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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외계인 Jun 02. 2024

나의 돌봄 노동 해방 일지

돌봄이 체질

면접을 본 요양원에 무난히 취직을 했다. 이메일로 보내진 계약서를 읽고 전자 서명을 하면 끝이다. 이틀 간의 인덕션(Induction)을 받고, 내가 일할 요양원에 가서 세 번 버디 쉬프트(Buddy Shift, 오전 근무 2번, 오후 근무 1번)를 받고 나면 바로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했다. 인덕션부터는 모두 시간이 계산되어 수당을 받기 시작한다. 


인덕션에는 PCA(Personal Care Assistant, 요양 돌봄사)뿐만 아니라, 요양원에서 일할 요리사, 요리사를 지원할 직원, 간호사 등 모두가 함께 모여서 신입 교육을 받았다. 20명이 모였는데, 그 중에 백인 코카시안은 두 명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나처럼해외에서 이민 온 이주민들이다. 인도, 네팔, 케냐, 필리핀, 중국,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버마…등 호주의 돌봄분야는 그야말로 이주민들의 텃밭이고 이들이 호주 돌봄을 굳건하게 지탱하고 있다. 이십대 대학생 남녀부터 60대 중년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노동자들이 모였다. 호주의 돌봄분야는 이들 없이는 당장 호흡정지 상태가 될 게다. 


오전 근무는 새벽 7시부터 오후 3시, 오후 근무는 오후 2시 45분 부터 10시까지다. 내가 일할 요양원은 총 78분의 입주자가 거주하고 있는 사립 요양원이다. 첫 날 버디는 나보다 4살 많은 오지 로컬이었다. 버디 쉬프트란 경력자인 선배 요양보호사가 처음으로 해당 요양원에서 일하게 될 신입 요양보호사를 하루 종일 데리고 다니며 현장에서 가르치는 방식을 일컫는다. 16년째 요양원에서 근무한다는 그녀는 베테랑이었다. 입주자들의 선호와 특성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그녀는 입주자와 노래를 부르며 아침인사를 나누고 목욕을 시키고 아침 루틴을 돕는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경력자들의 저 여유와 자신감, 빨리 훔치고 싶다. 


“언니, 지금도 장애 지원사랑 가정방문 케어로 얼마든지 일자리가 많은데 왜 굳이 그 힘든 요양원을 가려고 해요?” 


나를 아끼는 J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진짜 피를 나눈 친 동생 마냥 걱정에 찬 얼굴로 묻는다. 멜번에서 간호사와 가정방문 케어러로 오래 일해 온 J는 돌봄쪽에서 안 다녀본 기관이 없고 안 해 본 일이 없는 척척박사다. 그러니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일하는 것이 얼마나 육체적으로 고된 일인지도 잘 안다. 세상살이가 속사정을 너무 잘 알면 편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부담스럽기도 한 법이다. 


본인은 병원에서 항생제 부작용으로 물똥이 줄줄 흐르는 환자의 기저귀를 열 번 갈고 왔다는 그녀, 한 날은 죽어가는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끝없이 환자의 피를 펌프질 하고 왔다며 나이 드니 예전같이 몸 회복이 안 된다는 그녀, 본인 노동의 고됨은 아랑곳하지 않고 남인 나의 안위를 걱정하는 그녀의 얼굴은 피곤에 지쳐서 부어 있다. 한때 간호사를 ‘백의 천사’라 부르곤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에겐 더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 참고로 호주의 병원엔 환자나 가족이 따로 간병인을 고용하지 않고 모든 돌봄과 간병은 간호사의 몫이어서 간호사가 요양원의 돌봄사인 나처럼 기저귀도 갈고 씻기기도 하고 만능인이 되어야 한다. 


“난 진심으로 돌봄계의 마스터가 되고 싶어.” 


J는 내 대답에 살짝 놀란 듯 하다.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도 처음이었을 테고, 이렇게 진지하게 대담한 대답도 처음이었을 게다. 글쎄, 돌봄을 하찮게, 아무나 할 수 있고, 3D 직종의 하나인 천한 직업으로 여기는 사람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이 분야에 발을 들이기 전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예전의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난 진짜로 내 직업에서 유능하고 싶다. 난 돌봄사와 장애 지원사란 직업을 전문적인 기술과 소양과 윤리를 지녀야 가능한 전문직이라 여기며 그러기에 내 직업에 자부심이 높다. 


유능함과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의 돌봄은 평온하고 따뜻하고 섬세하며 안정감이 넘친다. 한날 우연히 유능한 돌봄사 지애를 가정방문 케어에서 만났다. 그녀의 발걸음과 손길은 바삐 움직이나 허둥대지 않으며 정확하고 절도가 있고, 차분하고 안정적이어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Palliative Care(완화치료) 중인 할아버지 고객에게 아주 능수능란한 돌봄을 제공하고 있었다. 


베개로 자세를 편안하게 받쳐 주며 자세를 바꾸고, 병원 침대의 높이를 게임을 사랑하는 내 아들이 게임 컨트롤러를 현란하게 움직이듯 작동시키고, 목욕도 혼자서 척척 지원하고, 고객이 카펫에 지린 물똥도 엎드려 닦고 있었다. 그녀가 제공하는 돌봄을 보면서 내가 제공하는 돌봄이 얼마나 엉성하고 미숙한지를 낯이 뜨겁게 자각했다. 내가 고객의 입장이라도 당연히 지애가 제공하는 돌봄을 받다 생을 마감하고 싶으리라. 


“지애, 넌 어디서 이렇게 좋은 돌봄을 배웠어?” 


배움 앞에서 앞뒤를 가리지 않고 체면 불문하고 묻는다. 중국 악센트가 강하고 영어가 많이 어설픈, 그러나 너무 다정한 그녀는 답한다. 


“난 오랫동안 요양원에서 일을 해오고 있어.” 


그날 당장 결정했다. 요양원에 이력서를 넣기로. 그리고 나도 몇 년 안에 지애처럼 유능한 돌봄사가 되어야 겠다고, 아무도 묻지도 않는데 혼자 결심했다. 아무나 돌봄사가 될 수는 있어도 누구나 따뜻하고 유능한 돌봄사가 될 수도 없다는 진실도 깨달았다.지애는 내 배움의 열정에 군불을 활활 지폈다. 


만약 요양원의 요양보호사 일이 진실로 고되고 어려운 일이라면 한 살이라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앞에 숫자가 6이나 7로 시작되는 나이에 새로운 일, 특히 신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일은 여러면에서 무리수다. 자칫 무모하게 도전 하다가는 몸만 축나고 다쳐서 남 돌봄 전에 내가 돌봄 받는 처지로 전락하기 십상일 테니. 


더이상 ‘남에게 보여주기 좋은’ 직업에 관심이 없다. 이미 그럴 나이도 상황도 아니다. 은퇴의 나이고 모국이 아닌 남의 나라에서 살고 있고, 이제는 인생의 두 번째 직업을 찾는 나이다. 그리고 이 일이 죽기 직전까지 평생 현역이기를 소망한다. 내 건강과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근무 시간과 요일이 유연하길 바라고, 교사일 때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으니 이젠 정신적이거나 감정적 스트레스가 적을 수록 좋고, 교사처럼 수업을 위해 매일 교재 연구를 하고 수업 지도안을 구상하던 “늘” 일하는 상태의 직종이 아닌 근무 시간에만 바짝 집중해서 일하면 끝인 직업을 갖고 싶다. 


좋은 직업들은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젊은이들이 상대적으로 꺼리는 허드렛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젊은이들에게 줄줄 새는 똥을 닦고 기저귀를 가는 일, 틀니를 끼우고 보청기를 닦고, 중력에 의해 몸의 부위들이 축축 늘어진 어르신들을 돌보라는 일은 아무래도 기성 세대로서 미안함이 든다. 내가 그랬듯 그들은 아름답고 청결하고 빠르고 생생한 것들에 끌릴 나이다. 아무래도 젊음은 폼 좀 나고 허영도 좀 있고 여기저기 시도하며 실수해도 좋을 나이니까. 


버디 쉬프트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고됬다. 오전 근무는 8시간, 오후 근무는 7시간 15분 근무다. 우선 노동 시간이 길기도 하지만, 너무 일찍 시작하거나 너무 늦게 끝나기에 더 피곤했다. 중간에 15분 티타임과 30분 식사 시간이 주어진다. 호주는 급식 문화가 없고 학생이든 노동자든 도시락을 싸가는 문화다. 30분 점심 시간은 도시락을 먹고 도시락을 씻고도 남을 시간이고, 그래서 점심 시간이 한 시간 제공되는 한국에 비해 호주의 노동은 30분 일찍 끝난다. 아마도 전세계의 인종이 모인 만큼 음식 문화와 기호가 다 달라서 한국처럼 급식을 운영하기도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앉아 구부려 하는 동작이 많아서 허리가 아팠다. 스스로 양말도 신을 수 없는 분들을 위해 그들의 손이 되어 드려야 하고, 혼자 씻을 수 없는 분을 위해 대신 샤워를 해 드리고,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분들은 기계를 써서 이동을 시켜야 했다. Palliative Care 입주자는 종종 들러 자세를 바꿔 드리고 기저귀를 확인하고 세상과 하직하는 순간이 외롭지 않도록 말도 걸어본다. 치매 할머니 N은 어찌나 수다를 좋아하는지 식사 내내 full assistant가 필요한데, 타이밍을 잘 찾아서 떠 먹여 드려야 한다. 신나게 말을 하시는 중에 음식을 먹이려다 공격을 당했다는 요양보호사가 한 둘이 아니라고 했다. 거리를 두고 긴장한 채 식사 지원을 하라고 버디가 말해줬다. 


요양원에 가보고서야 돌봄에 필요한 기기들이 이렇게 다양한지를 알았다. 스탠딩 머신, 호이스트, 사라 스테디, 몸무게를 재는기계, 프린세스 체어…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기계들을 끌고 밀고 하다 보니 허리와 어깨도 아프고 다리도 끊어질 듯 아프다. 특히 호주의 요양원 바닥은 카펫이 깔려 있다 보니 기계를 움직이는데 훨씬 많은 힘이 든다. 호주의 가정이 카펫 문화이고 요양원은 어르신들의 새로운 가정이므로 익숙하고 편안하게 생활하실 수 있도록 고안된 듯하나 요양보호사의 허리와 어깨를 고장내는 치명적인 요소다. 


요양원은 인간이 가장 기피하고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 즉 외로움, 단절, 노화, 노쇠, 질병, 치매, 장애, 죽음이 총 집결된 곳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모든 돌봄과 간병의 역량과 경험, 지혜, 더불어 인간의 존엄과 존중이 요구되는 곳이다. 왜 지애가 유능한 돌봄사가 되었는지를 버디 쉬프트 삼일만에 알 수 있었다. 가장 집중적이고 다각적이고 단기간에 돌봄 역량을 끌어 올릴수 있는 곳, 돌봄의 마스터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최적의 배움터가 바로 요양원이다. 


“나 어쩜 좋아. 왜 요양원 근무가 재밌냐? 난 돌봄이 체질 인가봐?” 


한달 넘게 요양원에서 근무한 후 J를 만난 자리, 난 그녀 앞에서 이렇게 말하며 해맑게 웃고 있다.  


*인덕션(Induction): 오리엔테이션과 비슷한 개념으로 새로 취직하는 회사에서 사전 교육을 받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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