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없는 남자여서 여성들에게 인기 있었지 않을까요”

사양관

by 혜하


터무니없는 남자니까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지 않을까요?





다자이 오사무가 여성 편력이 꽤 있는 작가라는 점은 꽤 알려져 있다. 그 내력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먼저, 다자이가 갓 대학에 입학한 시점 일종의 첫사랑이었던 여자가 있다. 하츠요라는 고향 마을의 게이샤였는데, 도쿄에서 공부에 매진해야 할 아들이 게이샤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곧 여행기에서 방문할 다자이의 생가를 보면 곧장 알 수 있는 일인데, 다자이의 집안은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명문가였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게이샤와 결혼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반대해, 결혼을 강행할 시 호적에서 이름을 없애 버리겠다고도 했다. 절망한 다자이는 갑자기 도쿄의 술집 여종업원을 만나 이틀간 함께 지내다가, 그녀와 함께 투신자살을 시도한다. 만난 지 겨우 며칠 된 여성과 동반 자살을 계획해서 실행한 것인데, 이 일로 타나베 시메코라고 하는 그 종업원은 실제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이 자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다자이는 병상에서 자살 방조죄로 기소되는 등 소동을 겪었으나 결국 하츠요와 결혼을 한다.


이로부터 약 6년 후, 다자이는 부인인 하츠요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고 절망하여, 하츠요와 함께 두 번째 음독 자살을 기도한다. 다자이가 여성 화자에 이입한 글을 잘 썼고, 여성이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디테일들도 본문에 다수 녹여냈다고 하지만 사실 그런 디테일들은 이렇게 가까이 지내던 여성들의 조언을 얻어 고친 대목이 많은데, 나 또한 다자이를 놀리고 다자이를 좋아하는 여성으로서 이 여성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면 모르긴 몰라도 하츠요 씨가 다른 남성에게 마음을 의지한 것은 그럴 만한 일이었을 것 같다. 다자이는 21세에 하츠요 씨와 결혼한 이후, 좌익 운동에 전념하며 이론을 배우고 동지들과 함께 잡혀가 경찰서를 들락날락하고, 대학생이면서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고 출석도 하지 않고, 그것 때문에 집에서 보내 주던 생활비도 끊기고, 그렇게 살았으면서 대학 졸업 시험에 낙제했다고 또 자살 시도를 했고, 그러다 보니 약물 중독이 되어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내가 하츠요 씨였어도 이런 인간이 남편이고 가장인 상황에서 누군가 잘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절로 지친 마음이 그리로 기울 것만 같다.


어쨌든, 하츠요 씨도 다자이와 의리가 있고 여전히 남은 감정이 있었으니 다른 남성과의 관계가 들킨 시점에도 다자이와 함께 수면제를 먹어 준 것이 아닐까 싶다. 도대체 다자이 오사무는 왜 여성들에게 이런 식으로 인기가 있는 것인가? 그것이 바로 《다자이 오타쿠의 일본기행》이번 회차에서 내가 답하려고 하는 질문이다.


이에 관한 비밀은 차차 밝힐 테니 잠시 제쳐 두고, 하츠요 씨와 다자이의 동반 자살 시도는 둘 모두 살아남으며 실패했다. 이후 다자이는 하츠요와 결별하고, 바로 이듬해 선배 작가에게 소개받은 여성 이시하라 미치코 씨와 만나 두 번째 결혼을 한다. 당시 다자이는 "제가 또 다시 (이러한 식으로) 파혼을 반복하게 된다면, 저를 완전히 미친 사람으로 여기고 버리셔도 좋습니다."라는 각서를 썼는데, 결국 다자이는 미치코 씨와의 결혼 생활은 마지막까지 유지했지만 그 사이에 두 명의 여성을 더 만나, 한 명과의 사이에서는 아이를 만들고 다른 한 명과는 내연 관계를 유지하다가 최후의 동반 자살에 성공하는 행보를 보여 준다. 다자이가 《사양》, 《인간 실격》 등 대표작을 쓴 시기가 바로 이 때이다. 이시하라 미치코 씨가 다자이의 부인으로 있는 와중, 일상의 교감과 수발은 내연녀인 야마자키 토미에 씨가 도맡았다. 《사양》의 모티프가 되는 일기를 쓴 옛 연인 오오타 시즈코 씨와는 거의 연락하지 않은 채 일기만 들고 가서 작품을 썼다.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남성이다.






아시노 공원 역에 내리자 새하얀 햇살이 더워질 준비를 마친 채 내리쬐고 있었다. 다자이의 생가인 사양관에서는 한 역 더 올라간 곳이지만, 커다란 호수를 끼고 있는 아시노 공원에는 다자이 문학기념비와 동상 등 주요 조형물이 있고, 공원 초입에 작은 카페도 있다고 해서 긴 이동 사이 숨을 돌릴 겸해 찾았다. 안내도를 따라 호수변과 숲길을 조금 걸으니 드디어 다자이 동상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다자이 오사무'라고, 받침대가 되는 높은 돌에 그의 이름이 커다랗게 쓰여 있고, 애용했다는 망토 차림의 다자이 오사무는 돌 위에 서서 머뭇거리듯 자기 옷깃을 붙잡은 채 서 있었다. 받침대가 되는 돌이 워낙 크고 높아서 다자이의 발이 내 머리보다 위에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 저승에 있는 다자이가 이 동상의 모양과 높이를 보면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사람들에게 온통 잘난 듯 보여 주어야 하게 되었다"라며 울적해하는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다자이도 공명심과 자존심이 있는 작가이니 사후의 유명세를 덮어놓고 싫어하리라고는 짐작되지 않지만, 그가 원한 유명세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문학에서의 인기이지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두 발밑으로 내려다보는 어정쩡한 자세의 동상이 되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었지 않을까. 이 높은 동상은 아마도 죽어서 우울해할 다자이 오사무보다는 살아서 이 곳을 방문하고 좋아할 관광객들을 위한 것일 테다. 살아서 온 관광객인 나는 표지에 커다랗게 '다자이 오사무'라고 써 있는 다자이 전집을 꺼내들고 동상과 나란히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 좋아했다.


그러던 중, 자전거 여행 차림을 하고 선글라스를 낀 남성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다자이를 압니까? 어디서 왔습니까?"


바로 이것이다. 이전 회차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상황을 위해 전집을 챙기고 다자이의 작품들도 일본어 원제로 암기한 나는, "한국에서 왔어요. 다자이를 좋아해서, 그의 책도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답변했다. 그런데, 이렇게 답하자 이 자전거 여행자로부터 돌아온 말이 있다.


"좋아한다고요? 아니, 그 사람, 터무니없는 남자잖아요?"


이 순간의 내적 폭소란. 이번 회차의 시작부터 다자이의 '터무니없는' 여성 편력에 대해 길게 소개한 이유가 있다. 다자이 오타쿠로서 위와 같은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나로서는 이 '터무니없다(とんでもない)'라는 말 한 마디가 세간에서 보이는 다자이의 삶 전체를 얼마나 적절하게 수식하는지 그야말로 배꼽이 빠질 지경이었다.


"아, 터무니없는 남자니까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지 않을까요……."


오와리 씨라고 자신을 소개한, 일을 은퇴하고 쓰가루 반도를 자전거로 일주하고 있다는 이 여행자의 의문은 이랬다. 다자이 오사무는 그야말로 여성들에 대해 터무니없는 행보를 보인 작가인데, 현대 여성으로서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할 이유가 무엇인지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현대 여성으로서 답하자면, 글쎄. 비애와 인간애가 좋은 것이다. 작가의 사생활 따위는 아무래도 관계없다. 나는 일본 근대 작가들 가운데 히구치 이치요¹도 좋아하고 시마자키 도손²도 좋아하는데, 두 작가 모두 급변하는 시대 속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이기적으로 굴기도 하며, 자신을 의심하고 고민에 시달리는 인물상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 현대가 인공지능이니 뭐니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시대라지만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만큼 인류가 문화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격변을 맞았던 시기가 또 있을까. 정치·경제·계급·사상·생활상 등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런 시대와 그런 시대의 여파를 반영하는 작품들 속 인간상은 현대인의 불안에 묘한 공감과 안정을 불러일으킨다. 일단 역사를 배운 현대인인 우리로서는 이미 알고 있는 변화를 조망하기 때문에 전개에서는 일종의 답지를 알고 있는 듯한 편안함이 느껴지고, 완전히 옛날 이야기가 아니면서도 어느 정도 가깝고 색다른 시대에도 인간 사이 연민, 질투, 부끄러움, 증오, 자포자기 같은 감정들은 현대와 다를 바 없이 생생하다. 이런 것들이 단조롭고 후텁지근한 현대의 일상을 가르고 들어오는 서늘한 가을 바람처럼 영혼에 와닿는다. 다자이 오사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까지 터무니없는 삶을 살면서도 도대체 왜 살려고 한 것일까. 무슨 희망이 그를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도록 이끌었고, 무슨 절망이 그렇게 이어나가던 삶을 결국은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만들었을까?


이모님. 보내주신 긴 편지를 오늘 아침에 받았습니다. 제 건강 상태와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여러모로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요즘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습니다. (…) 아침에 눈을 떠서 오늘 하루를 알차게 사는 것, 저는 요즘 그것만 신경 씁니다. (...) 지금 제게는 하루하루의 노력이 평생의 노력입니다. (...) 저는 문학을 그만두지 않을 겁니다. 저는 믿어서 성공할 것입니다. 안심하세요.

다자이 오사무, 〈사신(私信)〉 (1941)


다자이는 유서에서 "소설을 쓰기 싫어져서 죽는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집필하고 있던 소설이 있어 미완성의 유작으로 남았다. 다자이는 위 수필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소설에서, 창작에 의문을 느껴 방황하는 신진 작가와, 쓰지 않고 방황하는 후배를 훈계하면서도 응원하는 선배 작가를 각각 가상의 인물로 만들고, 두 인물 모두에게 일정 부분 자신을 투영해 말한다.


한 편 쓰고 나면 죽어도 좋을 법한, 그런 걸작은 세상에 없습니다. 작가는 길을 걷듯 언제나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생활을 하는 듯이, 호흡을 하는 듯이, 끊임없이 걸어가야 합니다. (…) 지위나 자격을 얻기 위해서 작품을 쓰는 것은 아니겠지요. 살아가는 것과 같은 속도로, 조바심도 내지 않고, 게으름도 피우지 않고, 쉼 없이 글을 써야 합니다.

다자이 오사무, 〈바람의 소식〉 (1941)


다자이는 실제로 평생 글을 써서, 죽는 순간까지도 쓰고 있었고, 쓴 글을 다 모으면 양장본 열 권은 너끈히 넘어가니, 실로 다자이 오사무에게 문학이란 삶과 동의어였을 것이다. 소설을 쓰기 싫어져서 죽는 것이라는 1948년의 말은 삶의 의지를 잃었다는 말과 동일하며, 문학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1941년의 다짐은 삶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다짐과 다름없으리라. 첫머리에는 다소 놀리듯 그의 인생 내력을 이야기했지만, 다자이 오사무가 몇 번이고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를 하고, 또 실패한 것은 필시 그 자체로 그의 생을 호흡처럼 수놓은 번민의 증거일 것이다. 소설을 써야겠다는 다짐과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문, 살아가야겠다는 다짐과 도무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통 사이에서 비틀비틀 걸어가는 인간상이다. 그의 터무니없는 삶은 이 세상의 터무니없음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내려고 한 인간으로서의 결과물이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고 고립을 각오하며 문단 작가들을 향해 날 선 비난을 쏟아낸 마지막 에세이 〈여시아문〉에서 다자이는 말한다.


경박하다면 경박한 그대로 괜찮지 않은가? 왜 자신의 본질적 경박함을 다른 성질과 바꾸어 보여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 ('배운 사람들', 소위 사회에서 존경받는 '대가'들은) 모두 학식이 없다. 폭력적이다. 나약함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것이 죄인가? (…) 세상에서 추방당해도 좋다는 각오로 목숨을 걸고 행동하는 것이 죄가 되는가?

(…) 마지막으로 묻겠다. 나약함, 고뇌는 죄인가?

다자이 오사무, 〈여시아문〉 (1948)


당대 다자이에게 끌린 여성들은 다자이의 이런 절망과 분노를 곁에서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여력이 있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한 기성 세대는 시대의 혼란 속 방황하고 기반 없는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하지 못한다. 자기 자신의 나약함과 경박함, 인간적인 고뇌를 드러내는 일은 우아하지 않으니, 아니. 치장은 그만두자. '사회적인 인간'으로 보이지 않으니 모두가 감추거나 조롱하려고만 한다. 다자이가 자기 자신의 실제 삶과 구분하기 어려운 '터무니없는' 인물들의 모습을 소설에서 전면적으로 묘사한 것은 이런 세태에 대한 반항과 개탄의 목소리이기도 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처절함을 곁에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 끝내는 그 고통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마는 마음이 그의 어처구니없는 여성 편력을 만들었겠지. 그리고 여성 관계에만 집중하니까 '터무니없는 남자'처럼 보이는 건데, 다자이는 당대 문인들에게도 사랑받는 편이었다. 그를 추모하는 다른 문인들의 에세이에서 회고되는 다자이를 보면 느껴지는, 당대 작가들의 다자이에 대한 사랑은 정말이지 이 기나긴 다자이 오타쿠 여행기를 쓰는 나 저리 가라다.


이런 내용을 다 설명할 수는 없어서 "터무니없는 남자니까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지 않을까"같은, 맥락을 모르면 바보같이 들리는 말로 응수하고 말았는데, 어쨌든 오와리 씨와 나는 다자이의 삶과 각자의 여행 등에 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혼자서 하는 여행이라 내심 기념 사진이 없는 것이 아쉬웠는데, 오와리 씨가 부끄럽게도 다자이 동상과 함께 찍어 준 기념 사진과 함께 나는 공원 앞에 있는 자그마한 카페 '에키샤'로 향했다. 다자이 평생의 고뇌도 높은 동상의 부끄러움도, 그 동상과 함께 사진을 찍고 만 나의 부끄러움도 알지 못한 채 한들한들 흔들리는 여름날의 나뭇잎과, 그에 대조되는 새빨간 지붕이 아름다운 가게였다.




1)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 1872-1896): 일본 근대 소설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어릴 적 한문학과 고전을 익히며 자라났으나, 부친이 사망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며 가장으로서 생계를 위해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에도에서 메이지 시대로 급변하는 세상 속 여성과 아동, 유곽 사람들과 같이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인물들을 섬세한 관찰력을 통한 연민의 시각으로 그려내었다. 〈키 재기〉, 〈흐린 강〉, 〈섣달 그믐〉 등 수작을 발표하며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폐결핵 진단을 받아 작가 생활을 시작한 지 14개월만, 24세가 되는 해에 요절하였다.


2)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1872-1943): 메이지와 쇼와 시대 시인이자 소설가로, 초기에는 낭만주의적 시를 주로 발표하다가 1906년의 장편 소설 《파계》를 계기로 자연주의 소설가로 자리잡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을 받아 급변하는 사회 속 계급적 갈등과 인간 군상의 면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주제 의식은 개인 내면의 갈등에 집중하고 있는 《파계》는, 서구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일본 근대 자연주의 문학의 첫발로 평가받고 있다.


FxGPajFaAAE5yZW.jpg 아시노 공원 안내도.
FxGlJCrakAMryur.jpg 오와리 씨가 찍어 준 나와 다자이 오사무 동상의 기념 사진. 다자이의 초상권도 같이 보호해 주었습니다.
FxGiZifaAAA269K.jpg 다자이 문학 기념비. 문구는 다자이가 좋아해서 그의 첫 번째 작품집 《만년》의 권두를 장식한 폴 베를렌의 시구, '선택받았다는 황홀과 불안 / 이 두 가지 내게 있으니'.
FxHr4PxaYAABaDr.jpg 카페 에키샤의 빨간 지붕.
FxHsZg6acAAk-3D.jpg 카페 에키샤 내부. 역사(駅舎; 에키샤)라는 이름답게 아시노 공원에 있던 구 역사 건물을 개조해서 만들어진 카페라고 한다.
FxHsd8waYAA8e-c.jpg 카페 에키샤의 수제 사과 케이크와 커피 세트. 사과는 아오모리의 특산물이다.


이전 03화녹음에 물든 쓰가루 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