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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Jul 05. 2021

어머 이걸 꼭 못 사도 괜찮습니다

못 사기 때문에 가진 것은 더 소중해지고


차를 취미로 하게 되면 사고 싶은 것이 참 많습니다. 보이는 것들이 죄다 예쁘거든요.


찻잔도 예쁘고, 브랜드에서 나오는 티 패키지도 예쁩니다. 이건 제가 2020년에 때를 놓치고 못 사서 땅을 쳤던 루피시아의 《일본 삼십경》테마 티 북인데요,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서른 가지 테마 풍경으로 각각 차를 만들어서, 정말로 여행기를 펼치는 것처럼 차를 하나씩 뜯어 마실 때마다 다른 풍경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그런 컨셉…… 말하다 보니 역시 너무나 갖고 싶습니다. 



그뿐인가요. 조금 더 고급 문화로 들어가서 앤틱 찻잔이나 차도구들을 보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화려하게 꾸며진, 당대 예술의 최고 작품들도 찻주전자며 차 항아리에 다 있습니다. 골동품에 취미를 가지면 끝이 없대요. 인류의 역사만큼 유구한 차의 역사 속에서 차 문화가 공예와 만난 모든 부분, 종교며 다른 사치 문화와 만난 모든 접점을 탐색하며 즐거워지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유명한 작가 작품인 향로나, 주칠이 들어간 모란 조각 향합, 정말로 끝내주는 청화백자 도자기, 문화재로 지정된 아름다운 그릇 같은 것들을



……라고 하지는 못합니다. 당연하죠. 문화재는 어마어마하게 비싸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 분 가운데 하나는 '언젠가 반드시 꼭 갖고 싶은 물건' 목록에 국보가 포함되어 있다고도 하시더군요. 물론 국보를 소장할 수는, 웬만해서는, 절대 없으니까 영원히 갖고 싶은 물건이자 못 먹는 떡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국보 천목요변다완


이런 판이다 보니 차 취미인으로서 물욕이 생기기는,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아니, 물욕이 생기지만 물욕에 휘둘리기는 어렵습니다. 애초에 휘둘릴 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절대 살 수 없는데 예쁜 것을 보아서 물욕이 생겨 봤자 뭘 하겠어요?


물론 국보가 아니더라도 1년 생활비 정도 하는 주전자나 한 달 생활비만큼 하는 찻잔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달 생활비는 안 되겠지만, 한 달 취미비에서 얼마쯤 초과하는 물건은 살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럴 수는 있습니다. (어록 : 누가 물그릇을 25만원 주고 사요, 누가 대나무 집게 하나를 7만원 주고 사요, 바로 제가 그러네요…….) 하지만 매달 그렇게 할 수는 없지요. 그런 무리해서 하는 소비는 정말 평생 안고 갈 결정적인 물그릇이나 앞으로 10년간은 이것만 쓸 집게를 발견했을 때나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타협을 배우며 살아가게 됩니다. 정말로 예쁘지만 사지 못하고 지나간 개완, 이건 정말로 내 찻장에 있어야 하지만 마침 이번 달은 진짜 돈이 없다, 그래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경매가가 너무 올라가서 결국은 무리인 가격이 되었다, 사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전시가 오픈하자마자 이미 모두 예약되어 살 수 없었다 등등. 가격이든 가격이 아니든 다양한 이유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25만원짜리 물그릇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를 좋아하다 보면 결국은 자신의 찻장을 가지게 됩니다. 내 찻잔, 내 찻주전자, 내 숙우, 내 집게와 다하와 차 수건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살 수 있을 때 사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저희는 이제 그것을 인연이라 부릅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참 많고, 그 아름다운 것을 기가 막히게 잘 골라 오시는 셀러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눈앞에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예쁜 것들만 가득 늘어놓는 일도 참 잦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예쁘지만, 내 것이 아닌 것' 과,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덜하지만, 내가 가져온다면 분명 아름답게 살려낼 수 있는 것' 을 발견하는 능력도 점차 길러지고, 그러다 보면 '나다운 것은 무엇인가' 라거나 '나는 어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가' 하는 나 자신에 대한 통찰도 깊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물론……,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놓칠 때도 있지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듯 사랑하는 물건을 놓치고 나면 며칠은 진짜로 눈앞에 그 물건이 아른아른합니다. 하지만 지나간 물건을 어쩌겠어요.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물건을 또 만나게 되는 만큼 그 중에서 다시 새롭게 사랑에 빠지는 물건도 알게 되고, 그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알게 되지요. 인연 중에 특별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또 인연이란 지나간다 해도 언제나 새롭게 찾아오는 것이 있다는 것을요.



물건과 욕심과 사랑을 반복하다 보면 세상에 참 별일이 다 있구나 싶습니다. 정말 아끼는 찻잔을 깨뜨려서, 울면서 그 찻잔 값보다 더 나가는 비용을 지불하고 수리하기도 하고, 한때 죽고 못 살 것처럼 좋아했지만 이제는 더이상 내게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내보내기도 합니다. 물건에 인연이라는 말까지? 싶다가도, 이렇게 물건과 사람 사이에 만남과 사랑과 이별과 권태가 다 있으니 연이라 말을 못 붙일 일이 전혀 없는 것 같네요.


그러니까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서 차 동호인은 알게 됩니다. 고요한 마음을. 


어머, 이건 꼭 


못 사도 괜찮습니다. 만약에 형편이 안 된다면 말이죠. 이번에 이걸 못 산다고 해도 안목이 자람에 따라 또 새로운 예쁜 것이 보일 테고, 그러다 보면 정말로 마음을 끄는 그 순간에 조금은 무리해서라도 결정을 내리는 법도 배우게 됩니다. 정말 아쉽게 놓쳤다고 해도, 한숨 한 번 쉬고 '그것과는 인연이 아닌가 보죠.'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지요.


요즘다인의 사진사 백이나 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설령 좋아하는 것 전부를 산다고 해도, 전부 사서 놓을 공간이 없을 테고, 공간도 산다면, 이제 전부 사용할 시간이 없게 될 것이라고.


시간까지도 있다고 하면 이제는 권태로울 것입니다. 이것이나 저것이나 너무나 많은 수많은 아쉬움 없는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싸인다면 하나하나의 소중한 빛, 없었을 때의 아쉬움을 어떻게 알고 그 물건을 아껴 줄 수 있을까요.


글을 쓰는 키보드를 내려놓고 뒤에 있는 찻장을 돌아보면, 그것은 차를 사랑하는 시간 동안 내가 고르고 만나고 우연히 살 수 있었던 작은 기적들의 모임. 내가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설명하고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있는 프로필이자 이름표와도 같은 것입니다.


칠이 들어간 대나무 발, 국화문 옻칠 과자 접시, 송매 채색 과자 접시, 청화 백탕기, 나팔꽃 문양 후타오키, 결이 아름다운 우묵한 원형 나무 쟁반과 그 뒤로 보이는 차시……

 

저는 친구들에게 집에서 차를 타 줄 때 제 모든 찻잔과 찻사발에 얽힌 이야기를 설명해 줄 수 있어요.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살 수도 없었고, 모든 것을 꼭 다 사지 않아도 괜찮았던, 아쉬움과 고요함과 기쁨과 설렘이 교차하는 시간의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사진 : Yubin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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