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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ish Dec 06. 2018

펫 로스 증후군 줄이려면 이별의 기술 필요

반려동물 잃었을 때 속으로 묻어두지 말고 적극 표현하는 게 좋다

해마루동물병원 내 환자 면회실. 이곳은 임종을 맞이하는 동물과 보호자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SBS <TV 동물농장>은 2001년 첫 전파를 탔다. 방송 이후 특정 견종은 품귀를 빚을 정도로 인기를 끌며 반려동물 붐을 견인했다. 그렇게 새 식구가 된 반려동물들이 노령화 단계에 와 있다.


소형견의 평균 수명은 10~12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의학 기술 발달 덕분에 요즘은 14~15살까지 살고 있다. 대형견의 수명은 다소 짧다. 체중 50㎏대 초대형견으로 분류되는 그레이트데인의 수명은 7~8년에 불과하다. 소형견은 보통 7, 8살이 되면 노령에 든다. 견생의 1년을 인생의 6~7년으로 본다. 고양이는 해외 통계에 따르면 통상 18~20년을 산다.


나이가 들면 관절부터 삐그덕 소리를 낸다. 활동성이 떨어지고 뇌기능이 저하되며 시력과 청력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우리는 이를 자연스러운 노화로 받아들인다. 반려동물 역시 같은 과정을 겪는다. 다만 표현을 못할 뿐이다.
  

더 이상의 치료가 어려울 때 마지막 선택으로 ‘안락사’도 통증·운동성 등 지표 마련해 반려인에게 충분한 정보 주고 안락사 결정 후엔 심리적 지지 필요

임종 지키고 장례 치르는 것도 펫 로스 증후군 더는 데 큰 도움

“ ‘반려’라고 하지만 개나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야생의 습성이 남아있어서 자신이 아픈 것을 잘 드러내지 않아요. 이 때문에 보호자가 반려동물이 아픈 걸 인지하는 순간 이미 늦은 경우가 많죠.” 해마루동물병원 김현욱 원장(사진)이 건강검진을 통해 최소 1년에 한번은 건강 상태를 체크하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외모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반려동물은 질병의 조기발견이 특히 중요하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질병을 조기발견할수록 적합한 치료와 관리를 통해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 실제 둘러본 동물병원의 의료기기나 약제는 사람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비싼 기계의 활용빈도가 사람의 의료에 비해 적은 만큼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동물병원과 보호자의 몫이 되고 있다.


반려동물에게 더 이상의 의료적 조치가 어렵거나 삶의 질이 유지되기 힘들 때 담당 수의사는 보호자에게 안락사를 권하기도 한다. 김 원장은 “수의사들이 안락사를 권하는 이유는 고통스럽게 눈을 감는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본 뒤 ‘편하게 보낼 걸’ 하고 후회하는 보호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죽음과의 싸움이 장기화될 경우 반려동물의 고통이 고스란히 보호자에게 전이되기도 한다. 더 살기를 바라는 마음과 차라리 빨리 갔으면 하는 양가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안락사에 대한 가족 내 의견이 분분한 경우도 있다. 안락사에 대한 비난을 짊어지게 되는 구성원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한다. 


원만한 작별이 안될 때, 감정적인 갈등을 겪을 때 ‘펫 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은 혹독하게 다가온다. 실제로 고양이를 안락사시킨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반려인도 있었다. 김 원장은 반려인에게 안락사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주고 또 결정 이후에는 심리적 지지를 해주고 있다고 했다. 해마루동물병원은 자체 제작한 책자에서 반려동물의 삶의 질 척도표를 통해 질병 진행과정에 따른 계획을 미리 세우도록 했다. 통증, 배고픔, 위생, 운동성 등 각 항목의 점수를 체크해 35점 이하일 경우 안락사를 택하는 것이 낫다는 일종의 객관적 지표를 마련해둔 것이다. 반려인들에게 이 척도표는 쉽지 않은 결정의 객관적인 근거이자 심리적인 지지대가 된다.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휴가를 낼 수 있는 직장인은 극소수다. 반려동물 상실을 자식의 죽음에 비견하는 이들도 있지만 “개새끼 하나 죽은 거 때문에 뭘 그러느냐”는 비아냥은 도처에 있다. 특히 반려동물에 대한 심리적 의존도가 높은 노령층의 경우 반려동물의 죽음이 불러오는 충격은 크다. 김 원장은 “덴마크와 같은 선진국은 주치의와 수의사 간 협업관계가 잘되어 있어서 반려동물이 죽을 경우 수의사가 노령 보호자의 주치의에게 보호자의 정신적 특별 관리를 요청하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기 위해 24시간 펫 로스 상담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해마루동물병원은 4개조 의료진이 24시간 상주하며 365일 운영되는 2차진료병원이다. 죽음의 문턱에 섰던 반려동물이 무사히 반려인에게 돌아가는 회생의 공간인 동시에 숱한 이별과 맞닥뜨리는 극적인 장소다. 병원 내에는 임종을 앞둔 반려동물과 보호자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면회실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김 원장은 “안락사를 결정한 보호자에게 ‘원한다면 반려동물의 곁을 지키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며 “잠들 듯 편안하게 가기 때문에 마지막을 함께하는 것이 더욱 마음의 위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의 삶은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죽음이란 관계가 영원히 단절되는, 가장 큰 슬픔 중 하나잖아요. 반려동물의 죽음을 겪는다는 건, 나중에 겪을 수 있는 슬픔을 덜어줄 수 있는 일종의 심리적 예방주사라고 생각합니다.”


반려동물의 노화에 동반되는 또 하나의 변화는 치매 증상이다. 대소변을 잘 가리던 개가 갑자기 실수를 한다거나, 수면 주기가 바뀌어 밤에 돌아다니는 등 이상행동을 보인다. 보호자와의 유대관계가 달라지거나 성격이 변하기도 한다. 멍하니 벽을 쳐다보고 있는 반려동물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일본은 노쇠한 반려인을 대신해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시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해마루동물병원은 3년 전 호스피스 개념의 케어센터를 열었으나, 국내에서는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지금 추세대로 초고령사회가 된다면, 반려동물과 반려인 모두를 위한 동물 전용 호스피스센터가 절실해질지도 모른다. 
  


해마루동물병원은 임종한 반려동물의 발도장을 부조로 만들어 보호자에게 선물한다. 강윤중 기자


장례식과 같은 고별 의식을 치르는 것도 펫 로스 증후군을 더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또한 ‘잘 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매장 혹은 화장을 하거나 지정되지 않은 곳에 유골을 뿌리는 것은 위법이다. 등록된 장묘업체를 통해 화장이나 빙장(氷葬) 후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유골로 보석을 만들어 소유하기도 한다. 해마루동물병원은 보호자들에게 반려동물의 발 모형을 제작해주고, 원할 경우 사전에 털 일부를 잘라두었다가 보내준다. 반려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손끝이 기억하는 감촉이기 때문이다. 또한 펫 로스 치유모임을 소개하고 참석권을 제공 중이다. 상실감을 이해해주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슬픔에서 벗어나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펫 로스 증후군을 줄이기 위해 애쓰는 궁극적인 목적은 다시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게 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것이 사람의 삶을 훨씬 풍요롭게 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온전히 지켜보는 것은 극히 드문 경험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짧은 생을 살며 인간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는 반려동물은 그 제한적인 체험을 가능케 한다.
 
이현서 상담학박사(사진)는 논문 ‘중년여성들의 노화반려견 상실경험’을 위해 반려견의 전 생애를 지켜본 14명의 여성을 만났다. 인터뷰는 눈물을 동반했다. 그중 2인은 극심한 펫 로스 증후군의 고통을 호소해 전문 상담기관으로 안내했다. 이 박사는 “반려견의 죽음에 의한 슬픔이 인간과 사별로 야기되는 슬픔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드러냈다”고 기술했다. 

“우리 개가 죽을 리가 없다는 부정, 왜 이렇게 짧게 살다 가느냐는 분노, 안락사를 결정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 안락사를 실시한 수의사에 대한 원망 등 반려동물을 먼저 보낸 이들의 감정은 너무나 다채롭습니다. 상실을 현실로 수용하고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때 가장 절실하지만 어려운 일이 슬픔의 표현이다. “다 잊어버리고 새로 강아지 키우면 되지”라는 위로는 상처를 헤집는다. 슬픔의 근원을 건드리는 것이 고통스러울 거라는 생각에 다들 ‘그 이야기’만은 꾹꾹 참는다. 중년 여성들의 경우 반려동물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과 동일시하면서도 가족들의 정신적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인해 슬픔을 억누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 박사는 슬픔이나 분노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애도의 터널을 빨리 통과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공감대를 가진 이들이 모인 펫 로스 치유모임 등이 좋은 예다. 이와 관련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여럿 운영되고 있다. 지금의 슬픔과 고통스러운 감정이 당연한 것이라는 동지의식은 든든한 지지자원이 된다. 그렇다면 펫 로스 당사자에게 주변인들이 할 일은? 잘 들어주고 공감하기이다. 

한 사례자는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른 후 평소 반려견이 먹고 싶어 했지만 건강상 이유로 주지 못했던 피자, 아이스크림 등을 차려놓고 49재를 지냈다.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의식 절차를 치르는 것도 죽음을 받아들이고 마음 정리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이 박사는 말한다. 

“‘30분 울 울음을 20분에 끝내지 말라’는 말이 있어요. 자신이 겪은 상실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애도하지 않은 채 묻어두고 억압하면 다른 상실이 생겼을 때 한꺼번에 밀려나오게 되어 있거든요. 슬픔은 억지로 이겨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다독이면서 안고 가야 하는 감정입니다.”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아이들의 슬픔을 경감시키고자 어른들은 강아지가 잠을 잔다거나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곤 한다. 이 박사는 자칫 잠에 대한 공포심이나 반려동물 단속을 잘 못한 부모에 대한 원망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이 경우 반려동물의 수명에 대해 설명하고 장례 및 유품 정리에 동참시키며 그림을 그린다든지, 편지를 쓰면서 자녀들 역시 슬픔을 충분히 표현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 박사는 “반려동물이 하던 행동을 기억하고 따라하라”는 말이 있다고 소개했다. 항상 즐거운 강아지처럼, 근심 모르고 잘 자는 고양이처럼, 왕성한 먹성을 자랑하는 개처럼 지내다보면 평소 삶의 리듬을 회복하게 된다는 은유인 셈이다. 또한 취미활동이나 정기적인 신체활동도 권장된다. 2010년 반려견 코코를 보내고 힘든 시간을 보냈던 강진희씨는 펫자수를 통해 기력을 되찾았다. 강씨는 “코코를 떠나보낸 슬픔을 제대로 위로받기 힘들었는데 아이의 모습을 자수로 작업하면서 어느 순간 마음이 단단해지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사례자들은 ‘내 강아지가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했어요. 중년이 되어 반려견의 죽음을 겪으면서 비로소 자신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큰일’을 치르고 나니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겠다는 다짐이 든다는 분들도 많았고요.” 

‘강아지에게 했던 거 반만이라도 남편에게 했더라면’이라며 반성하는 이도 있었고, 유기견과 동물 보호 전반에 관심을 갖게 된 이도 있었다. 

반려동물을 들인다는 것은 한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돌봐야 하는 것이라는 책임의식을 되새기는 것은 상실의 경험자가 되새기는 교훈이다. 

“상실 경험을 겪고 2개월 전후가 가장 힘듭니다. 6개월 정도 지나면 현실적으로 수용하고 적응하려고 합니다. 1년이 지나도 여전히 힘들면 펫 로스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이 슬픔이 3년 이상 간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 땐 반드시 전문가의 상담을 받기를 권합니다.” 

이 박사는 반려동물에게 신체적 기능을 의지하는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은 펫 로스 증후군 위험도가 높은 만큼 국가적인 차원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가축전염병 발생 시 살처분을 담당하는 이들을 위한 치유프로그램 연구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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