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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카엘라 Jul 23. 2019

애초에 연인 사이의 '적당한 거리감'같은게

세상에 존재하긴 하나요  

오늘 아침 엄마가 어제 만들었다는 전복새우장을 내놓으며 구남친의 이야기를 꺼냈다.

"너는 걔가 그렇게 새우장을 좋아한다면서, 한번 가져다 주라니까 결국에 안갖다줬지."

엄만 아마 그때 내가 이걸 갖다줬더라면

지금쯤 예정대로 결혼준비를 하고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듯하다


그거 아닌데.


돌아보면 그와 나는 늘 서로의 삶에서 어느 정도 멀찌감치 떨어져있었다.


서로 조금도 리스크를 걸지 않은 연애였다.

안전거리를 유지했으며

조금도 처절해지지 않으려 했다.

왜 나를 더 사랑해주지 않아

왜 나를 더 보고싶어하지 않아

라고 조르지 않았다.

물론 부족함없이 사랑해줘서가 아니었다.


무릇 연애란 서로의 삶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일이지 않나.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고

서로의 인생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싶어서 안달나는 일.

하지만 마음같이 되지 않아서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오곤 하는 것.

그 아프고 귀찮은 과정을


몇년에 걸쳐 여러번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면서

이별의 이유는 늘 하나였다.



그가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 자신이 없었다.



이전의 연애처럼 조금이라도 그의 삶 깊숙이 들어가고싶어서 쓰는 애와 노력을 하는 게 겁났다.

우리에겐 이정도의 거리감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면서 그 거리감에 스며드는 찬바람을 모르는 척했다

 

올해 새해에 새해복 많이 받자라는 문자를 주고 받으면서 <올해에는 서로의 삶에 조금 더 간섭하자>라고 매우 로맨틱한 문자를 보냈는데 멍청한 그는 제대로 알아먹지 못한 눈치였다. ㅇㅇ그래 라고는 했지만 니가 내 깊은 뜻을 어떻게 알겠니.




좋은 남자랑은 거리가 멀었다.

주변에서 그런 남자랑 만나는 친구가 있으면 뜯어말리고 싶을 정도로.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걔를 이해했다.

세상에는 잃기 싫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걸 아니까.


이해만 할 뿐 내가 뭘 더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나는 <걔를 이해하는 나, 정말 대단해> 라고 스스로를 좀 대견해했던것같다.


그래서 헤어질때마다 악담을 퍼부었다.

나만큼 널 이해해줄 사람은 세상에 없어. 그말은 걔한테 악마의 주문처럼 머릿속에 세뇌되어서 몇년에 걸쳐서 좋은 연애를 하다가도 조금만 핀트가 어긋나도 헤어져서 <정말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줄 사람은 너뿐인것같아>라며 나에게 매달렸다.



이해라는건 머릿속으로만 하는건데.

시험점수같은것도 아닌데.

정말 멍청하고 세뇌시키기 좋은 새끼였다.

반대로 나도 나에게 세뇌당해버렸는지 존나 마음넓은 사람행세를 했다.


사실 나는 뾰족하고 좁고 누구보다 큰 마음이 필요한 하찮은 인간이면서.

걔보다 내가 더 멍청했던 셈이다.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한다.


연애를 하면서 스스로가 자꾸 싫어지는건 최악이니까.


확신은 없지만.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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