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어스] 위대한 질문 글쓰기 챌린지 - 채근담

1일차 <한>

by 혜글


취미로 즐긴 독서가 언젠가부터 스트레스 해소 출구가 되었다. 장점은 독서를 하다보면 어느새 몰입하게 되어 받았던 스트레스를 쉽게 날려버린다는 점. 단점은 그렇게 하기 위해 무리한 독서로 나를 갈아 넣는다는 점. 그래도 나의 피로와 맞바꾼 독서로 인해 모든 좋은 점을 습득할 수 있으니 둘의 거래치곤 나쁘지 않다. 이번에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마구잡이로 찾기 시작한 '책 쇼핑', '서평단 신청' 을 하던 중에 인별이야기에서 우연히 #필로어스 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고전, 독서, 글쓰기, 이야기


이 키워드들은 내 마음을 낚아채기에 아주 수월했다. 망설임 없이 신청하고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나에게 #고전 은 항상 끝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숙제와 같은 것이었고 #독서 는 마음의 안정을 주는 요소였으며 #글쓰기 는 쉬고 있으나 열망 가득한 무언가, #이야기 는 새로운 기대감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서양에 《탈무드》가 있다면 동양에는 《채근담》이 아니던가. 이렇게 필로어스와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튜터님이 올려주신 카드의 첫 장을 보고 '한이 맺히다.'의 그 한(恨)이 떠올랐다. 그러나 사람은 익숙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다시 보니 한가로움을 나타내는 한(閒) - 이하 '달의 한자' - 이었다. 그런데 조금 어색하다. '한가할 한'의 한자는 문 사이에 달이 있는 형태보다는 주로 나무가 있는 형태(閑) - 이하 '나무의 한자' - 가 많이 쓰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굳이 달의 형태인 이유가 무엇일까?



두 한자 모두 '한가할 한'자는 맞다. 다만 함께 쓰이는 뜻과 음을 다소 다른데, 먼저 우리에게 익숙한 나무의 한자는 '막을 한' 자로도 쓰인다. 닫힌 문 사이에 나무를 배치해서 문이 열리지 않게 막은 모습을 표현한다. 현. 바리케이드, 구. 목책 정도면 이해가 빠를까. 그리고, 이러한 외부와의 단절로 인해 나만의 시간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며 '한가하다'라는 뜻이 생겼다고 한다. 그럼, 이제 《채근담》에서 쓰인 달의 한자의 유래는 어떻게 될까? 달의 한자는 다른 의미로 '사이 간'으로도 쓰인다. 닫힌 문틈 사이로 달빛이 새어 나오는 모습을 표현한다. - 우리가 또 잘 아는 '사이 간(間)' 자는 아마 햇빛이 새어나오는 것이겠지. - 왜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시간에 틈이 있다는 의미로 '한가하다'라는 뜻이 생겼다고 한다.


예로부터 군자(君子)란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을 뜻한다. 그러한 군자는 의를 따르고 겸손하고 도덕적이며 자신을 수양하고 타인을 이롭게 한다. 결국 군자의 이런 마음은 자기 자신에게도, 주변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에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아낌없이 드러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재능은 왜 숨기듯이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군자의 반대인 소인(小人)은 도량이 좁고 간사한 사람이므로 군자의 재능을 시기질투할 것이다. 아무리 군자라 할지라도 그 역시도 사람인지라 맹목적인 공격을 받다 보면 자기수양으로 만들어진 정신이 깨질 수도 있다. 그렇게 군자가 흐트러지게 된다면 결국 타인에 대한 미움이 자랄 수도 있고 되려 군자가 소인이 될지도 모른다. 혹은 반대로 군자의 재능을 추앙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그것은 또 군자의 욕망을 자극하거나 권력이 우선시될 수 있기 때문에 - 중세시대 종교처럼 - 조심해야한다. 어찌됐든 이러한 군자의 재능을 탐하는 이들로 인해 그들의 근본이 흔들릴 수 있기에 그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재능은 숨기듯 해야 하고, 또한 그래야하는 것이 그들이 이야기하는 겸손의 미덕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군자들에게 아쉬워하거나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대들의 재능은 아무리 숨기고 문을 걸어 잠가도 그 마음이 너무 선하여 만천하에 달빛처럼 새어 나오기 마련이기에 그저 그대들이 원하고 생각하는 뜻대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그저 튜터의 질문을 보고 한자가 궁금해졌고, 굳이 왜 같은 두 한자 중 달의 한자가 쓰였을까 싶어 찾아본다는 게 질문까지 이어져버렸다. 그리고 왠지 군자의 말씀은 나무로 막힌 문 앞에서 만나기보다 문 틈사이 새어 나오는 달빛에 의존하여 떠올려보는 것이 좀 더 낭만적이지 않은가?


<튜터의 추가질문>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하며 주셨지만 꽤나 심오했다. 그리고, 잠시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던 질문이었다.


Q. 마음과 재능이 다른 건가요? 그러니까, 성심, 성품도 타고난 재능이 아닐까요? 아니면, 우리는 내면의 재능과 기술, 언변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요? 예를 들면, 너무 성심이 착한 사람이 정말 따뜻한 상위 1%의 언어와 공감을 말로 구사할 줄 아는 것처럼 말이죠. 마음이 정말 밝고 아낌없이 드러난다면, 재능이 되어서 흘러넘칠 텐데, 어떻게 숨길 수 있을지도 궁금해져서 바보 같은 질문을 던져봅니다.


'재능이 되어서 흘러넘칠 텐데' 이 말에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다. 조금 더 생각을 해야 하는 글쓰기구나! 나는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A. 저는 마음과 재능이 동일선상에 있지는 않다고 봅니다. 마음은 본질이라고 보고요. 그 본질을 다듬어 나타내는 어떠한 "방법"이 재능이겠죠. 예를 들어, 너무 성심이 착한 사람이 따뜻한 언어와 공감의 말로 구사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그것을 그렇게 전환할 수 있는 능력, 곧 "언어적(방법)"인 재능이 있는 것이라고 보기에 저는 별개라고 생각해요. 다시 또 말하자면, 동일하게 성심이 착한 사람들이 여럿 있다고 했을 때, 그들이 나타내는 모습들은 다양합니다. 언어일 수도, 행동일 수도, 아니면 나타내지 않을 수도 있어요. 마음을 드러냈을 때 흘러넘치는 재능은 마음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흘러넘치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


...라고 답했는데, 이게 조금 설명하기가 까다로워 의미가 잘 전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내 답변을 읽어보다 오류(?)를 발견했는데, 저 답변에 따르면 마음은 재능이 될 수 없다고 단정 지어 버린 것이다. 못다 한 질문과 답변은 다음 세미나에서 풀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