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은 제목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이상의 제목은 떠오르지 않는다. 제목부터 실패다. 다자이의 작품들은 〈황금풍경〉, 〈겨울의 불꽃놀이〉, 〈등불 하나〉처럼 곱씹을수록 울림이 있는 제목들이 많은데, 다자이 문체로 다자이 생가 여행기를 쓰겠다면서 제목 하나 다자이 오사무의 글처럼 짓지 못하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싶으면서도, 다자이 문체로 다자이 생가 여행기를 쓰려고 하는 마당에 첫 시작부터 다자이의 문장 중 가장 유명한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와 비슷한 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적격인 것도 같고, 아무튼 쓰기로 했으니 써 보자.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인간 실격》의 첫 번째 수기를 시작하는 이 문장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이 무엇인지 아는 분이 있는가? 모르긴 몰라도 첫 번째 문장을 아는 사람보다는 그 수가 확연히 적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 실격》의 내용을 기억하시는 분은 더 적을 것이고, 다자이의 다른 대표작인 《사양》을 읽어 본 분이라거나, 내가 이 여행기에서 오마쥬하려고 하는 다자이의 향토 여행 소설인 《쓰가루》를 아는 분까지 간다면 말할 것도 없다. 다자이를 자세히 아는 분이 적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 글을 쓰는 내 개인적인 문제다. 나는 제목에서부터 당당히 내가 다자이 오타쿠라고 밝혔는데, 이 오타쿠라는 족속은 자신이 열중하는 주제에 지나치게 깊이 파고드는 나머지 대중과의 거리를 가늠할 줄 모른다. 한국에서 알려진 '다자이 오사무'는 어느 정도일까?
다자이 오사무의 문체라고 하면 소설에서의 다자이 문체와 수필에서의 다자이 문체가 다르고, 다자이는 다작(多作)한 작가라서 27세에 첫 작품집 《만년》을 내고 이제 자신은 송장이나 다름없다고 말했으면서 각 권 300쪽이 너끈히 넘는 전집이 10권까지 있는지라 초기와 후기 작품의 문체도 다르다. 그러면 그 중에서 어떤 문체를 택해야 할 것인가. 일단 초기 소설 문체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다음이 문제인데, 이 글은 수필이자 여행기이니까, 다자이의 수필 문체를 택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쓰가루》를 오마쥬한다고 했으니 그 즈음 문체를 택하면 좋을지……. 이쯤하면 독자 분들은 "그런 게 대체 무슨 상관이냐! 그냥 적당히 다자이 같은 문체로 써라!"라고 하겠지만, '적당히 다자이 같은 문체'는 또 뭐란 말인가. 이게 오타쿠의 문제다. 적당히 다자이 같은 문체라는 게 뭔지 모른다. 짐작은 할 수 있다. 《인간 실격》이 적당히 떠오르는, 자기를 비하하는 느낌이 있는, 약간 자포자기한 근대 일본 남성이 생각 많게 써 내려간 글줄을 보면 사람들은 다자이 같은 문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있는데, 나는 《인간 실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딱 두 번 읽었다. 그리고 자세한 내용은 모조리 잊어버렸다.
《인간 실격》을 좋아하지 않는 다자이 오사무 오타쿠라. 뭐니뭐니해도 《인간 실격》은 다자이의 대표작이지 않은가. 한 작가의 대표작을 좋아하지 않고, 그 내용도 거의 기억하지 않는 팬이라니, 그러면 이 사람은 다자이의 무엇을 좋아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할 법한데, 《인간 실격》 빼고는 다 좋아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다자이는 《인간 실격》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다자이와 여러분이 아는 다자이 사이에는 꽤 간극이 있는 셈이다.
다자이는 우울한 소설가일까? 그런 편이다. 다자이는 염치없는 인간인가? 아마 다자이 본인도 동의할 것 같다. 다자이의 문학에서 그려지는 남성은 구제불능인가? 《인간 실격》을 읽은 여러분은 알겠지. 하지만 다자이의 작품에는 사랑과 다정함과 심약함이 있고, 거기서 느껴지는 인간애가 있으며, 아무리 해도 잘 살아지지 않는 삶을 살아가 보려는 발버둥이 있다. 그리하여, 그럼에도 살아가며 열 권이나 되는 작품집을 남길 만큼 쓰고 썼다. 다자이를 나와 같은 맥락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자이의 문장으로 꼽는 것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죽을 생각이었다. 올해 설날, 옷감을 한 필 받았다. 새해 선물이다. 천은 삼베였다. 회색 줄무늬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여름에 입는 옷이리라. 여름까지 살아 있자고 생각했다.
다자이 오사무, 〈잎〉 (1934)
고통스러운 삶. 그러나 타인에게서 문득 찾아온 호의. 거기서 섬세하게 느끼는, 희망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가느다란 사랑, 연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독자가 느끼게 되는 비애. 인간애. 나는 다자이의 작품들에서, 그리고 다자이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자이 오타쿠로서, 이런 점이 세상에 영 알려져 있지 않은 점이 억울한 나머지 한때 나는 대중을 상대로 "제발 《인간 실격》 말고 다자이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 주세요"라는 요지의 다자이 오사무 작품 및 작가 홍보 글을 쓰려고도 했다. 쓰지는 않았다. 아직도 좀 쓰고 싶기는 한데, 다자이 오사무도 자기 수필에서 "내가 이러이러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안 썼다."라는 소리를 했으니까 이것도 그 비슷한 걸로 봐 주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 실격》을 쓴 작가이기도 하고, 영 별로인 여성 편력을 지닌 작가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하기 좀 그런 작가이긴 하다. 나는 다자이 오사무가 싫다는 사람을 이해한다. 그리고 다자이 팬들도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지 말라고 한다. 이 이야기의 본편이 될 다자이 여행 중에서도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하는데, 좋아한다고 말하기 좀 그래요."라고 말하니, 별 설명도 없이 이해받았다. 심지어 다자이 오사무 기념관에서 일하는 직원도 "저 다자이 오사무 작품 별로 안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여기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기념관에 간 대목에서 하기로 하고, 여하간 만약 다자이가 좀 좋아하기 부끄러운 작가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고 다자이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신다면 위험하니까 도망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