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2010년 일본에서 유학 시절 만난 남편과 결혼을 하여 두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코로나 시기에 잠깐 손을 빌릴 수 있는 양가 부모님도 없이 타지에서 치열하게 아이를 돌보며 지내왔다.
그동안 남편은 자신의 꿈을 향해 끝없이 달렸다. 연구원, 사립대 교수를 지나 바라고 바라던 국립대 교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남편이 꿈을 이룬 것은 아내로서 참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다. 실제로 내가 새벽기도에 나간 이유기도 하였다. 하지만 마음 구석 어딘가 허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학교에서 유학을 하였는데 나는 지금 무엇이 되었을까? 물론 엄마로서 아이들을 끔찍하게 사랑하고 그 사랑 덕분에 아이들이 별 탈없이 자라 주었지만 내가 정말 이것을 위해 치열한 입시를 하고 유학도 다녀온 것일까?
물론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뭐라도 해보고 싶어서 다양한 도전들을 해보았다. '케이크 토퍼'라는 것을 만들어 팔아보기도 하였고 공인중개사 공부도 해보았다. 하지만 언제나 육아가 먼저여야 하던 삶에서 그것들을 잘해나가기 쉽지 않았다. 케이크토퍼는 코로나 때문에 수시로 휴원하던 시절 만들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공인중개사는 2문제 차이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럴 때마다 육아를 탓하면서도 '내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내가 똑똑하지 못해서 그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자존감은 점점 떨어져 갔다.
어느 날 남편은 종이 한 장을 가지고 와서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연필을 들었다. 나를 앞에 앉혀두고 자신의 학생에게 이야기하듯(직업병) 우리 가정의 재테크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지 물었다. 돈을 벌지 않고 있는 내가 "돈을 아껴 쓸게"라는 말 말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경제력이 없는 나 자신이 너무나 무능하고 멍청하게 느껴졌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 내 감정을 말로 설명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재테크는 물론 우리 가정과 노후를 위한 일이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었으니 다음 꿈을 이루려는 남편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나에게도 분명 꿈이 있었다. 어린 시절 일본어를 참 좋아해서 일본유학에 가보고 싶었고,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한 승무원도 돼보고 싶었다. 물론 물공포증의 벽을 이겨내지 못하고 비서로 전향하였지만 내 성격에 참 맞는 일이어서 비서학과 대학원에 가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보스도 젠틀한 분이었고 일본어 통번역도 할 수 있어서 나름 전공도 살릴 수 있던 일자리였다. 여러 가지로 만족스러운 직장이었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결혼까지 쭉 그 회사에서만 일하였다.
하지만 지금 '회사'라는 곳은 내 스케줄에 절대 다닐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내년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아마 더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재테크'라는 것에 기여를 해야 한다. 그것에 기여를 하기 위해 새벽 5시에 눈을 떠서 하원이 1시간 남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였기에 아무것도 되지 않은 걸까? 허망하고 허무하다. 새벽부터 고민했지만 아무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