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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ish Dec 05. 2018

어느날 갑자기, 내 개가 혼자 남겨진다면

‘누구에게 부탁할까’ ‘누구도 우리만큼 예뻐해주지 못할텐데…

1925년생인 영화배우 황정순씨는 2014년 우리 나이로 90세 때 돌아가셨다. 생전에 자녀가 없었던 고인은 의붓손자와 조카손녀, 조카손녀의 남동생 등 세 명을 입양했는데, 그들은 황씨의 죽음 이후 남은 80억원대의 유산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인다. 이 사건을 다룬 시사프로 <리얼스토리 눈>(이하 눈)으로 추측컨대 그들은 유산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황씨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황씨는 개 두 마리를 길렀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인근 동물병원 원장이 “십몇 년 정도 됐다”고 한 것으로 보아 황씨가 개를 입양한 것은 70대 중반을 지난 시점이었으리라. 아마도 그 개들은 쓸쓸히 지내던 황씨에게 커다란 기쁨을 줬을 것이다.

누구도 개 두마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문제는 고인의 죽음 이후였다. 황씨 사후 10여일이 지났을 무렵 <눈> 담당자가 찍은 삼청동 자택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집이 흡사 폐가를 방불케 한 것도 그렇지만, 개 두 마리가 그 집에 방치된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던 것이다. 유산 싸움에 몰두하던 이들 중 어느 누구도 그 개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 개들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그 개들을 더 괴롭힌 것은 자신들을 따뜻이 돌봐주던 주인의 부재였다. 그래도 그 개들은 주인이 돌아오기만 하면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으며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으리라.


그 뒤 이 개들은 어떻게 됐을까? 방송이 나가고 며칠 뒤 동물구조단체가 그 집을 찾았을 때, 개들은 보이지 않았다. 어찌어찌 조카손녀에게 연락이 됐지만, 그녀는 개를 방치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데리고 나왔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개가 잘 있는지 사진이라도 보여달라는 구조 단체의 요청을 거부했다. 


몇 살까지 개를 입양할 수 있을까

개의 행방은 황씨를 다룬 <눈> 후속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조카손녀가 개들을 안락사했다. 구조 단체에선 그녀를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지만, 개들의 권리를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나라인지라 그녀가 처벌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조카손녀를 탓할 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혼자 살면서 개 두 마리를 키웠던 황씨가 누군가에게 “내가 잘못되면 개를 책임져 달라”고 부탁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는 안됐을 테니까.


그런데 그런 부탁을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람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하며, 자신의 나이와 건강을 모른 채 당장의 외로움 때문에 개를 입양한다. 그 개들이 조명을 받은 것도 황씨가 유명인이었기 때문일 뿐, 이 세상에는 주인의 죽음 이후 버려지는 개들이 수도 없이 많다. 몇 살까지 개를 입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중환자실에서 개의 안부를 묻다

이게 꼭 나이든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1년 어느 날, 난 몸이 좋지 않다는 걸 느꼈다. 속이 꽉 찬 느낌이었고 몸도 으슬으슬 떨렸다. 새벽 1시쯤, 더 이상 안되겠다 싶었는지 아내가 119를 불렀다. 알고 보니 내 부주의로 인해 열흘 전 수술했던 부위가 터졌고, 거기서 출혈이 계속되는 바람에 피가 모자라 몸이 떨렸던 것이다. 인근 병원으로 가서 응급조치를 받은 뒤 난 원래 다니던 단국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아내와 함께 구급차에 실려 천안으로 가는 동안 집에 남겨진 개들을 생각했다. 당시 난 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낯선 사람들이 와서 주인을 데려갔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싶었다. 앞으로 며칠간 집에 들어가지 못할 텐데 밥과 물은 어떻게 줘야 할지도 걱정됐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데 면회 시간이 되자 아내가 나타났다. 제일 처음 물어본 것은 개의 안부였다.


‘남은 삶<개 수명’이라면? 

그때 이후 아내와 종종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또 다시 급한 일이 생기면 누구에게 개 부탁을 해야 할지에 관해서. 아내가 말한다. “근데 그 부탁이라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게 일시적인 거라면 가능하겠지만, 계속 개를 맡아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세상에 어느 누구도 우리 개들을 우리만큼 예뻐하지 못한다. 남은 유산을 모두 그에게 준다는 조건으로 개를 부탁한다 해도,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예쁜 개도 천덕꾸러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다. 우리가 입양한 개보다 먼저 죽어선 안 되며, 부부도박단 같은 일로 둘이 동시에 감옥에 가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그러다 보니 다음과 같은 결심도 하게 된다. “우리가 살 수 있는 나이에서 개 수명을 뺀 나이 이후로는 새로운 개를 입양해선 안된다.”평균 수명만큼 내가 살 수 있다면, 새로운 개 입양이 불가능해지는 나이는 65세다. 우리 집 막내가 이제 8개월이란 걸 감안하면, 우리에게 새로운 개는 이제 없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개들이 마지막 개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야겠다. 우리 개들이 황정순님의 개들과 같은 운명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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