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과 시월 사이

by 혜담


9월 16일

그날은 나에게 매우 역사적인(?) 하루로 기억될 날이다. 앞으로도 쭈욱~!

엄밀히 따지자면 그보다 1주일쯤 전이었을 거다.


그날 이전의 나에게 'brunch'는 breakfast와 lunch의 합성어로서, 주말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서 토스트나 와플, 소시지 혹은 베이컨에 달걀 스크램블 그리고 과일과 커피로 간단히(?) 해결하는 한 끼 식사였다, 물론 분위기 좋은 브런치 카페에서 즐기는 맛있는 식사도 포함된다(거의 가지는 않지만). 부끄럽지만 'brunch'라는 플랫폼이 있는 줄도 몰랐다.


운명의 날, 나는 모처럼 한가해져서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고 집 근처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북 카페에서 책 구경을 하고 있었다. 평일 그 시간에 그곳은 늘 사람이 적어 조용하고, 푹신하고 편안한 소파와 테이블도 비어있어서 내 차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끔 시간이 나면 책 구경하러 가곤 한다. 비록 일반 서점들이 갖추고 있는 어마어마한 도서량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책이 진열된 모습에서 마치 설치예술을 보는 듯한 미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좋다.


책들은 여러 방법으로 진열되어 있는데, 꽤 높고 흰 벽 위에 부착된 투명 케이스에 한 권씩 들어 있거나 꽉 채우지 않은 책장에 소량씩 자유롭게 꽂혀 있고, 테이블 진열대 위에는 서로 사이를 두고 오와 열을 맞추어 반듯하게 누워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각각의 책들이 매우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글을 쓴 작가의 노고와 그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수고, 그리고 책의 메시지 모두가 존중받고 있다는 그런 느낌말이다. 그래서 그곳을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게다가 꽤 괜찮은 브런치 카페가 한 공간에 있다!


아무튼 그날, 한 책장과 그 아래 진열대에서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을 몇 권 발견했다. 관심 있는 분야이다 보니 펼쳐 읽은 자국이나 흠이 생기지 않도록 한 권 한 권 조심히 살피며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그들 가운데서 '브런치 작가'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브런치 작가라니, 대체 뭔고?


세상에는 먹는 브런치뿐 아니라 쓰는 브런치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브런치 작가에 대해 폭풍 검색을 하고 강한 끌림으로 콩볶듯 지원하였다.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9월 15일 오후 4시 16분에 드디어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메일을 받았다. 너무 기뻤다. 처음 쓰는 글은 술술 써졌고 다음 날 16일 첫 글을 올릴 수 있었다. 새해 첫날, 올 한해 꼭 이루려 했던 것들 속에 브런치 작가는 없었는데, 지금 첫 '브런치 북'에 들어갈 마지막 글을 쓰고 있다니, 사람 앞 일은 참 알 수가 없다.


사실, 첫 브런치 북의 목표는 글 열다섯 개였다.

하지만, 매일 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글의 소재와 주제를 생각해 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할 일도 많고 피곤하고 졸렸다. 역량은 당연히 부족하다. 내가 구독하는 몇몇 작가님들의 경험과 성찰이 내가 쓴 글에는 없어 보였다. 독서가 많이 부족하고 여태껏 살면서 이 정도 깨달음밖에 못 얻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마음에만 두었지 목표를 가지고 실제로 꾸준히 글을 써보는 일도 처음이니까. 더 많이 읽고 생각하고 겸손하게 세상을 보아야할 필요를 날마다 실감한다.


결국 목표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열두 개의 글이 되었지만 내 두 번째 책을 만든 것만으로 나를 대견해 하자고 마음먹었다-첫 책은 한참 전, 에드가 엘런 포우 단편집을 영한 번역한 것인데 졸작이어서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다-.


이번에는 진짜 나의 이야기이다. 이 사실이 기쁘다.' 누구나 시작은 이렇게 하는 것 아닌가?'

부족하게!


'구월에서 시월' 사이, 열심히 살아온 나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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