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관
마치 녹음으로 물든 열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다자이 오타쿠'를 표방하는 일본 기행. 수상할 정도로 다자이를 좋아하는 여성이 썼을 것 같은 이 여행기의 이전 회차에, 필시 다자이를 좋아하는 것 같은 한 여성 독자의 덧글이 달렸다. "저도 괜히 다자이 작품 속 여성 말투로 댓글을 덧붙여 봅니다."라고 운을 떼면서, 내용이 무척 생생하고 재미있어 다음 편이 기대된다는 말과 함께, 이 여행기를 보고 나서 문득문득 떠올라 다자이의 작품들을 다시 읽고, 새삼 어째서 사랑받는 작가인지도 느끼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그 회차를 언제 썼는지 확인해 보니 넉 달 반 전이었다. 이 여성 분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에 흥미를 가지고 있어, 이런 작은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이상한 제목의 여행기를 굳이 찾아 들어와서 읽고는 또 그 내용에 감명을 받아 다자이의 다른 작품도 다시 살펴보게 되고, 그 결과 다자이를 더욱 이해할 수 있어지고 여행기의 다음 회차도 궁금하여 소설 속 여성 인물의 말투까지 흉내내며 정성을 들여 덧글을 남겨 준 것인데, 정작 나는 여행기의 다음 편 같은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작가 실격이다. 그래도 다음 편이 기대된다는, 이 진심과 재치 넘치는 덧글 덕분에 작업을 재개할 마음을 먹을 수가 있었다. 다자이도 자기 글을 두고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평을 한 상대에게 "그러면 읽지 마십시오." 따위 답변을 보내는 둥 얼핏 독자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작품집이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는 열망을 드러내기도 한 것처럼, 나 역시 사랑받는 글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모양이다.
'아카유'에 짐을 풀고 나서, 곧장 마을의 작은 킷사텐으로 향했다. 평일 오후, 가늘게 비가 내리는 시골 온천 마을은 길마다 사람이 없어 한적하고 서늘한 분위기였다. 느긋하게 흐르는 강을 가로질러 붉은 철교를 건넜다. 맞은편 건물 이 층 창문에 '킷사 벨'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자 옥색 줄무늬 벽지에 유리 전등이 곳곳에 밝혀져 있는, 따뜻하고 정겨운 내장의 가게가 나타났다. 붉은 커버를 씌운 소파도, 테이블도 모두 오래 전부터 쓰던 것 같은 모습이었다. 손님은 방금 들어온 나뿐이었다. 아이스 밀크 티를 주문하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기다렸다. 점심 때는 나폴리탄이나 야끼우동도 먹을 수 있다고 하는데, 수프를 포함한 세트가 550엔이었고 150엔을 추가하면 블렌드 커피를 같이 마실 수 있었다. 멀리 주방 쪽에는 카운터 너머 작은 TV에서 지역 프로그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밀크 티는 홍차에 설탕을 약간만 넣고 우유를 타서 만든 영국식이었다. 딸려나온 시럽을 타서 휘젓고 있는데 딸랑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아이 하나를 안은 여성이 들어와서는 자연스레 카운터 너머 공간의 높다란 의자에 걸터앉았다. 사장과 아는 사이인 듯했다. 두 사람이 한참 수다를 떨고 중간중간 아이를 어르고 하고 있자 이어서는 다른 남자 한 명도 가게에 찾아와 합류했다. 아마 평소에도 이렇게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가게 주인도 대화에 열중해 손님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했는데, 혼자서 가게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던 나로서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차를 마시고 나와서는 가까운 열려 있는 식당을 찾아서 들어갔다. 오와니는 먹을 것으로는 콩나물이 유명하다는 듯해서, 콩나물 라멘이며 돼지고기 콩나물 볶음 같은 음식들이 있었다. 정식으로 주문하면 볶음에 더해 반찬 하나와 된장국이 같이 나오는데 반찬이라고 해도 다른 재료는 하나도 없이 콩나물을 살짝 데쳐서 절인 것이다. 볶음은 콩나물과 함께 돼지고기, 유부, 당근, 목이버섯을 볶아 간장을 뿌렸다. 가정에서 먹을 법한 평범한 맛이었으나 나는 아침부터 이어진 긴 여행에 지쳐 있었다. 지나치게 화려한 음식보다도 맛에 신경쓰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식사가 그리운 참이었다. 식당 바로 앞에는 다이엔지(大圓寺)라는 작은 절이 있었다. 동네에서는 유명하고, 아미타여래를 모신 곳이라고 하는데 구경을 하고 들어갈까 싶던 차에 내리던 빗줄기가 굵어져 아카유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카유로 돌아가서는 목욕 후에 한숨을 자고 유카타로 갈아입었다. 가벼운 옷감이었지만 겉옷으로 걸칠 하오리까지 제공하고 있어 그 차림을 하고 밤산책을 나가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걸어서 편도 이십 분 정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가벼운 신발로 갈아신고, 짐이 없는 가뜬한 몸으로 나서자 어느새 비가 완전히 그쳐 있었다. 오 월 말의 밤 아홉 시쯤, 시골 마을에서도 건물과 인적이 없는 외곽까지 나가 차도의 가장자리를 걸었다. 가로등이 통상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것의 두 배 정도 간격으로 드문드문 서 있었고, 그 외 구간은 완전한 어둠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후 동안 비가 내렸다 그쳐 다소 쌀쌀하고 상쾌한 공기가 어둠을 깨끗하게 채우고 있었다. 차는 드물게 지나갔고, 바람이 이따금 세게 불어 유카타 자락을 들추곤 했다.
이튿날 아침은 일찍부터 옷 입기를 준비했다. 시골의 작은 온천 민박인 '아카유'는 건물도 시설도 평범하다. 온천은 탕이 딱 하나뿐으로 흔히 아는 동네 목욕탕보다 작다. 객실에 거울이라고는 얼굴만 빼꼼 비춰볼 수 있는 작은 화장 거울뿐이다. 이런, 장점이라고는 정갈함밖에 없는, 현대 일본인들이 '낡았다'라는 의미로 쇼와 풍이라고 말하는 숙박업소들을 나는 옛날의 향취가 느껴져 퍽 좋아하는 편이지만 거울이 없는 것은 곤란했다. 드디어 아오모리 방문의 목적인 다자이의 고향 마을로 향하는 만큼, 나는 오늘의 옷도 기모노로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현대 여성의 기모노는 '기모노 입기 클래스' 같은 것이 백화점이나 문화센터에서 열릴 만큼 혼자 입기 간단하지 않은 옷이다. 지난 회차에서 나에게 주먹밥을 싸 준 요시다 씨도 젊은 시절에 기모노 입기 선생 일을 잠깐 했다고 했는데, 내가 기모노를 혼자 입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거울도 없는 채 혼자 입기에는 매무새를 확인할 수가 없으니 곤란한 일이었다. 시간을 들여 어떻게든 차림을 갖추고 띠에 부채도 꽂은 채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더니 평일 아침의 시골 온천에서 나만 화려한 나들이 차림을 하고 있었다. 식사를 챙겨 주는 나이 지긋한 여주인이 오늘 무슨 행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모처럼 여행을 왔으니까, 좋아하는 옷을 입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했는데, 그렇구나 하고 납득하는 것과 별개로 확실히 눈에 띄는 차림이기는 하다. 다자이 오사무는 멋내기에 신경을 쓰고 자기 옷차림에 까다로우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이 자신의 옷차림을 주목하는 것을 몹시 부담스러워했는데, 만일 다자이가 현대에 기모노를 입고 다자이 여행을 하는 나에게 쏟아지는 정도의 시선을 받는다고 하면 그것만으로 자신의 외모와 옷차림과 사람들의 시선과 부끄러움에 관한 에세이를 지금 이 여행기의 길이만큼 써서 발표했을지도 모른다. 발표를 하다니 다자이도 참 어처구니가 없는 사람이지만, 그는 자기 작품 속 자신을 투영한 가상의 작가의 입을 빌어 "작품을 발표한다는 것은 창피를 당하는 일이고, 자신을 고백하여 벌을 받는 일이다"라고 하는 사람이니¹ 그 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도 아닐 것도 같다.
오와니에서 다자이의 생가가 있는 가나기 마을까지는 열차를 두 번 갈아타게 된다. 히로사키까지 오우 본선을 타고 이동한 다음 히로사키에서 고쇼가와라 역까지 리조트 시라카미라는 쾌속 열차를 타게 된다. 여기까지는 대개 일본 여행에서의 열차들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다.
고쇼가와라 역에서 가나기 마을까지는 쓰가루 철도를 이용한다. 쓰가루 철도는 가장 붐비는 쓰가루고쇼가와라 역의 이용객이 하루 오백 여명 정도가 되는, 아주 작은 지역 노선이다. 모자를 쓰고 머리를 하나로 묶은, 짙은 청색 근무복 차림의 여성 승무원이 1량밖에 되지 않는 열차 내부를 돌아다니며 승객들에게 일일이 목적지를 묻고 있었다. 내가 아시노 공원까지 간다고 하니 들고 있던 파일에서 안내 팜플렛을 꺼내 주었다. 흑백으로 된, A4 복사 용지에 양면으로 출력한 소박한 팜플렛이었다. 손으로 그린 공원 지도와 역시 손글씨로 쓴 산책 코스가 앞면에 있고 뒷면에는 식당과 카페 등 몇 안 되는 주변 시설을 간략히 소개했다. 그야말로 정겨운 시골 철도다. 날씨가 좋아, 철길 양 옆이 가로수로 우거진 구간을 지날 때마다 차량 안은 초여름의 나뭇잎을 통과한 햇볕에 의해 물에 잠긴 듯 짙은 녹음으로 물들었다. 흰색이던 벽과 천장이 짙은 녹색으로 물든다. 검붉은색과 회색이 섞인 천으로 된 의자들이 녹색 그림자에 잠기자 마치 가죽 커버를 씌운 것처럼 보인다. 창밖은 물론 열차 안을 이 색으로 물들인 빼곡한 나무들의 초록이다. 나무의 터널이 없는, 진행 방향의 창문으로만 선명하고 환한 흰 빛이 들어오는데, 그 빛이 광택 있는 차량 벽에 이리저리 부딪혀 천장의 구석구석에 새하얀 종잇조각들 같은 햇볕의 얼룩무늬를 그린다.
팜플렛을 나눠주었던 승무원은, 가지고 있는 마이크를 통해 매 역마다 주변의 볼거리와 지역에 얽힌 이야기 등을 방송한다. 이 관광 안내는 몹시 자세하고, "오늘은 날씨가 더우니 내려서 돌아보실 때 시원한 음료를 사서 다니셔도 좋겠습니다."와 같은 염려까지 포함하고 있어, 열차 운행 내내 목소리가 끊긴 적이 없어 마치 녹음으로 물든 열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쓰가루 방언인가 싶은 말씨를 포함하여, 이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만으로 지방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리 좋지는 못한 일본어 실력으로, 제대로 알아듣는 대목이 나올 때마다 속으로 '과연', '그렇군.' 따위 맞장구와 함께 끄덕거리며 정신없이 창 밖으로 지나가는 역들의 사진을 찍었다.
1) 다자이 오사무, 〈바람의 소식〉 (1941)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