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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inee Oct 22. 2021

얘가 왜 이래?

Part 2. 스물~스물아홉: 노잼 라이프 청산기 6

- 나, 독립하고 싶어!


몇 날 며칠, 몇 백번이나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그 말을 토하듯 뱉어냈다. 엄마의 첫 마디는 심플했다.


- 놀고 있네.


아빠는 말없이 내가 건넨 <독립 프로젝트 제안서>를 뒤적였다. 


- ......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뭐라고?

- 독립이요, 독립! 나가서 혼자 사는 그 독립.


한 번도 예상을 벗어난 적 없던 말 잘 듣는 큰 딸이었다.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 암묵적으로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하라는 공부 열심히 하는 학창시절을 지나 그 흔하고 요란한 사춘기도 없이 대학을 졸업했고, 한 번의 취업과 한 번의 이직을 거친 사회생활 5년차 직장인이었다. 그냥 저냥 잘 지내다가 시집이나 갈 줄 알았던 큰 딸의 난데없는 '가출 통보'에 4개의 눈동자가 한참을 데룩데룩 굴렀다.


내가 내민 제안서를 거들떠보지 않고 적막을 깬 사람은 엄마였다.


- 절대 안 돼! 시집도 안 간 여자애가 혼자 나가 살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는 줄 알아! 집이 코앞인데 어딜 나가서 혼자 산다는 거야! 위험해서 안 돼! 나가 살면 다 돈인데, 돈지랄할 생각하지 말고 결혼이나 해!


아빠는 한참을 제안서를 뒤적거리다가 한 마디를 남기고 조용히 방에 들어가셨다.


- 엄마가 안 된다고 하네.


<독립 프로젝트 제안서>는 대실패였다. 한 클라이언트는 제안서의 표지를 들춰보지도 않았고, 한 클라이언트는 다른 클라이언트의 피드백 뒤로 숨었다. 과장님의 예측대로였다. 역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포기하기엔 주변에 소문을 너무 많이 냈다. 회사에도, 친구들에게도 독립할거라고 호기롭게 떠들고 다녔단 말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독립 준비는 잘 되어 가느냐고 물어보는데 '포기'라고 하기엔 묘하게 쪽팔렸다. (교훈: 무슨 일을 벌일 때는 소문을 내고 다니자. 하겠다고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니면 포기할 수 없는 동력을 얻는다).


에라~ 모르겠다.

이왕 저지른 일. 무소의 뿔처럼 끝까지 가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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