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관
이런 마음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서로에게 전해지는 순간이야말로
혼자서 하는 여행의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부끄럽지만 나는 소설을 쓰는 법에 대한 글을 연재해서 돈을 벌고 있다. 각각 글이 무료인 것도 있고 유료인 것도 있는데, 보통 천 원이다. 최근 두 편인가는 이천 원짜리도 발행했다. 처음 작법에 대해서 쓰기 시작한 것도 5년이 넘었기 때문에, 읽을 사람들은 다 읽었지 않나 싶기도 하고, 이제는 간간이 팔려서 가난한 작가에게 용돈이 되어 주고 있는데, 가끔 트위터에서 팔로워가 많은 계정이 내 글 쓰는 이야기를 리트윗해 주면 새롭게 판매가 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 분들은 나의 지갑 사정에까지는 크게 관심이 없으시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함을 전해야겠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홍보 좀 해 주십시오.
천 원, 이천 원에 수수료가 십 퍼센트. 수수료에 대한 부가세가 또 그것의 십 퍼센트가 붙으니까, 글이 백 번 팔리면 오 월에 하는 세금 신고까지 포함해서 이것저것 떼고 십만 원 남짓 남는다. 이번에 다자이 생가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교통편을 알아보자 요지경이었다. 일단 아오모리로 가야 하는데, 아오모리는 일본 열도에서도 혼슈 최북단이라 비행기를 타건 열차를 타건 꽤 돈이 든다. 거기다 아오모리 안에서 차 없이 이동하자면 이것 또한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예전부터 '미치노쿠(陸奥)¹'라고 불리던 지역답게, 도로가 많이 뚫려 있지 않고 대중 교통은 더욱 적어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고 하면 엄청나게 돌아가야 하는 등, 동선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삿포로에서 비행기를 타고 아오모리 공항에 내린 다음, 아오모리 공항에서 히로사키를 거쳐 오와니로 갔다가 오와니에서 일 박을 하고 도로 히로사키로 가 쓰가루 철도를 타고 고쇼가와라를 지나 다자이의 생가가 있는 가나기 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그 다음에는 도로 아오모리 공항으로 가서 도쿄행 비행기를 타는 것까지가 '다자이 오사무가 태어난 마을에 간다'라는 한 가지 계획을 여정에 끼워넣기 위해 필요한 일정이었다. 삿포로에서 아오모리까지의 비행기 삯이 십육만오천 원. 아오모리에서 도쿄로 가는 비행기가 이십일만사천 원.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하루종일 다자이 기행을 하며 돌아다닌 바람에 지쳐서 아오모리 공항으로 가는 날 늦잠을 자는 바람에, 오와니에서부터 아오모리 공항까지 택시를 탔기 때문에 그 택시비가 다시 일만 엔이 들었다. 삼 일간 다른 곳으로 갔다면 간 대로 숙소라거나 하는 체재비는 들었을 테니, 이 교통비만 생각한다고 해도 다자이를 보러 가기 위해서 쓰게 된 돈이 근 오십만 원에 달한다. 좋아하는 좀 부끄러운 작가를 위해 글 쓰는 법 오백 편을 판 돈을 쓴 것인데, 다자이 씨. 만족하십니까?
뭐, 만족하겠지. 다자이 오사무 씨로 말하자면 부끄러운 생애니 뭐니 하는 문장으로 유명하다고 해도 자신의 글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는 사람이다. 애정도 있고, 그것이 굳이 명성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고 해도 아쿠타가와 상을 받지 못했다고 아쿠타가와 상 심사위원에게 길이가 4미터인 편지를 써서 보낸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 타국에서 자신의 소설을 구석구석 읽고 자신을 좋아하게 된 젊은 여성이 있다는 것은 아마 도쿄 미타카에 있는 무덤 속의 그에게도 즐거운 소식일 것이다. 이런 구도를 소재로 한 다자이의 소설로 〈수치〉가 있는데, 비참한 이야기를 주로 쓰는 남자 소설가를 좋아하게 된 여성 팬이 소설가는 악마니 어쩌니 비난하는 말을 비참한 이야기를 주로 쓴 남자 소설가인 다자이 오사무가 줄줄이 써 놓은 모양을 생각하자면 정말 우습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단편이니까 한번 읽어 보기 바란다.
여하간 나는 다자이 팬으로서 다자이 기행을 할 생각에 신이 나서, 쓰가루 지방을 여행할 테니까 여행 전 준비로 다자이의 《쓰가루》도 다시 읽으면서 다자이가 쓰가루 지방에 대해 말했던 인상들을 되새김질하고, 들고 가서 다자이 여행 중에 틈틈이 읽을 다자이 작품집도 새로 사고, 다자이 마을에 가서 사람들과 어쩌면 다자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다자이 작품들의 일본어 원제도 목록을 만들어서 외웠다. 다자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하다. 읽는 입장에서는 슬슬 단어 게슈탈트 붕괴 현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테니 그만하겠다. 그래도 이 정도면 위에 다자이 씨를 엄청나게 놀린 대목에 비해서 내 다자이 사랑이 증명되겠지.
아오모리 공항에 내려서 히로사키로 가는 버스를 타니 창 밖으로 《쓰가루》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묘사된 것과 같다고 해도 흐린 구름 아래 논밭뿐이다. 쓰가루 지방이 고향이거나 다자이 오타쿠가 아니라면 전혀 감흥을 느끼지 못할 만한 풍경이다. 하지만 멀리 꼭대기에 눈이 쌓인 이와키 산이 보였고, 나는 《쓰가루》에서 줄곧 아름답다는 묘사로 등장한 이와키 산을 실제로 보고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워서 연신 창 밖으로 사진을 찍었다. 아직까지 다자이가 태어난 마을에 도착하려면 하루 넘는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사실상 이 때부터 나의 다자이 기행은 시작해 있던 셈이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히로사키행 버스 안에서 내가 들고 있던 짐 중 밖으로 보이는 것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죽으로 된 큰 가방 하나, 검게 옻칠한 바구니로 짠 가방 하나, 표지에 커다랗게 '다자이 오사무'라고 쓰여 있는 사백 구십 쪽짜리 다자이 작품집, 옥과 매듭 술이 달려 있는 부채 두 개, 손수건, 흑단 향합, 비단으로 만든 화려한 일본 전통 머리장식. 심지어 나는 일본 여행이라면 역시 기모노를 입고 다니고 싶다고 생각해서, 삿포로에서 구매한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관광객이 많은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서야 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건 신경조차 쓰이지 않겠지만 시골 벽지로 들어오면 사정이 다르다. 눈에 띄는 사람은 눈에 띄기 마련이고 외국인 관광객은 더욱 흔치 않다. 이는 히로사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히로사키는 아오모리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쓰가루 지방의 중심 도시여서 다자이 오사무도 고등학교는 히로사키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이렇게 말하면 꽤 큰 도시 같지만 우리나라에서 히로사키와 인구가 비슷한 도시를 찾아 보니 경기도 구리시, 충청남도 서산시 정도다. 나로서는 가늠이 잘 되지 않아서 인구가 그 두 배 정도 되는 도시는 어디인지 또 찾아보았는데, 경상남도 양산시, 경기도 광주시가 비슷하다. 이런 곳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관광객이 옥 뒤꽂이과 부채가 든 짐을 들고, 시골로 가는 버스 터미널에서 이상 작품집을 읽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상하군. 중앙히로사키역 대합실에서 나를 계속 흘끔거리며 보던 아주머니께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변명하자면 나는 그냥 전통 오타쿠이기도 해서, 서울 나들이를 할 때는 한복에 노리개와 부채를 지참하고 전통 방식으로 만든 낙지발매듭 장식 비단 귀주머니 향낭을 차고 다니니까 내가 히로사키에서만 특별히 이상한 꼴이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향하는 오와니 온천은 대대로 쓰가루 번주들이 애용했다는 팔백 년 역사의 유서 깊은 온천인데, 한국어로 된 여행 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야말로 쓰가루 사람들이 애용하는 동네 온천 마을이라는 뜻이다. 다자이의 생가가 있는 가나기 마을은 히로사키에서도 북쪽으로 쭉 올라가야 하고, 오와니는 히로사키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오와니 온천에 묵기로 한 이유는 가나기와 고쇼가와라 일대가 하도 시골이어서 마땅한 숙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자이가 《쓰가루》에서 말하기를, 자신은 쓰가루 지방에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쓰가루 지방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고, 알고 있는 마을도 여섯 개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 중 하나가 오와니다. 《쓰가루》는 사소설이라고 해도 소설이니 이것을 완전히 다자이 본인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지만, 다자이의 소설 중에서도 사적인 기행문의 성격이 많이 강하다고 하는 《쓰가루》이고, 작품 중에 언급된 것은 틀림없으니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꽤나 다자이 기행의 숙소로서 방문할 만한 온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오모리의 특산물인 사과 이름을 따 '사과밭 철도'라고 이름지어진, 고난 철도 오와니 선은 각 역 정차 열 네 개 역이 전부인 자그마한 노선으로, 중앙히로사키는 기점이고 오와니는 종점이다. 기점부터 종점까지 가도 사십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열차를 타게 될 여행 시간보다 더 긴 한 시간 동안 발차 시각을 기다리면서, 나는 종이로 만든 붉은 사과 등불 장식이 달린 중앙히로사키역 대합실에서 다자이의 수필을 읽었다. 오후 세 시 반이 가까워지자 개찰구에서 탑승 안내를 해 주었다. 쇼와의 느낌이 가득한, 기차보다는 전철을 더 닮은, 붉은 커버를 씌우고 가로로 마주보는 좌석이 설치된 사과밭 철도 차량에 앉으니 여행 느낌이 절로 나서 무척 즐거워졌다. 별개로 배가 고팠는데, 점심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비행기를 탈 준비를 하고, 삿포로에서 아오모리까지 와서 히로사키에 도착해 다시 오와니로 가는 일정에는 식사를 끼워넣을 틈이 없었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하고 나는 가방에서 요시다 씨가 챙겨 준 죽순 밥을 꺼냈다. 요시다 씨는 내가 삿포로에서 묵었던 집 주인인데 나이가 지긋하고 재기발랄하며 요리 솜씨가 좋은 사람이었다. 요시다 씨는 내가 출발하는 날 아침, 아오모리로 가는 길에 먹으라면서 엊그제 저녁으로 만들었던 죽순 밥을 덥히고 하얀 계란을 삶아서 짐에 넣어 주었다. 주먹밥으로 만든 죽순 밥과 눅눅해지지 않도록 따로 정갈하게 포장한 정사각형 김, 하얀 계란 두 알과 거기 동봉한 소금까지 곳곳에서 요시다 씨의 상냥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배가 고프다고 느낀 순간 나는 이 주먹밥을 꺼내서 먹었다. 엊그제 만든 밥을, 별 부담 없이, 그렇지만 세심함을 발휘해서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여행객에게 들려 보내는 솔직하고 꾸밈없는 애정. 그리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 때맞춰 허기를 채우는 나. 이런 마음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서로에게 전해지는 순간이야말로 혼자서 하는 여행의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오와니에 도착하자 가는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나가다 본 차 가게는 창문에 붙어 있는 문구가 흥미로웠지만, 시골의 작은 가게들은 오후 네 시가 넘자 이미 가게를 정리하고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곧장 오와니에서 예약한 민박으로 향했다. '아카유'라는 이름의 온천 민박에서 나이든 주인 내외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
1) 미치노쿠 : 내륙(陸)의 깊은(奥)곳이라는 의미로, 현대의 아오모리현, 미야기현, 이와테현 등을 아우르는 지역의 옛 지명. 해당 지방에 위치한 고대 일본 율령국의 이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