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리뉴얼을 통해 전 제품의 컨셉과 형태를 바꾸기까지
60*60mm. 작년 처음 블렌딩 티백을 함께 만들어 주셨던 파트너사 대표님께 수시로 찾아가 만들어 달라고 졸라댄 사이즈. 해외에서 기계 부품들을 들여와 직접 설비 공정들을 뜯어고치며 만들어주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슈퍼말차 텐의 새로운 이름이자 패키지인 포켓 사이즈.
단순한 정방형 네모의 모양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컴팩트한 패키지 사이즈에 말차 가루를 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매번 흰 유니폼에 온통 녹색 가루로 덮여 나오시는 대표님 모습 보며 그제야 깨달았다.
말차의 입자가 너무 미세해 라면스프 같은 과립형 분말과는 흐름성이 아예 달라 한 회분의 적은 양을 자동화 공정으로 쉽게 구현하기에 많은 변수와 작업 테스트 기간이 걸렸다.
그간 이 사이즈를 얼마나 많이 되뇌고 읊어댔는지 모를 정도로 머릿속에 온통 포켓 생각뿐이었던 이번 리뉴얼의 핵심 키 컨셉. 일상 속 루틴하게 휴대용 약이나 콘돔의 형태처럼 주머니 속 언제 어디서나 말차를 생필품처럼 데일리로 갖고 다니며 즐기기를 상상했던 그 이미지를 드디어 구현시켜 주셨다. V컷의 너비 폭 지름부터 비닐 두께감, 탄력도, 녹색 비닐 인쇄 색상까지 까다로운 요청사항에 뭐 하나 허투루 해주시지 않았다. 다 만들고 보니 그저 작은 사각형의 심플한 형태를 왜 이렇게 어렵고도, 오래 걸렸는지 자꾸 만지고 들여다보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형태적 메시지가 와닿기를 바라면서도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지 않으려 무대 뒤의 기나긴 에피소드는 이렇게 개인의 회고로만 남기려 한다. 기획의 의도가 너무 티가 나거나, 유도하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컨셉이 정말 컨셉에서 끝나버리게 된다. 특히 소비재 상품일수록 일단 쉽고, 심플하게, 결백의 마음으로 완성만 잘해두고 평가는 진열대에 올라가는 순간부터는 기획의 손에서 벗어나게 된다.
의도가 언젠가 느껴질 수도, 영영 모를지도 모르지만 기획의 판가름은 초기 단계보다는 사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 감각의 평균값에서 판단되는 것 같다. 처음 느껴지는 물성부터 뜯기는 형태적 시각 행위, 오감으로 느껴지는 복합적인 맛 등등.. 하나하나의 포인트를 파악하게 하기보다는 그래서 대체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드는지, 한번 더 필요한 마음이 드는지 한마디로 쉬운 결론의 값이 나와야 한다. 그것만으로 기획의 역할은 잘한 것이겠지. 고귀하고 어려운 느낌보다는 대체적으로 ‘좋은 느낌’의 경험이기를. 이유는 모르겠지만 ‘좋은 경험’으로 남겨지는 느낌이기를.
샘플들을 가방 속, 회사, 여행, 차, 등등 넣고 다니며 여러 명의 고객 역할 놀이를 스스로 자주 하곤 한다. 다양한 환경과 다양한 페르소나의 입장에서 같은 상품을 3자 입장으로 다르게 바라보는 것인데, 스스로 회의적인 질문이나 의구심이 들지 않을 때까지 계속 바라보고 수정한다. 테스트 범위 중에 위험할 수 있겠지만 다른 포지셔닝의 외부인에게는 컨셉이나 샘플을 보여주거나 물어보지 않는다. 소수의 페르소나에서만 만족하게 하는 것으로도 너무 기준이 높아서 역할 놀이만으로도 오래 걸리더라.....
닳고 지겨워질 때까지, 지겨워진다면 왜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은지 스스로 고문을 하듯 자문하다 보면 핵심만 남겨지게 된다. 주변에서는 너무 피곤하게 산다고 하지만, 내가 만족이 드는 때부터는 오히려 시선이나 생각도 단순해진다. 최종품으로 나온 포켓 일매지는 초기 기획 사이즈였던 60mm에서 20mm 조금 더 커진 80*80mm 로 생산 안정화를 위한 사이즈로 변경되어 나왔다. 여전히 작고 귀여운, 주머니 속에 매일 넣어 다니고 싶은 포켓. 여러 번 치대서 어렵게 만들어진 식빵처럼(?) 심플하고 담백하지만, 유행 타지 않고 오래오래 사랑받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