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스톡뉴잉턴

시간과 정신의 방

by 혜현


낯선 나라에서 적응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것은 아무래도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닐까. 인생 두 번째 어학원이 시작하는 날, 영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지원했던 첫 번째 워킹 홀리데이에서 탈락하고 (파트너는 한 번에 붙었다) 나는 1년짜리 어학원 코스를 들으며 두 번째 워킹 홀리데이를 노려보기로 했다. 그가 합격한 워홀을 길게 미룰 수 없어 고안한 고육책인 셈이었다. 일본과 다르게 영국은 외국인들에게 발급하는 비자의 종류와 제한이 훨씬 엄격한 편인데, 정규 교육과정을 듣는 학생이 아닌 어학원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포함한 경제활동이 아예 금지되어 있다. 1년 동안 파트너의 수입에 의존해야 하니 당분간은 긴축재정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


어학원 첫날의 기억, 핑크색 재생지가 우연히 가져간 텀블러와 딱 맞았던



J의 스튜디오 서블렛이 시작하기 전 3주 정도의 임시숙소는 Stoke Newington이라는 곳에 있는 에어비앤비로 정해졌다. 1박 10만 원 내외의 런던 치고는 매우 저렴한 곳이었는데 호스트가 집 한 채의 방들을 제각각 에어비앤비 돌리고 있는 좁은 2층 플랏이었다.


Stoke Newington은 지금이야 이스트 런던에서 일하는 많은 디자이너들의 워너비 플레이스이긴 하지만 런던에 처음 도착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모든 게 그저 낯설고 어려웠던 나에겐 매우 무법지대로 보이는 곳이었다. 런던에서 그 지역이 부유한가 아닌가를 가르는 척도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슈퍼마켓의 등급이다.


4년 반 동안 굉장히 개인적으로 느꼈던 슈퍼마켓의 등급은 아래와 같은데


M&S, Waitrose

Tesco, Sainsbury’s

Morissons, Iceland, ASDA, Aldi, Lidl


사실 나 같은 이방인이야 공산품은 (e.g 코카콜라, 스팸 등 빅 브랜드) 가격이 저렴한 Lidl이나 Iceland에서 구매하고 기본 식재료는 Sainsbury’s 과일이나 고기, 샌드위치 등 점심메뉴는 M&S, Waitrose를 자유롭게 오가며 이용했는데 영국인들 사이에는 쇼핑하는 슈퍼마켓이 제법 나눠져 있는 편이다. Stoke Newington은 Tesco와 Iceland가 있고 Whole Foodmarket이 있는 걸로 미루어볼 때 중산층과 힙스터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작고 아기자기한 소품샵들과 카페가 많다. 크리 솔드 파크로 가는 길을 유독 좋아했는데 여기서 여태껏 본 생선가게 중에 가장 세련되고 예쁜 생선가게를 보기도 하고


생선가게가 이렇게 예쁠 수 있다니 런던의 매력이란 정말

저 차분한 베이지색 외관 안에 청남방에 샛노란 에이프런을 맨 주인분이 나오는 순간 아 너무 예쁘다!라는 생각만 들었던 그런



침대와 옷장, 그리고 1인용 소파가 있던 작은 방에서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경험을 했던 3주간. 어학원이 점심쯤에 끝나면 센트럴에서 점심을 먹거나 버스를 타고 돌아와서 오후를 보내야 했기에 큰 일정이 없었날들은 그 조그만 방에서 둘이 지내는 게 곤혹이었다. 종종 이때를 ‘그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고 우리끼리 부르곤 하는데 그 시간이 정말 천천히 가는 느낌이란… (심지어 인터넷 신호가 너무너무 약했다!)



그래도 이 공간이 사브리나의 에어비앤비보다 좋았던 것은 취식이 된다는 것. 1층에 있는 공용 부엌에서 질릴 대로 질린 맛없는 영국 슈퍼의 음식이 아니라 파스타와 샌드위치를 마음껏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이 동네는 생선가게가 많아서 그날그날 회로 먹을 수 있는 연어나 파스타용 조개류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정말 큰 장점이다. 다녀보면 의외로 생선가게가 가까운 동네가 많지 않다.


또 다른 스톡뉴잉턴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크리솔드 파크- 큰 나무기둥들이 툭툭 놓여있는 넓은 잔디밭이 좋다. 한국처럼 초원과 들판이 희귀한 나라에서 온 나는 그냥 감동 감동



그렇게 낯설고 조금은 무서운 동네에서 조금씩 조금씩 런던을 알아가던 아주 초창기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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