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엄마가 되고 싶어졌다

낳을까, 말까 - 그 이후의 이야기 <1>

by 혜인

갑자기 아기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딩크로 사는 삶과 부모가 되는 삶을 앞둔 고민을 대한민국 사회의 저출생 현상과 함께 엮은 <낳을까 말까>를 출간한 지 꼭 한 달 만의 일이다.


일시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30대 초반 이후 아이에 대한 나의 고민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어왔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담아 결국 책까지 내지 않았는가. 고민의 끝에는 대개는 “낳지 말자, 지금 이대로도 좋아” 쪽으로 결론이 나기는 했지만.


책에 고민을 모두 털어버려서일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일까?

이토록 강렬하게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강렬하게 사로잡힌 건 처음이었다.



감정의 동요는 일요일, 지인들이 열어준 출간 파티에 다녀와서부터 시작됐다.


“자식 복이 진짜 좋은데, 잘 생각해봐요.”


50대 지인이 내게 말했다. 몇 년 전, 사주를 공부한다는 그녀의 말에 나와 배우자의 생년월일과 시간까지 엉겁결에 알려준 적이 있었다. 자식운이 좋다는 말을 처음 듣는 건 아니었다. 20대 초반부터 취미 삼아 사주를 볼 때마다 '아이를 낳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들어왔고, 그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었다.


그런데 이날 지인이 해준 이야기는 사뭇 새로웠다. 자식운이 있는 사람이 아이를 낳지 않으면, 결국 누군가를 자식처럼 돌보도록 인생이 흘러간다는 거였다. 가장 흔하게는 부모가 아프거나 나이가 들어 기대서 자식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함께 자리한 다른 50대 여성이 “산 증인 여기 있어. 내가 꼭 그렇게 됐잖아”라며 거들었다. 몇 년 전부터 부쩍 정서적 지지를 필요로하는 엄마를 둔 나로서는 이 얘기를 듣자마자 화들짝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갈 팔자라면 그래도 부모보다는 자식을 돌보는 게 낫지 않겠는가.


파티 이후 한 주 내내 챗GPT를 붙들고 자식운에 대해 질문했다. 먼저 “자식운이 좋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GPT는 내게 자식운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김연아, 손흥민 같이 대성할 자식을 두는 경우, 둘째는 자식을 낳고 기름으로써 내 운이 풀리는 구조라고 했다. 내 사주는 후자라고 했다. 자식을 낳으면 막혀 있던 구조가 어떻게 되어서 재복이 들어온다나 뭐라나.


인공지능의 사주풀이를 완전히 믿을 수 없어서, “누구에게나 다 자식운 좋다고 하는 거 아니냐”고도 물었다. 그러나 지피티는 아니라고 했다. 내 사주팔자가 유독 자식운이 좋다고.



내가 정말 엄마가 될 운명일까.


갑자기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인스타그램 속 또래 부부들의 일상이 좋아 보이기 시작했다. 어딘가 궁상맞지만 희노애락이 깊게 물든 그들의 삶이 부러워졌다. 꽤 말끔한 우리 집보다 다 아이 빨랫감과 장난감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그들의 집이 더 ‘진짜’인 것 같았다. 언제고 마지막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여유로운 딩크 부부의 삶이, 일순간 시시하고 밍밍하게 느껴졌다.


“둘이 살면 좋겠지, 진짜 행복은 결코 알 수 없겠지만.”

아이 없는 부부의 삶을 멋대로 재단하는 말을 들을 때면 그렇게도 화를 냈던 내가 이런 생각에 이르다니.


요즘 회사 일이 한가해져서일까. 아니면 30대 후반을 앞두고 유전자가 발버둥을 치는 걸까?


아기를 떠올리면 즉각적으로 함께 따라오던 먹구름 같은 생각들은 다 어디로 갔지. 신체가 망가지는 것, 체력이 떨어지는 것, 희망이 없는 것 같은 사회, 기후 위기,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것... 무엇보다 태어남을 늘 부정적으로 인식해온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새로이 삶을 부여한다는 생각은 너무 버겁게 느껴졌는데, 분명 나 혼자 먹고살기도 힘든 세상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아이를 낳고 싶다”는 강한 열망 아래 이 모든 걱정들이 순식간에 힘을 잃었다. 아이의 운명은 아이가 물고 태어날테고, 출산의 고통은 어찌저찌 지나갈 것이다. 인류 역사상 고통스럽지 않은 시대란 없지 않았는가.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말 그대로 내 안에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아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그동안 왜 아이를 낳지 않으려 했을까? 바로 몇 주 전의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비이성적인 상태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아이방 꾸미기, 미니멀 육아, 자연주의 출산 따위의 것들을 검색했다. 중성적이며 전 세계에서 발음하기 쉬운 이름으로 무엇이 좋을지 고민하는 데 여가 시간을 썼다. 마치 곧 진짜 엄마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처음엔 이 모든 것이 정말 사주 때문이라고, 내가 반쯤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자 나는 다른 가설을 믿게 됐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어떤 운명적인 이유를 찾아왔던 게 아닐까 하고. 낳을까, 말까의 고민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면 결국은 낳지 않겠다로 매듭지어지고야 만다. 이 고민의 굴레를 무색하게 할,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끔 만드는, 어떤 거역할 수 없는 끌림을 내가 기다려왔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때마침 자식운이라는 단어와 마주했을 뿐이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리던 무더위가 끝나간다. 몇 번의 장마와 태풍을 겪으며 나는 서른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그 사이 나는 처음으로 난임 병원에 방문했다.


집필 과정에서 책의 소재로 써볼까 하는 생각에 병원 내원을 잠시 고민했다 접었던 적이 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을 알기 때문이었는데, 혹여나 임신이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바로 아이를 낳고 싶어질까 두려웠다. 주변의 여성 지인들이 실제로 부인과적 문제를 마주한 뒤 아이 낳기를 결심하고 엄마가 된 것을 왕왕 목격하기도 했다. 당시의 나는 그렇게 휩쓸려 엄마 되기를 선택하고 싶진 않았다.


몇 가지 가임력 검사 후 좋지 않은 소견을 받았다. 운명이란 참 재밌어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이니 아이를 낳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마음만 먹으면 아이가 생길 거라는 순진한 믿음을 안고 살아왔던 나는 새로운 사실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다.


엉망인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겠냐고 책 한권을 할애해 따져 묻던 나의 고민에 ‘낳을 수 있을까’라는 한 가지 변수가 더 추가됐다. 문제를 맞닥뜨리면 아이를 더 갈망하게 될 거라는 예측과 달리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운명에 나를 더욱 내맡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물론 또 부지불식간에 불안함에 이끌려 아이를 어떻게든 성취하려들지도 모른다.


나의 자식운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마 10년쯤 후에야 알 수 있겠지만, 어떤 식으로 흘러가든 언제나처럼 나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게 될 것 같다. 예측할 수 없는, 삶이 이끄는 방향으로.


2025년 8월


와사비라이팅클럽 6기를 통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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