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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Apr 25. 2020

세상에 없었던 말차 입문기(1)

국경은 없지만 장벽은 높았던 말차 문화, 20대 청년들 전격 등반!


말차는 차 문화가 흔하지 않은 한국에서도 마이너리티입니다. 쓰는 도구들도 낯설고, 가루 차를 물에 탄다는 방식이 보통 차와 다르기도 합니다.


말차 라떼, 말차 아이스크림, 말차 치즈 케이크 같은 디저트 음식이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그냥 '말차' 를 타 놓은 모습은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글쎄, 말차요? 요리 재료 아니었나요? 코코아 파우더처럼요.


말차 라떼 (특징 : 달달함. 무섭지 않음. 그냥 주문하면 됨.)
본격 말차 다도 (특징 : 제가요? 이걸요? 마시는 것도 아니고 직접 만든다고요?)


서점에서 취미 음료 코너를 둘러봐도 커피, 와인, 홍차 서적은 넘쳐납니다. 중국차 책도 잘 보면 꽤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말차는요?


한국에서 말차를 전면에 내세우기가 어려운 이유는 말차가 본격 일본 문화라는 인상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가게는 중국차 전문 가게입니다' 라고 홍보하기는 좋아도 '우리 가게는 본격적인 일본차 가게입니다' 라고 걸기에는, 아직까지도 좀 껄끄러운 기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본격 말차 입문기를 연재하기로 한 입장에서 이 지점에 사족을 달자면, 루차를 물에 타서 먹는 '점다' 문화는 동아시아에서 매우 옛날부터 보편적이었습니다. 차 문화를 정리한 첫 번째 대 고전, 700년대 당나라에서 발간된 육우 <다경> 이 한 권 내내 바로 이 점다법을 설명하고 있으니까요.


일본 말차 문화의 시조라고 불리는 센 리큐는 그로부터도 800여년이 더 지난 1500년대 사람이니,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점다 문화가 가장 늦게 유행한 셈입니다.








말차는 차를 좋아하는 동호인 사이에서도 살짝 미스테리입니다. 간단히 입문하기에 가장 좋은 차는 역시 각종 브랜드에서 설명을 붙여 상품을 출시하는 서양 홍차, 그 다음이 중국차 정도일까요.


중국차로만 옮겨와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간단히 사기 어렵고 온갖 전문 용어가 튀어나오는데다가 친한 찻집까지 찾아야 하니 제법 장벽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중국차는 도구 사용법부터 시작하는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가게도 있고, 마셔 볼 기회도 많습니다. 서도 있고 전문점도 있지요.


말차는 요컨대 보통 사람들이 차 마시는 취미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합니다. 어머, 뭔가 멋져. 어떻게 하는 거지? 와, 복잡하네. 나는 하기 어려울 것 같아.


디저트와 함께할 수 있는 귀여운 홍차


트렌디한 카페에서 설명도 잘 해 주시는 중국차


무릎 꿇고 앉아서 먹어야 할 것 같은 말차


말차는 정보가 없습니다. 찾아갈 수 있는 가게도 없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필요한 도구를 소개하는 글 정도는 나오지만 그래서 그 도구들을 어디서 살 수 있는 걸까요? 겨우 한두 군데를 찾아도 말차 도구는 설명도 거의 없고, 선택지도 딱 하나밖에 없거나 0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품절이라서요.


되는 대로 인사동 거리에서 차선처럼 생긴 것을 사 와서, 되는 대로 구한 말차를 그릇에 넣고 휘저어 보았지만 이게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말차 젓기를 시도해 보셨던 분이라면 사진에서 보는 폭신한 연둣빛 거품은 좀처럼 내기 어렵다고 아시겠지요.


물에 가루를 타서 대나무로 저었는데 거품이 날 수가 있는지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하고, 내가 뭘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높게만 보이는 말차의 벽. 일본에서는 다도를 배울 수 있다던데. 물론 하루만 들어서는 어떻게 되지도 않고 무려 다도 유파에 입문해서 수 년을 익혀야 하는 무시무시한 문화겠지요. 2박 3일 여행도 계획을 잡아서 가야 하는 마당에 말차 좀 마시겠다고 타국에 몇 해를 머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당시는 그야말로 말차의 불모지였던 시절. 저와 저의 차 마시는 친구들, 차 마시는 20대 모임 <운월시사> 는 어느 날 결의했습니다. 이 말차, 우리가 마셔 보겠다.








각자 3년에서 7여년까지, 차 마시기로는 그래도 각자 전문대쯤은 졸업한 경력의 <운월시사> 모임이었습니다만 말차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골동품 가게를 둘러보며 말차 도구를 찾으면 십중팔구 사장님들께서는 이렇게 물어보시거든요.


"젊은 분들이 말차를 다 하시네요. 선생님께 배우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붙어 1:1 과외를 받지라도 않으면 국내에서 젊은이가 즐기고 있을 리가 없는 문화, 그것이 바로 말차인 것입니다.


<세상에 없던 말차 입문기> 는 이, 가이드가 없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맞게 가고 있는지도 알기 어려운 낯선 말차에 맨손으로 뛰어든 청년 차인들의 좌충우돌 모험기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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