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하 Jun 10. 2021

도대체 200만원짜리 차를 누가 마시는 거예요?

보이차 한 편의 가치


한 편 30만원, 한 통 205만원.


보이차 가격을 처음 들었을 때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보이차 1편이 357그램으로 되어 있다거나, 보이차 일곱 편이 1통인데 그건 옛날, 차마고도에서 무역을 위해 말에 차를 싣고 갈 때, 말 한 마리가 옮길 수 있는 차 양에 맞추어 포장하면서 생긴 유서깊은 전통이라거나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즐거웠지만요.


어쨌든 그 시절 제게 보이차는 '무지 비싼 차' 였습니다. 그람 수로 따지자면 사실 357그람에 30만원이니 약 120그람에 10만원, 한 번 마실 때 3천원 정도로 그렇게까지 비싸지는 않아요. 하지만 한 번에 30만원 지출이라니! 30만원은 어디 가서 구매할 때도 할부로 하시겠어요? 라고 물어보는 가격이라구요.


거기다 당시 저는 대학생. 만 팔천원짜리 찻잔과 이만 삼천원짜리 찻잔 사이에서 좀처럼 마음을 정하지 못하며 반 시간을 고민하던 때니까 제게 보이차는 비싼 차가 아닐 리 없었습니다.


그 유명한 7542 청병. 90년대 차는 한 편에 200여만원을 호가합니다. 뒤에 보이는 것이 한 통 포장.


이렇게 비싼 보이차. 보이차는 오래 묵힐 수 있고, 환경을 갖추어 잘 숙성시킨다면 묵힐수록 품질도 희소성도 올라가기 때문에 가격도 오릅니다. 이런 특성이 있기 때문에 농담이 아니라 보이차에 현금을 투자, 소위 '차테크' 를 하시는 분들도 분명 꽤 있어요. 전해 듣기로는 주식보다 평균 수익률이 높다던데요.


차테크를 한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겠지요. 수익이 나기도 하고 남의 일이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질문. 그러면 이 차를 진짜로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 걸까요? 재테크용 투자금을?


예, 있습니다. 그 정도 물건은 탁탁 살 수 있는 재력이 있는, 나이 지긋한 분들뿐만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도 몇몇은 '그렇게 비싼' 보이차를 산다고 하는데요, 그렇습니다…… 이를테면 저와 제 주변 젊은이들이요.



요즘 애들. 한편 20만원 보이차 산다. 예. 그렇습니다. 구매 이유는 맛있어서. 300그램 사서 많이 마시려고입니다.


하지만 이게 '비싼' 가격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차에 막 입문하시는 분께 이 차가 아주 맛있으니 구매하시라고 권할 수 없겠지요. 한 편에 20만원은 안됩니다.


5만원짜리 차도 안 됩니다.


사실 3만원도 비쌉니다.


저는 좋은 홍차 한 통에 3만 5천원이면 좋은 가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차를 소개해 드린 분께서 그 가격표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옆에 있던 2만원대 차를 구매해 오셨다는 말씀을 듣고 알았어요. 왜 그럴까요?


초심자라서 비싼 걸 먹어도 맛을 모르기 때문에? 글쎄요. 차를 마신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도 맛있는 차와 맛없는 차 정도는 당연히 구분합니다. '마음에 드는 차' 와 '그보단 좀 인상에 안 남는 차' 로 가면 더 확실하지요. 경험과 판단은 결국 주관적인 것이니 말입니다. 그보다는, 차에 초심자라면 차를 즐길 문화가 곁에 별로 없기 때문에, '비싼 차' 가 조금 더 맛있다고 느낀다고 해도 그 정도의 맛 차이만으로 더 많은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없는 데 가까울 터입니다.



우리의 소비는 맥락 속에 있습니다. 무심코 우리는 찻값이 차의 맛과 향, 품질, 거기에 더한다면 유통들어간 비용, 희소성, 차 대회에서 상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하는, 차에 관한 요소들만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지요. 판매가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매를 고민하고 결정할 때 마주하는 가격은 어떨까요? 우리는 차를 살 때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요? 단지 비싼 차가 맛이 좋기를? 그런데 한 편에 1억 원짜리 차는(많습니다.) 한 편에 100만원짜리 차보다 백 배 맛있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차를 살 때 이 차를 밤에 지칠 때 혼자 먹으면, 좋아하는 친구들과 나눠 먹으면, 봄에 딱 시기를 맞춰 꽃을 보며 들 차회를 할 때 가져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차 문화에 깊이 들어와 있는 사람일수록,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상대가 많은 사람일수록 이 차가 내가 가진 잔 중 어떤 잔에서 최고로 맛있게 우려질지, 지금 가진 차들과는 어떻게 달라서 이 차가 내게 구매할 만큼 새롭고 의의가 있는지를 떠올리고, 해석하고, 구매에 참고할 수 있습니다. 20만원이 줄 수 있는 가치를 다채롭고 풍요롭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 차의 품질만을 따진다면 20만원은 단지 찻값입니다. 소비 규모에 따라 비쌀 수도 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차를 같이 마실 친구들, 나누어 주고 싶은 사람, 이것을 가지고 열 다회, 함께 쓸 기물을 상상하면 시간과 경험의 가격이 됩니다. 또 어떤 요인이 있을까요? 친해진 가게 사장님과 취향이 맞아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음한 기억이 좋아서, 그 날을 다시 떠올리고 싶어서 살 수도 있습니다.


소비에는, 당연하지만, 가격만이 문제가 되지 않지요. 그것이 어떤 상품인가 하는 점이 소비를 결정합니다. 든든한 차 문화가 바탕이 되어 있을 때 보이차 한 편의 가치는 단지 차만이 아닌, 그 차로 얻을 수 있는 다른 모든 것을 내포하고, 마음을 설레게 하고, 사고 싶게 만드는 상품이 됩니다. 물건이 문화의 을 입어 비로소 온전하고 고유한 맥락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경험이 소비를 하게 만들고, 그 경험은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고, 라이프스타일은 구매의 장벽을 낮추고, … 하는 사이클이 좋은 문화 안에서는 활발하고 다양하게 돌아갑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차를 사지 않는다거나, 좋은 차를 몰라서 안 산다거나 하는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젊은이들이 차를 '비싸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차 문화가 아직 그 가격만큼의 설득력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친구들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하룻밤 호캉스에 20만원을 쓰고, 신라호텔 망고 빙수 한 그릇에 6만원을 씁니다. 구스 패딩은 180만원이고 아이패드는 80만원입니다. (네…… 저는 이걸 사지 않고 차에 돈을 씁니다. 차가 제게 주는 가치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사람들은 사고 싶은 것에는 언제나 기꺼이 지갑을 니다. 세상에서 '비싼 차' 를 마주한 사람들에게 그만큼 차로 누릴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어느새 '비싼' 차는 '합리적인 가격의' 차로 바뀌어 있을 테고, 사고 싶은 것이 되고, 줄을 서서라도 산 것을 자랑하고 싶어지겠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운월시사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