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쉐어홈 사람들
헤일리가 일하는 장애인 쉐어홈의 어르신 P는 입주자 4명 중에 요구(needs and demands)가 가장 높다.
자폐인이고 지적장애를 동반한 경우인데, 자폐인들의 감각적 다름에서 오는 예민함과 까다로움, 그리고 자폐인들이 무언가에 꽂혔을 때의 강렬한 요구와 그 충족 사이에는 완충지대가 희박하다. “잠시만”이란 단어가 개입할 공간이 없기 일쑤란 뜻이다. 그래서 언제나 불같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장애인 지원사의 이름을 끝까지 부른다. 본인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타인의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당사자에게는 일촉즉발의 시한폭탄처럼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NDIS(호주 국가 장애보험 제도)에서 P의 지원은 장애인 지원사 한 명당 2 명으로 책정했다. 솔직히 1:1 지원의 예산을 받는 다른 입주 고객 R보다 장애인 지원사의 입장에서 P의 지원이 가장 피곤하고 까다롭고 도전적이다.
헤일리는 격주로 토요일 2시부터 밤 9시, 그리고 일요일 아침 7시부터 4시까지 쉐어홈으로 출근을 한다.
이런 장시간 지원은 체력이 저질인 헤일리에게 무리가 따름에도 불구하고 헤일리가 이 지원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같이 일하는 풀타임 정규직 동료, 스리랑칸 출신 N이랑 합이 잘 맞기 때문이다. 둘이 일하면서 수시로 가벼운 농담도 하고 웃고, 헤일리는 16년간 이 쉐어홈에서 일한 N에게서 이 일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과 지원의 방법 면에서 배우는 점도 많다. 무엇보다도 P의 요구에 맞추다 보면 고도의 신체적이고도 정신적인 고갈을 불러 일으키기 쉬운데 N과는 서로 알아서 이심전심으로 순서를 바꾸며 지원을 하기 때문에 다른 동료와 일할 때보다 훨씬 수월하다. 헤일리와 N은 수시로 이런 대화를 한다.
“중증의 장애인을 지원할 때는 동료가 제일 중요해!”
아차, 오늘 출근을 하고 헤일리는 알았다. N이 인도로 열흘간 명상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을, 그리고 다른 동료와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아니나 다를까, 비정규직(캐주얼이라 함) 처음 보는 인도 출신 남자 지원사가 배치되어 있었다.
"헤일리, 헤일리, 헤일리..."
쩌렁쩌렁하고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목소리, P는 헤일리만 불러 댄다. 새로 온 인도 출신 남자 동료의 이름이 발음이 어렵고(헤일리에게도 어렵다) 잘 모르니까 친숙한 헤일리만 불러댄다. 5시가 조금 넘자 자러 가야 겠다고 소리를 지른다. 안락 의자에 다리를 쭉 뻗어 올리고 아이패드를 보는데 지금 당장 침대로 옮기라고 주장한다. 5시가 넘으면 지원사는 입주자들의 저녁을 준비하고 저녁 지원을 돕고 그리고 약물 복용을 챙겨야 한다.
오후 근무 중에 가장 바쁜 시간인데 침대로 옮기라고 소리를 지른다. 더군다나 P의 이동은 기계를 써야 해서 화장실-침대로 옮기는데 삼십분쯤이 소용된다. 자폐인들은 루틴과 의식을 좋아해서 이불의 방향, 베개의 각도, 스탠드의 강도, 침대의 높이, 침대로 가는 동안의 일정하게 굳어진 순서 등등의 모든 세세한 요구들을 관철 시켜야 한다.
“지금 주무시기에는 너무 일러요. 6시에 약 드시고 침대로 옮겨 드릴게요. 그리고 지금 다른 입주자분들 저녁 준비로 너무 바빠요. 안락의자에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헤일리가 설명을 해도 이미 침대와 잠에 모든 생각이 집착된 P를 이해시키는 일은 고난도 일이다. 이미 P의 뇌는 이런 복잡한 과정을 프로세스할 단계가 지났다. 70이 다되어 가고 오후엔 피곤하니 더 인내심이 바닥이 나는 P이기도 하다.
임플란트 시술 중인 헤일리는 삼일 전에 스쿠르를 박았다. 몸이 지치고 정신적으로 고달파지자 헤일리의 머리와 치아는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전쟁이 발발했다. 두통이 밀려 오고 치아의 통증이 시작되고 얼굴이 붓기 시작한다.
고객인 P를 원망할 수 없는 헤일리는 자신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파트타임 정규직이라서 토요일과 일요일 병가를 냈으면 임금도 받으면서 쉴 수 있었는데 왜 멍청하게 일을 나왔을까. 의사가 통증이 있거나 피곤하면 일주일간 병가를 내라고 의사 소견서까지 써서 줬는데 왜 자만을 했을까.
호주 이민생활 십년, 병가와 연가를 밥 먹듯이 내는 호주 노동문화에서 이제는 한국인의 근면과 성실을 지고지순으로 여겼던 마음가짐을 씻어 낼 법도 한데 왜 아직도 난 이걸 끌어안고 살고 있을까? 속이 터진다.
다행히 일요일 아침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이 집에서 일한 지 26년 된 풀타임 정규직 고참, D 와 일을 했다.
"아이고, 아픈데 왜 일을 나와? 젤 먼저 니 자신을 돌봐야 해."
이 집과 고객들을 본인의 집만큼 잘 아는 D덕분에 헤일리의 부담이 팍팍 줄어들었다.
가장 바쁜 아침 루틴을 끝내고 식탁에 앉아서 커피 한잔을 마시려는 찰나, P가 D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어제 헤일리가 여러 번 경험한 상황들이다.
"P, 이 집안에서는 누구도 상대에게 소리를 지를 수 없어. 이 집에는 당신 말고 다른 입주자분들도 있고 장애인 지원사들도 있어. 당신이 이렇게 소리를 지를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아주 불편하고 불안감이 높아져. 우리는 당신을 도우려고 온 사람들이야. 그런데 당신은 지금 우리 장애인 지원사들을 학대하고 있어. 어제 당신이 헤일리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들었어. 앞으로 다른 동료들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대하면 팀리더, 매니저, 그리고 당신의 가족에게 리포트 써서 보낼거야."
"미안해."
순식간에 상황이 종료됐다.
D가 너무 멋져 보여서 헤일리의 눈이 반짝였다. 호주의 노동자들은 대화의 기술이 너무 좋다. 십년 호주살이를 해보면서 알게 됐다. 어릴 때부터 사회 문화적으로 이런 대화의 기술을 가정과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교육받는다는 사실을. 헤일리는 매번 이런 명료하고 논리적이면서도 상대를 무시하거나 멸시하거나 비아냥 거리지 않는 대화법을 훔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한국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소통법들이다.
장애는 상대의 이해를 위해 설명이 필요할 때 필요한 도구이지 장애인이면 어떤 행동도 모두 용서되고 용납되는 변명의 도구가 아니다. 세상에 장애 여부를 떠나 자기 맘대로 자기 원하대로 말하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비장애인이면서 동료, 장애 당사자, 그리고 당사자의 가족, 팀리더 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의 말과 행동을 점검하고 사회적으로 타당하고 용인되는 정도를 지키려 애쓴다. 지적장애나 자폐성 장애란 말이 이런 사회적 규칙과 기준을 모두 무시하고 안하무인으로 상대를 무례하게 대해도 된다는 만능키를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장애인도 좋은 매너와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배울 수 있다. 물론 그 정도와 방법이 그리고 가르치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비장애인의 방법과 다르고 정도가 다를지라도 우리는 누구나 배울 수 있다. 만약 장애인이어서 배울 수 없다면 왜 우리는 장애인에게 교육을 할까?
헤일리는 동료 D를 보면서 또 환기하고 결심한다.
‘나도 언젠간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호주이민 #나는멜버른의케어러 #장애인활동지원사 #멜버른 #자폐성장애 #신경다양성 #신경다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