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일로서 출판을 생각하다

<기획회의>를 읽고 있습니다

by 브라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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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출판계에서 일을 해왔지만 최근 몇 년만큼 변화의 곡선이 가파르고 위기의 감도가 높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으로 시작되는, 이미 클리셰가 되다시피하여 그다지 와닿지 않았던 그 말이 혹독하게 체감되는 시기다. 여전히 발신하고 싶은 책이,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것을 읽어줄 이는 점점 줄어드는 시대, AI 문명 전환 앞에 풍전등화 같은 처지 등등...비관하고 우울해하자면 그럴 만한 이유와 조건들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미 출판이라는 ‘기묘한’ 세계에 인생의 절반 이상을 담가버린 사람으로서, 그 맛에 취해버린 사람으로서, 쉬이 발걸음이 돌려지지도 않는데, 무엇을 바라보고 새 걸음을 내딛어야 하나. 그날그날의 과업이란 좋은 핑곗거리가 있던 조직을 떠나 철저한 ‘개인’으로 서려고 하니 이 진지하고도 절박한 질문이 좀처럼 머리를 떠나질 않았다.


그때 집어든 <기획회의> 2026년 첫 호는, ‘아!’ 하는 탄성을 지르게 했다. 아니면, 안도였을까? “시작하는 출판사들”이란 신년호에 걸맞은 제호 아래 최근 몇 년 사이 출사표를 던진 신생 출판사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디자이너, 정통적인 편집자까지 출발선상에 선 이들의 배경이 모두 달랐기에, 각 출판사들의 시작점과 피어나는 형상들은 무척 다채로웠다. 동시에 익숙함으로부터 한 걸음 벗어나 스스로를 확장해가는 모습은 닮아 있었다. ‘자신의 일’을 결단하고, 자기만의 뾰족함을 고민하고, 이어가려는 절실함이 느껴졌다. 늦은 밤 <기획회의>를 읽어가며 기억하고 싶은 몇 구절에 줄을 쳤다.



# 책을 디자인하기 전에 우선 독자로서 텍스트(원고)를 성실히 읽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매번 교정을 새로 거친 원고를 반복해서 읽는 일이 디자인을 위한 수고인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대개은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편집을 거듭해 가면서 글이 점점 더 다듬어지는 모습을 보는 건 무척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나름의 특권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_현준혁 대표, 기이 프레스



#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집에만 가만히 가구처럼 있을 수는 없었다. 일하지 않으면 우울했고, 외주 일은 무기력했다. 지속가능한 내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중략) 1인 출판사를 차리고 가장 뼈저리게 느낀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간이 물처럼 흘러가다가는 단 한권의 책도 내지 못한 채 1년을 보내게 될 수 있었다.

_권은정, 여름의서재 대표


# 한편으로는 어떤의미에서 모든 이야기는 낯설다. 다른 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 낯설지 않고도 낯선 이야기들을 위한 다리를 어떻게 계속 놓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출판경험은 짧지만 내가 지금까지 만나고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질 가치가 있다는 것만 믿고 운영을 시작했다. 접촉면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지하고 귀하게 대하는 마음을 계속 간직할 수 있길 바란다.

_김보영, 접촉면출판사 운영자


어떠한 방식이든 자기만의 업을 세운다는 것은, 그에 대한 이유 불문의 좋아함과, 이것을 뒷받침하는 노력과 열정, 좋아함의 영역을 업의 영역으로 끊임없이 변모시키는 전환의 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일반적인 스타트업의 대표들고 그러했듯, 내가 풀고자 하는 세상의 문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중 가장 현실적으로 나의 마음에 머물렀던 것은 권은정 대표가 말한 ‘지속가능한 일’에 대한 부분이었다. ‘지속가능한 일’이라는 것에는 여러 함의가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안정적인 수익화를 이루어낼 것인가, 어떤 가치와 콘텐츠를 일정한 구조 속에서 꾸준히 내놓을 수 있을지, 그것을 지켜가기 위해 필요한 전략을 어떻게 세울지.. 무엇보다 내가 긴 호흡으로 이어가고픈 업의 형태가 무엇인지라는 질문으로 수렴되는 이야기일 터, 전환기에 선 나에게 필요한 화두였다.


반쯤은 고무되어 이번호 <기획회의>의 페이지를 넘기려던 찰나, 강양구 기자님이 선택한 책들에 눈길이 머문다. 2026년은 본격적으로 고령인구가 늘어나며 그로 인한 돌봄의 사회적 비용도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시점에 강 기자가 선택한 <베이비 부머 리턴즈>의 저자 마강래 교수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지방 이주를 제안한다. 그것이 도시 과밀을 해소하고 지방 경제의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고령인구의 경제적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야 모든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만 출판에는 특히 더 그러하다. 위태롭게 현상을 유지해선 해결할 수 있는 게 없다. 지금의 출판을 바라보는 시각도, 전략도 새롭게 판을 짜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으며 나에게 조용히 되물어보았다. 나는 책을 통해 세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지속가능한 일로서 출판이 가능하려면?


기획회의 647호 : 2026.01.05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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