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디보다 가사에 집중하는 사람의 음악에 관한 생각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은 아니지만 운전을 시작하고 나서 졸지 않기 위해 다시 노래를 찾게 되었다.
어떤 음악이 즉각적으로 내 맘을 사로잡는다면 그건 분명 도입부의 충격적인 멜로디나 리듬 때문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내 마음속 한자리를 차지하는 노래들은 가사가 좋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가사에 집중하며 음악을 감상하는 편이다 보니 가사의 전개가 말도 안 되는 경우를 발견하게 되는 일도 잦고, 나중엔 자꾸만 가사가 거슬려 더는 듣지 않게 된 노래들도 있다. 그래서 직접 노랫말을 쓰는 가수들을 좋아하고 (대부분 밴드), 노래가 너무 좋았는데 작사가를 따로 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내 흥미가 좀 떨어지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가사는 세밀한 감정을 뾰족하게 잘 짚어낸 것. 사랑을 막 시작하는 설렘을 담은 노랫말, 사랑의 클라이맥스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노랫말을 좋아한다. 생애 가장 대중음악을 즐겨 듣던 시기가 딱 고등학생 때부터 스물, 스물하나 정도여서일까. 수준이 거기에 머물러있는 듯.
반면 절절한 이별 노래는 더 이상 기혼인 나로선 공감하기 어렵기에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담담한 이별 노래는 또 나쁘지 않다. 드물게 사랑을 다루지 않은 노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잘 없다.
여름이 되자마자 달달하고 유치한 사랑 노래가 생각났다. 문득 신기해졌다. 딱 그 나이 대에 맞는 노래를 쓰고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30대, 40대, 50대가 되어도 비슷한 사랑 노래를 계속 만드는 가수들도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길러도 어떻게 계속 비슷한 20대 초반의 감성을 유지하는 걸까.
가사 속 주인공이 모두 현재 배우자는 아닐 텐데. 과거의 경험을 불러와 쓰는 것일까, 상상력을 발휘해 쓰는 것일까? 두 경우 모두 현 배우자 입장에서는 크게 달갑진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티스트, 그리고 아티스트와 함께 사는 이들에게는 이런 것쯤은 쿨하게 감수할 수 있는 영역이려나.
내 마음에 남아있는 노랫말들을 몇 가지 모아봤다. 정말 모두 딱 20대 초반까지 듣던 노래다. 아직도 따라 부르면 설레는 가사들.
우리 좋았던 날들의 기억을
설탕에 켜켜이 묻어
언젠가 문득 너무 힘들 때면
꺼내어 볼 수 있게
브로콜리 너마저 <유자차>
오랜만테 학교에서 후식으로 나온 귤
아니 벌써 귤이 나오다니
얼굴이 스치는 바람이 차졌다
생각은 했지만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을 줄 일이야
재주소년 <귤>
낯익은 거리들이 거울처럼 반짝여도
네가 건네주는 커피 위에 살얼음이 떠도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 거야
바닷속의 모래까지 녹일 거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 위로
검정치마 <Antifreeze>
꽤나 조그마한 어쩜 한심할 정도로 볼 품 없는 그저 그런 누추한
하지만 너의 따뜻함이 나를 스치던 네 평 남짓한 공간에서 조용한 웃음과 시선,
슬픔을 건네주며 당신은 내게 물었죠 "지금 무슨 생각해"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단 생각해
현실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너무 완벽해
그래서 제발 내일 따윈 없었으면 좋겠단 생각하고
역시 만나질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그런 생각 해
너의 손끝에 닿은 나의 초라한 불안함 들은 온통 아름다움으로
그리고 난 춤을 추죠 너의 눈 속에서
넬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