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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카엘라 Jun 27. 2018

존재의 하찮음

뭣같은 자기성찰

1.

며칠 전 (또) 다리를 삐끗했다.

익숙한 느낌으로 휙돌아가는 발목의 스냅과 통증.

찰나의 순간에도 나는 나를 원망했다.

시발 또야?

정신을 똑바로 붙잡고 살지 못하여

너덜너덜해진 불쌍한 내 인대.



2

그리고는 쭉 절뚝거리고 있다.

신체 어느 부분의 절뚝거림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정말 온 마음과 온몸이 힘을 합쳐 절뚝대고 있는 기분이다. 멀쩡한 나머지 다리에도 바짝 힘이 들어가니 수시로 쥐가 난다.

그렇지 않아도

잔뜩 움츠려있는 마음에

신경질이 꽉 들어찬다.

애초에 나에게 멀쩡한 부분이 있긴 한가? 라며

나는 또 나에게 비아냥댄다.



 3.

나는 요즘 상사A의 무능을 비난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가 얼마나 멍청한지 느끼게 해주려고 최선을 다해서 일한다. 누군가의 무능을 비난하기 위해 내 에너지를 갈아넣어서 일을 한다.

이거 또 잘못하셨잖아요. 제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는데. 라고 고작 그 시덥지않은 우월감을 드러내고 그에게 데미지를 입히기 위해서.

그러나 나의 의도로 가득찬 노력은 아무에게도 영향을 주지 못했고,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했다.

한달 내내 상사의 방식에 반감을 드러내며 그의 무능함을 증명하기 위해 온힘을 쏟았는데 오늘 돌아온 말은 "그럼 김대리가 그거 잘하니까 앞으로 맡아서 하면 되겠다." 였다. 시발 내 발등을 내가 아주 적극적으로도 찍지.



4.

나의 과도한 자기객관화가 피곤하다.

나의 하찮음을 내려다보듯 바라보면서 내가 나를 지긋지긋해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  



5.

가만히 불을 끄고 누워 손가락만 왔다갔다 움직인다.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지만 듣기좋은 말투의 팟캐스트를 연속재생해놓고 별 생각없이 게임을 한다.  브런치 속 작가의 책장에 저장되어 있는 써놓고도 발행하지 못한 글들을 읽다가 또 발행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뒤로 돌아 나온다. 맥주를 마시면 좀 나아지려나 생각하고, 누군가와 호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카톡을 주고받고, 누군가와 서운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카톡을 주고받는다. 고로 아무 것도 주고받지 못하고 외로워하다가 내 존재의 하찮음을 익숙하고 습관적으로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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