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한 젊은 시절을 미리부터 붙잡아 두고 싶은 자의 푸념
회사 점심시간은 공식적으로는 12시부터 1시까지이고
우리 팀은 대체로 11시 45분이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밥을 먹으러 간다.
보통 나는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자리에 들러 지갑도 챙기고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오면 12시 30분쯤 된다.
밥을 늦게 먹었거나 하는 날에는 12시 40분이 되어 있기도 하다.
어느 날엔가도 회사 앞 작은 사거리 즈음에서
시계를 확인하니 12시 40분쯤 되어 있었다.
늘 밥을 같이 먹는 동기 언니가 내게
아직 어디든 갈 수 있는 시간인데, 오늘은 어디를 가면 좋을까?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내 인생이 언제나 점심시간의 12시 40분이었으면 좋겠어.
어디든 갈 수 있는 시간. 그런데 그때가 점점 얼마 안 남은 것 같네.
우리는 지금 상당히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도, 항상 내일이면 더 행복한 곳, 더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탁자 위에 꺼내놓고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절대 어느 한 가지에 마음을 완전히 쏟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이건 위험한 짓이다. 항상 한 발을 문 밖에 놔둔 상태로는 어떤 장소도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
- 에릭 와이너, 『행복의 지도』중에서
인턴 기간을 포함하면 입사한 지 어느덧 만으로 일 년이 조금 넘었고,
그럼에도 아직까지 회사 전 직원을 통틀어 가장 어린 나이이다. (다른 부서에 새로 들어온 신입들조차 나보다 나이가 많다.)
무엇이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나이. 도전에 큰 위험이 따르지 않는 나이. 나이가 무기인 나이. 그렇지만 곧 사라져 버릴 무기이다. 내 것이 아니라 잠깐 내 뒤를 스쳐가는 조명 같은 것일 뿐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해 느끼는 생각을 적었다가
다시 지웠다. 이건 진짜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 간직해 둬야 할 것 같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이 글을 시작했다가
나만 볼 수 있는 부분을 지워버린 지금은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이다.
불가피하게 우울하다. 저항할 수 없는 기분좋지않음 상태이다.
유병재 씨 인스타에서 아 나 내 눈치 엄청 많이 봄 이라는 글을 예전에 보고 웃겨서 캡처해둔 것 같은데
지금 내가 딱 그렇다. 내가 내 기분 맞춰준답시고 얼굴에 팩도 해 주고 몸도 깨끗하게 씻겨 주고 집안도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그래도 매일 같이 뭐라도 쓰려고 노력하니까 부정적인 생각이 바닥을 뚫는 깊이가 좀 얕아진 것 같다.
김사월 씨가 콘서트에서 말한 것처럼
나 역시도 무엇에 대해서든지간에 아주 심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인간인 것 같다.
조해주의 시처럼, 걱정 없이는 외롭다는 사실을 너무 자주 느껴버린 탓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다시 한번 휴학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모범 답안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대학 졸업까지는, 내가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인생의 방향성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의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학교가 주는 안락함 밖으로 완전히 내던져진 지금에서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좀 더 부릅뜨게 된 것 같다.
눈에 힘이 들어갈수록 느껴지는 건 불쾌한 안락함보다, 차라리 더 명료하고 구체적인 괴로움이 더 낫다는 것이다.
내가 얼마를, 왜 갚아야 하는지 상세하게 알려주는 카드 내역서처럼 앞으로 내가 무엇을 감당하고 견뎌야 하는지 비로소 터득해 가는 느낌이다.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디에 있더라도 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중에서
모든 걸 바쳐도 좋을
진짜 내 자리를 찾고 싶다.
그것이 스물 다섯 여름의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관심 있어하는 주제이다.
(스물넷보다는 발전적인 고민에 다다른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어제는 새벽 다섯 시가 다 되어서 잠들었더니
몸의 근육들이 좀 아프다. 오늘은 어제보다 일찍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