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박사의 실험실
모두가 쉬는 동안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테라스 쪽에 새 한마리가 죽어있다. 흔히 보는 비둘기는 아닌데, 왜 그곳에 있는지는 도통 이유를 알길이 없다. 나름(?) 일생일대의 큰 결정을 내리고 난 뒤라 매사에 의미부여하기 바쁘다 보니, 옛것이 죽는다, 같은 심오한 상징으로 받아들이려던 찰나, 통창인 회사 건물 외벽에 부딪혀 죽은 것 같다는 반장님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퇴사를 이야기하고 난 뒤의 두 달은, 정말 힘들었다. 야근, 주말근무를 불사해도 일이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고 다 치웠나 싶으면 쑤셔박아둔 20년치의 책이며 자료가 여기저기서 출몰하기 일쑤였다. 몸이 못 버티고 계속 잇몸이 부어 떠 있고 구취마저 심해졌다. 내 피부인양, 오래 정붙이고 다닌 회사를 그만둔다는 이별의 스트레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건 2차적 문제였고, 기한내에 일을 마무리하고 인수인계를 제대로 해줘야 한다는 게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왔다. 정리할 양이 일해온 시간에 비례할 테니. 이제 여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마치 대형 프러젝트를 맡아 달려가는 사람이 되버린 듯했다. 기한이 짧은 것도 아니었는데 일한 기간이 원체 길다보니 어쩔수가 없었다. 평소 정리를 잘해둔 건 더더욱 아니었으니…조금 여유가 있을 때는 생각 안 나던 일들이 막판에 불쑥 고개를 디밀기도 했다.
재깍재깍 시한이 다가왔다. 무언가 엄청 일을 많이 했는데 추석연휴를 앞두고도 바이바이, 할 상황이 아닝었다. 무엇보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나는 한국을 뜨고 볼 참이었으니.
어쩔 수 없이, 추석 다음날 다시 텅빈 사무실로 향했다.
아침에 부리나케 나와 늦은 밤까지.. 워낙 긴 연휴라 중간쯤 직원들이 한둘은 나올 법한데 다행히 나오지는 않았다. 연휴에 나와 허둥대며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빈 박스에 내 짐을 담으며 정리하는 모습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자존심이랄까. 눈뜨면 사무실로 나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돌아오길 며칠..어쨌든, 조금씩, 일은 매듭이 지어지고 책상 자리에 여백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멜랑콜리해질 여유는 없었다.
드디어 후임자에게 인계할 자료를 외장에 업로드하는 시간. 한참은 걸릴 거 같아 초조한 마음으로, 챙기지 못한 개인 물품을 정리해 박스에 담고 원고며 서류에 택을 붙였다. 이미 밤은 어두워지고 거리의 소음도 잦아든 시간. 혹시나 후임자가 못 찾을까봐 책상 곳곳에 정리해둔 원고며 서류에 최대한 자세히, 곳곳에 택을 붙였다. 업로드창에 30%, 50% 숫자가 드디어 등장하기 시작하자 내 손은 더 바빠졌다.
전송 완료 100%…
새벽 3시, 나는 드디어 26년 다닌 사무실 문을 잠그고 나왔다.졸업했다.
회사라는 외장하드에 나를 100%를 전송한 데 걸린 시간, 26년. 나의 20대, 30대, 40대를 오롯이 담아, 마지막 순간까지.
택시를 잡아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길, 캄캄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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