 잡종이라고도 하는 시골 어디를 가나 한 마리쯤 있을 것 같은 개였다. 나이는 이미 10살이 넘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볼 때는 저 녀석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나 궁금해지곤 했다. 한 번은 복실이 앞에 간식이 너무 많은 거 같아 다른 개들 나눠주려고 집으니 살짝 내 손목을 물었다가 놓는다. 내 거예요. 애교 섞인 고집이 귀여웠다.


하루는 멍진이에게 쫓기던 복실이가 살짝 물렸다. 남편이 얼른 멍진이를 붙잡았는데 복실이는 보라는 듯 드러누웠다. 깨갱깽. 멍진이 앞에서 한번 뒹굴고 나를 쳐다보며 아파 죽겠다며 뒹굴고, 깨갱대다가 생목으로 꺽꺽거린다. 진정한 허리우드 액션의 대가로군. 개껌을 하나 갖다 주자 그제야 일어나 껌을 물고 유유자적 제 집으로 향했다. 멍진이를 한번 노려 보고 꼬리로 멍진이 코를 한번 털어준 뒤에 엉덩이를 실룩거리면서. 그때까지도 남편에게 목덜미를 잡혀있던 멍진이는 약이 올라서 꺽꺽댔다. 멍진아, 네가 잘못했어. 나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복실이 뒤태가 얄미웠다.


지키던 집이 허물어지고 땅 마저 다른 사람들에게 팔린 뒤 복실이의 위세는 완전히 꺾였다. 절뚝거리던 야옹이마저 사라진 후 복실이는 우리에게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고 마당 주위를 돌며 멍진이 약을 올리다가 사라졌다. 사람처럼 개도 외로움에 지쳐 가는구나. 달아나면서 나를 쳐다보던 복실이는 더 이상 예전의 복실이가 아니었다. 애교도 어리광도 , 그리고 허리우드 액션도 없었다.

동네에 하나둘 큰 개들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키우는 개한테 복실이가 다칠까 봐 두려워 복실이를 쫓았다. 옆 집 개 딸기에게 놀라 달아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복실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원래 주인 부부께서 데려가셨나 기대했는데 들리는 소리가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