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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C 최혜진 Oct 01. 2015

에르베 튈레 '깊은 심심함'

<책 놀이><구성 놀이> 작가의 창작 노트  

창의력의 비밀을 밝히겠다고 시작한 연재 2회 만에 ‘심심함’이라는 열쇳말을 꺼내 들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거침없는 선과 색으로 아이처럼 유희하듯 그림을 그리는 에르베 튈레 편에서 말이다. 어쩐지 함께 어울려선 안 될 것 같은 두 개의 단어, 창의력과 심심함. 둘의 비밀스러운 상호작용에 대해 에르베 튈레가 말한다. 


창의력이라는 단어는 힘력(力)자로 끝난다. 그러니까 어떤 ‘힘’에 대한 말이다. 이 연재는 어떻게 하면 그 힘을 기를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무엇을 해야’ 감각이 열리고 뇌가 말랑해지는지 알아보겠다고 시작한 일이다. 이런 생각과 목표 안에서 창의력은 당연히 ‘무언가를 해야’ 길러지는 것이었다. 자유롭고 거침없는 에르베 튈레의 그림책을 처음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림책 안에 응축된 창조적 에너지에 감탄하며 결심했다. 이 작가가 ‘무얼 했기에’ 이렇게 아이처럼 천진한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알아봐야지,라고. 


에르베 튈레는 『우연 놀이』 『구성 놀이』 『색깔 놀이』 『그림자 놀이』  등 놀이 연작으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책들은 주인공이 등장해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일반적인 그림책과 달리 글자 없이 추상적인 그림이 나열되어 있어 언뜻 보면 뭐 하는 책인가 싶다. 그림도 참 막 그렸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거침없다. 그만의 특별함은 독서 방식에 있다. 청각, 촉각, 미각 등 오감을 2차원의 그림으로 표현한 책 『Les Cinq Sens 오감』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더욱더 심화시킨 에르베 튈레는 2003년 발표한 『Turlututu 튀흐뤼튀튀』 시리즈부터는 아예 직접적으로 내레이션을 넣어 독자에게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눈이 아니라 손, 그리고  온몸으로 책을 읽게 만든다. ‘물감을 섞으려고 해. 책을 좀 흔들어줄래?’ ‘괴물이 나타났어! 겁을 먹도록 네가 소리를 크게 질러줘.’ ‘이 책에 입장하려면 비밀번호를 눌러야 해. 여기 그려진 숫자판에서 3790 별표를 눌러줘.’ 이런 요청대로 독자가 책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고, 책 속 그림을 톡톡톡 누르고 책장을 넘기면 짠! 마법처럼 변화가 생긴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이미 결과가 그려져 있던 다음 장으로 책장을 한 장 넘긴  것뿐이지만, 아이들은 자신이 직접 참여해 마법을 이뤄냈다고 믿는다. 신기해 어쩔 줄 몰라하며 책과 단숨에 사랑에 빠진다. 

에르베 튈레는 읽는다는 행위를 ‘몸으로 느끼며 체험한다’로 정의하는 작가다. 독자가 시큰둥하게 책장만 넘겨서는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고, 상호작용 없이 에르베 튈레의 책을 보는 건 충무김밥을 주문해서 오징어무침과 깍두기엔 손도 안 대고 김밥만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목 메이게 안타까운 일이다. 


또 에르베 튈레는 아이들과의 끈질기게 대화하고 싶어 하는 어른이다. 그런 류의 책만 짓는 게 아니라 전 세계 도서관과 학교, 미술관을 돌며 체험형 아틀리에도 연다. 20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아이들이 그의 지휘에 맞춰 동시에 낙서하고 칠하며 순수한 몰입과 유희를 맛본다. 인터뷰를 준비하던 시기, 그의 홈페이지(www.herve-tullet.com)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듯 아이들과 함께 그림으로 호흡하는 사진들을 보면서도 머릿속에선 앞서 말한 대로 ‘무얼 해야’ 시리즈 질문이 꼬리를 이었다. ‘책 놀이를 잘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창의력에는 어떤 미술 활동이 좋을까.’ 등등.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무엇을 더 해야 하느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에르베 튈레는 마이너스로 답했다. 결핍과 심심함, 불확실한 기다림에 대해 말했다. 그로 인해 나는 창의력 속 힘력(力)자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만 했다. 아니오라고 대꾸하는 힘, 하지 않을 용기에 대해 곱씹었다. ‘깊은 심심함은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했던 발터 벤야민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서서히 깨달았다. 이미 너무나 많은 자극에 노출되어 걸핏하면 흔들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고. 처음으로 역으로 생각해보았다. “창의적인 정신성을 갖기 위해, 우리가 거부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머릿속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었다. 




에르베 튈레는 

1958년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광고 업계에서 아트 디렉터로 10년간 일했다. 1994년 첫 그림책 『Comment Papa a rencontré Maman 아빠는 엄마를 어떻게 만났을까』를 출간했고, 1998년 『혼동하지 마요』로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논픽션 부문 상을 받았다. 이후엔 한국에도 출간된 『우연 놀이』 『구성 놀이』 등 15권의 놀이 연작을 발표했고, 2003년부터는 『Turlututu』 시리즈를 작업하고 있다. 2010년 출간한 『Un Livre 책 놀이』는 미국 서점가에서 품절 소동이 일만큼 사랑을 받았고, 한국어를 포함한 2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결핍과 깊은 심심함  


Q 당신은 추상적인 개념과 감각을 그림으로 탁월하게 표현하는 작가입니다. 어릴 때는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어릴 때도 눈에 안 보이는 추상적인 세계에 관심이 많았나요? 

제가 가진 예술가적 기질이 어릴 때부터 있었는지 물으시는 걸 텐데, 제 유년기는 생각하시는 것처럼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어요. 다소 어둡고 부정적인 시기였고, 청소년기가 될 때까지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죠. 부정적이었던 유년기의 흔적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탄성회복력을 기르기 위해 창작에 몰두했다고 설명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네요. 


Q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아기였을 때, 아마도 2세 전 일일 거예요. 자다가 폭발음을 들은 기억이 있어요. 성장 과정 내내 그건 1954년부터 1962년까지 프랑스와 알제리 사이에서 있었던 알제리 독립 전쟁 때문에 집 주변에서 폭탄이 터져서 난 소리라고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 깨달았죠. 폭탄이 터진 게 아니라 가정 불화로 부모님이 싸우는 와중에 났던 소음이라는 걸요. 어릴 때 부모님과 대화를 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그분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당시엔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가 최우선이라 내면을 돌볼 겨를 없이 열심히 일만 하셨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보면 쫓기듯 바쁜 한국 부모님들과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늘 혼자였고, 많이 심심했어요. (형제 자매가 없었냐는 질문에 에르베 튈레는 “누나가 한 명 있었지만 돌아가셨어요. 그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가 않네요.”라고 답했다.) 


Q 그럼 혼자 시간을 주로 어떻게 보냈나요?

길에서 물끄러미 배수로를 따라 흘러 내려오는 막대기 같은 것이나 아스팔트 모양 같은 것을 지켜보면서요. 종이에 낙서를 해서 동네 가게 입구마다 포스터처럼 붙여놓기도 하고요. 스펙터클하고 특이한 것이라곤 없었어요. 할 게 없고 심심했기 때문에 종이, 돌멩이 같은 별 것 아닌 일상 속 물건과 함께 노는 법을 깨우친 것 같아요. 아이들은 심심하면 알아서 자기만의 방법으로 재미를 찾게 되어 있거든요. 지금도 저는 심심함과  시간의 공백을 좋아해요. 비행기 탈 때 가장 아이디어가 샘솟는데 그건 공항에서 무료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서예요. 자신에게 심심할 틈을 주는 건 창작자에 있어 무척 중요한 일이랍니다.  


Q 대부분의 부모가 아이가 심심하다고 하면 불안을 느끼고, 뭐든 해주려고 하는데요. 심심함이 중요하다니 의외네요. 

창작의 시작은 혼자 고요함 속에 머물면서 자신을 마주하고 서는 것부터예요. 심심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생산적인 심심함과 그냥 무료함을 위한 무료함이 있죠. 예술가나 창작자처럼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는 사람들은 늘 더듬더듬 거리며 불확실성을 헤매고 다녀요. 답을 찾을 때까지 시간도 걸리고 불안하기도 해요. 그 과정은 늘 무료하고 어렵죠. 생산적인 심심함이란 그런 거예요. 단, 한번 답을 찾으면 그때까지 참아왔던 무료함의 시간이 에너지로 탈바꿈해서 창작의 동력이 되어준답니다.  




Q 어릴 때 예술적 감수성에 영향을 준 존재가 있나요? 

16세 때 선생님 한 분을 만났어요. 문화와 예술을 논하는 라디오 방송을 직접 녹음해 여러 벌의 카세트 테이프로 만든 다음 학생들에게 빌려주실 정도로 열정적인 분이셨고, 우리에게도 열정을 강조하던 선생님이셨죠. 그 선생님 덕에 초현실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해 1년 동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흡사 연구 논문 주제를 받은 사람처럼 시, 연극, 사진, 회화, 문학 안의 초현실주의 작가들을 탐험했어요. 시네마테크에서 본 만 레이(Man Ray)의 실험적인 영화들이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고, 문화로 입문하는 문을 열어젖혔던 것 같아요. 


Q 왜 하필 초현실주의였나요?

초현실주의의 특징은 ‘실험’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어요. 실험한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이고 그건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죠. 예술가가 위험을 감수하고 전에 없던 시도를 하는 모습, 그 삶의 자세에 매료되었던 것 같아요. 과거에 이별을 고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 내렸던 예술가들-세잔, 피카소, 미로 등-이 청소년기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죠. 


Q 학창 시절은 즐거웠나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부모님 뜻에 따라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어요. 경쟁이 너무 심했거든요.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 변한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아이가 셋인데, 저희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도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거나 진정한 의미에서 창의성을 길러주는 교육은 거의 없었어요. 


Q 그림책 작가가 된 이후, 학교의 초청을 받아 낭독회나 강연회를 연 경험이 수없이 많으시죠. 학교가 어떻게 변해야 창의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우선 지금의 학교는 너무 폐쇄적이에요. 아이들이 만나는 사람이 지나치게 한정되어 있어요. 선생님을 제외하면 특별 활동 시간에 제빵사와 소방관이  한 번씩 다녀가는 게 끝이에요. 저는 경계 없는 학교를 꿈꿔요. 자동사 정비사가 강의를 하러 와도 좋고, 불법 체류자 학부모가 프랑스의 이민자 삶에 대해 강의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전쟁을 직접 겪어 본 할머니도 좋고요. 다양한 시대의 살아있는 경험담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야 해요. 요즘 충격적인 것 중 하나가 자기 부모님이 어릴 때 어떻게 자랐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모르는 청소년이 태반이라는 거예요. 경험담을 듣는 건 배움의 기초인데 말예요. 


Q 왜 경험담을 들려주는 게 중요할까요? 

불법 체류자, 가정부, 노숙자, 정비사… 이런 보통 사람들에게선 흔히 들을 이야기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가끔 기회가 닿아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면 대개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들을 털어놔요. 미디어에서 노상 떠들어대는 정치인의 말들보다 훨씬 귀한 진짜 삶의 이야기죠. 그런 진실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게 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이 질문을 불러 일으키고, 관점을 흔들며, 만남을 끌어내기 때문이에요. 창의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스스로 넓혀가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도서관에서 필요한 책을  찾아다닐 수 있는 아이라면, 그 아이는 분명 창의적으로 자기 삶을 개척해가지 않겠어요? 경험담은 살아있는 책과 같아요. 



세상이 강요하는 리듬을 거부하는 힘 


Q 상호작용이 존재한다는 건 당신 책들의 큰 장점입니다. 독자에게 끊임없이 참여를 요구하기 때문에 대충 눈으로 따라가는 수동적인 독서론 매력을 느낄 수가 없죠. 최고의 히트작 『책 놀이』에선 그림 속 원을 문지르거나 두드리면 재미있는 효과나 나타나게 설계했고, 『에르베 튈레의 디자인 수업』은 당신이 그리다 만 낙서를 아이들이 이어할 수 있게 한 책이고요. 『San Titre 제목 없음』에선 아예 ‘작가 본인 역할’로 책에 등장하기도 했고요. 이 모든 상호작용은 놀이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책을 읽어주는 어른과 이야기를 듣는 아이가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즐거울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에게 책 놀이의 의미는 ‘아이가 책과 논다’가 아니라 ‘어른과 아이가 책을 매개로 함께 대화한다’입니다. 그렇게 책 놀이를 하려면 어른이 가볍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이 책으로 뭘 가르쳐보겠다거나, 한 줄도 빠짐없이 다 읽혀야겠다는 식의 의무감이나 부담감이 있어선 아이와 상호작용을 하기가 힘들어요. 좋은 독서는 즉흥 연주를 하는 것과 비슷해요. 책 속 이미지나 글씨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책이 자신에게 남긴 잔향에 집중해야 더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죠. 저는 부모님들이 책을 그저 악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와 대화하기 위해 꺼내 든 악기일 뿐이라고요. 


Q 당신의 책에 빠지지 않고 매번 등장하는 것이 있어요. 바로 “와!” “브라보” “좋아” “그거야” 이런 식의 리액션과 추임새입니다. 

(웃음) 그것이 마법의 비밀입니다. 그런 리액션 덕분에 아이들은 안심하고 상상하거든요. 일례로 『책 놀이』에서 종이에 인쇄된 노란 원을 문지르고 다음 장으로 넘기면 그게 빨간 원으로 변하는데, 아이들은 그 순간에 등장한 긍정의 리액션 덕분에 ‘내가 문질러서 색이 변했다’는 상상을 했던 것에 대해 안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른들이 들려주는 긍정의 추임새가 아이의 상상에 자신감을 심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죠. 


Q 책을 만드는 작가면서 동시에 매해 수백 명의 아이들을 직접 만나 체험 아틀리에를 진두지휘하는 퍼포머이기도 합니다. 그 많은 아이들을 통제하면서 동시에 열정을 이끌어내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믿어주는 것이요. 아이들도 똑같은 사람인지라 믿어줄수록 책임감을 더 느낍니다. 이건 제가 첫 책을 내면서 ‘Seuil Jeunesse’ 출판사 에디터 덕분에 깨우친 거예요. 그 에디터는 제가 신진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참견 없이 전폭적인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흥미와 책임감이 동시에 높아지더군요. 저는 아틀리에를 지휘할 때, 꼭 지켜야 할 정말 중요한 규칙 몇 가지를 세우고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맡깁니다. “앞에 있는 종이에 땡땡이 페스티벌을 그려주세요!” “꼬불꼬불한 선들이 교통체증을 일으킨 모습을 보고 싶군요!” 이렇게 메가폰에 대고 소리치면 아이들이 얼마나 책임감 있게 맡은 일을 해내는지 모릅니다.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발견한 놀라운 점들을 지금 책으로 쓰고 있죠. 열정적으로 뭔가에 몰두하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자긍심을 남깁니다. 단순히 재미만 느끼는 게 아니라 뭔가를 창작할 때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도 함께 느끼며, 그걸 이기고 성취했다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탄생하는 것이죠. 하지만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이런 아틀리에를 하는 건 아닙니다. 교육 목적 같은 건 없습니다. 이 모든 건 저를 위해 합니다. 제가 즐거워서 하는 예술입니다.  


Q 학교 수업도 그런 식이라면 좋을 텐데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현 시스템 안에서 학교는 틀을 만들어 노동자, 사회 구성원을 찍어내는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만약 개개인의 지각이 깨어나고 모두가 내면의 성장에 귀기울이게 되면 혁명이 일어날 테니까요. 각자가 자기 자리를 지키며 일을 열심히 하고, 생각은 가급적 많이 안 하는 것을 원합니다. 그게 교육자 탓만은 아닙니다. 당장 학부모들이 “혁명가라니요. 저는 제 아이가 변호사가 되길 바라는데요.” 하면서 들고 일어날 테니까요.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뉴욕 MoMA 등 대형공공시설부터 인도, 아프리카 말라위의 작은 학교까지 세계를 돌며 체험 아틀리에를 열고 있다.
위의 사진은 베니스 ‘Palazzo Grassi’현대미술관 아틀리에 모습. 사진 촬영 Matteo De Fina 


Q 앞서 말씀하신 ‘규율과 자율성 사이 균형잡기’가 말처럼 쉽진 않습니다. 어디까지가 적당한 규율이고 어디서부터 과한 간섭인지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요. 자율성과 방임을 가르는 기준도 애매하고요. 23세, 20세, 15세 세 자녀를 두셨는데, 자녀를 기를 때 세워뒀던 육아 원칙이 있었는지요.

저는 아이를 키우며 맞닥뜨릴 수 있는 모든 문제 가운데 대화를 잃는 것보다 심각한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며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부모가 너무 권위적이어도, 너무 방임주의여도 대화를 잃을 수 있거든요. 매 순간 균형잡기는 어렵지만 ‘아이와 대화를 이어가기’라는 목표를 나침판 삼아 방향을 잡을 수 있었죠. 책은 아이들과 대화를 이어가기 더없이 좋은 도구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 싫어하는 책 모두에 대해 아이들과 대화했습니다. 딸 아이는 12세가 될 때까지 제가 책을 읽어줬고, 지금도 언제든 아이들과 책 이야기를 합니다. 


Q 많은 예술가들이 낙서나 한가롭게 거닐기, 몽상하기 등 쓸모없어 보이는 일들에서 창의력이 피어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사회는 쓸모와 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곳입니다. 이 간극에서 부모의 불안이 시작되죠. ‘노는 게 좋은 건 알지만, 아이를 이렇게 마냥 놀려도 될까?’ 이런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죠. 조언이 필요합니다. 

이런 질문은 한국과 러시아, 중국 등 급속한 성장을 이룬 국가를 방문했을 때 공통적으로 받았던 질문입니다. 개개인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시스템, 정부와 기득권의 논리, 그 틀에서 빠져 나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불안이 우리를 조종하니까요. 우리를 틀 안에 넣는 것은 불안입니다. 불안한 마음에 세상의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할 시간이 없게 됩니다. 뒤로 물러나서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고 투쟁하는 방식으로 그 간극을 이겨낼 수밖에 없죠. 그걸 돕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예술입니다. 젊은 부모들께 당부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시인으로 태어납니다. 아이의 시선에서 배우세요. 성과주의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세계가 거기 있습니다. 아이를 안고 책을 읽어주면 부모 역시 자연스럽게 이야기 안으로 가담됩니다. 그런 순간을 더 자주 가지세요. 그렇게 세상이 강요하는 리듬을 거부할 힘을 차곡차곡 쌓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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