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걱정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평화와 안정을 누리고, 멋진 취미도 하나 가지고, 어쩌면 식물을 기르거나 꽃을 가꾸고, 지금 브런치에서 글을 읽고 쓰는 우리들이라면글도 계속쓰고 싶을 수 있고…….
이 매거진은 앞으로 리뷰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전통 깊은 노포에서 판매하는 말차나 새롭게 구매한 향이나 특별한 과자 같은 리뷰가 올라올 테고, 그 이유는 별 것 없어요. 이 제품이 어떻다고 알리고 나중에 누가 찾아볼 때 자료가 나오도록 하려는, 평범한 목적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매거진을 만들고 보니, 모든 물건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상 풍류' 라고 이름지은 이 취미는 무척 우아하고, 한가롭고, 꼭 은퇴한 다음에 할 수 있는 것들 같지만, 그리고 그런 것을 즐긴다고 하면 저 또한 꼭 그런 사람처럼 여겨질 때가 많지만, 한가롭고 편안한 삶은 바쁘고 불안한 삶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우아하고 고상한 라이프스타일은 (우리가 매일 겪는) 지치고 힘든 일상과 함께할 수 있고, 저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요.
취미는 삶의 한 조각을 원하는 모습으로 가꾸는 것입니다. 종종 예술을 한다거나(옷을 화려하게 입어서요) 인문고전 전공이라거나(고전 시를 읽어서요) 세상 모든 것에 엄청난 심미안을 가져서 세속적인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라거나(배민으로 떡볶이 시켜서 스팀 게임 하며 먹는 것 좋아합니다) 하는 기대를 받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두 해 전이지만 최근 가장 끝내줬던 여행은 단체관광 가는 스타일로 과일이며 쫀듸기며 '먹을 거' (도시락 아님)를 락앤락에 바리바리 싸서 유람선 바닥에 앉아 먹으며 엔진 진동에 덜덜거렸던 거라고요.
어쨌든, 하지만 저는 식물도 기르고 한가롭게 앉아서 차도 마시고 꽃을 사와서 집에서 혼자 플라워 클래스도 하고 그런 시간에는 평화와 안정을 누리고, 인스타그램 피드를 멋진 순간들로 채우고 이제 이 매거진도 그런 리뷰들로 채워 가겠지만, 평범한 리뷰라고 생각해 주시면 가장 기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을 나누고 싶어서 기록하거든요.
밤 9시에 퇴근해서 집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으면 녹초가 된 채 밤 열한 시를 맞고 그대로 침대로 들어가기 바쁜 날도 있는가 하면, 어떤 주말에는 혼자서 고요히 자리에 앉아 끓인 물을 유리 숙우에 부을 수 있습니다. 그런 때 느끼는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어요. 삶의 향방을 결정하는 그런 결정적인 순간은 아니지만, 바로 이런 때를 삶 속에 갖기 위해 살아간다는 느낌을 주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런 순간들을, 그런 순간을 주는 취미를, 집을 꾸미고 차 마시는 시간을 가지고 향을 피우고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는 라이프스타일을, 은퇴한 후에 꿈꾸는 삶이라거나 어렵고 고상하기'만 한' 것이라고 여기기보다 한번쯤 시도해 볼 수 있는 낯설지만 새로운 것으로 볼 수 있기를, 그리고 그런 한 예시를 여기서 들여다보실 수 있기를, '리뷰를 쓰자' 하고 생각하면서 감히 바라 봅니다.
제가 소개하는 것들의 배경에는 (요즘은 플랜테리어라고 하는) 풀이 가득 있겠지만 화분에 물을 주고 넘쳐서 말라붙은 흙 자국을 제가 다이소에서 사온 청소포로 박박 닦는 모습은 들어 있지 않겠지요. 그것은 당연합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리뷰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언제나, 누구의 삶이든, 그런 것들은 같이 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걸 알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점이, '나도 한번 해볼까?' 로 이어지거나 혹은 리뷰를 구경하시는 일을 조금 더 가볍고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겠지요.
비용 이야기도 조금 하고 싶어요. 보통은 말하지 않기를 원칙으로 합니다만 일상 풍류의 값은 다른 취미보다 더 비싸지는 않습니다. 대학생 때 정말 정말 큰 마음을 먹고 산 3만원짜리 앤틱 찻잔이 최고로 아름다워지는 때가 있기 마련이거든요. 제가 술을 마시지 않아서 식비가 적게 나오는 편이라거나 글쓰기로 딱 조카 용돈 줄 만큼 들어오는 수익이 있어서 찻값에 보탤 수 있다는 설명을 붙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취미 레슨, 악기, 베이킹 같은 취미에 드는 만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에서 소비하고 있어요.
그보다는 저 예쁜 등나무 잎을 가공해서 만든 차 거름망과, 찻집에서 선물로 받은 알록달록한 코스터. 정말 작았는데 어느새 테이블 한켠을 커다랗게 채우게 된 무늬고사리. 잘 즐긴 엔터테인먼트라면 그렇듯 풍류에는 비용 생각보다 추억이 항상 더 많습니다.
'사설을 이만큼이나 붙이고 대체 뭘 하려는 거야?' 싶으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습니다. 정말 별 거 아니에요! 제가 그 순간 느낀 딱 그 기쁨만큼의 의의, 그 물건이 제게 도달하기까지 과정만큼의 의의, 그리고 그 리뷰들을 만약에 당신이 읽어 주신다면 그때 전달되는 무엇의 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