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에게는 그들만의 소통법이 있다
격주 목요일마다 헤일리가 지원하던 고객 C가 사망했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건강 문제를 갖고 계셨는데 가장 큰 문제는 심장이었다.
일년간 각종 검사를 하고 가족과 의료진이 심사 숙고하여 수술을 결정했는데 끝내 다시 쉐어홈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쉐어홈을 떠나던 날 스리랑칸 동료 N에게 이렇게 말을 하고 떠났다고 했다.
“(돌아가신)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그래서 헤일리의 고객이 P로 바뀌었다. 병원에서 몇 달 발목 수술과 재활을 받고 돌아오신 P가 목요일마다 데이센터를 쉬는 날이 되었다. 참고로 연세가 많으신 장애 고객들은 주 5일 데이센터에 가면 피곤하니 주중에 하루 씩은 출근을 안한다. 고객마다 요일을 다 다르게 배정해서 일대일로 장애인지원사와 고객을 매칭해서 당사자가 주중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거나 집에서 조용하고 편안한 휴식의 날이 되게 배려한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P와 헤일리 둘이 보낸다.
아침 9시,
세 명의 고객들이 모두 일터(데이센터를 부르는 말)로 가고 헤일리가 P에게 물었다.
“오늘은 뭐하고 싶으세요?”
“토비에게 물어봐.”
“네, 토비야, 넌 오늘 뭘하고 싶니?”
텔레토비는 1997년 영국에서 처음 방영된 유아용 티비 프로그램이다. 헤일리는 관심있게 단 한편도 본 적이 없다. 왜냐면 헤일리는 이미 유아가 아니니 그런 프로그램은 재미가 없을 뿐더러, 헤일리가 어릴 때 있던 프로그램도 아니니 더더욱 정보가 많지 않다.
P는 텔레토비의 4명의 캐릭터 중 빨간색 주인공인 포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녀는 포를 ‘토비’라고 부른다. 하루 24시간 매일 토비와 껌딱지처럼 붙어 있어야”만” 한다. 샤워할 때도 토비가 어디 있는지를 꼭 알려 드려야 하고, 잠 자리에 들 때도 베개 옆에 토비를 뉘이고 이불을 덮어 줘야만 잠에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뭐든지 토비에게 물어야 하고, 그녀가 가진 모든 물건은 토비가 사준 것이 된다.
토비는 그녀에게 전지전능함을 지닌 인격체다.
P, 아니 토비는 집 근처의 이스트랜드(EastLand)라는 쇼핑센터에 가고 싶다고 했다. 토비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라고 P가 말했다.
“토비, 점심으로 뭐 먹고 싶어?”
“토비, 점심이랑 뭐 마시고 싶어?”
헤일리는 고객 맞춤형에 아주 최적화된 장애인지원사이니 고객이 원하는대로 토비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얻어 고객 만족을 극대화 한다.
햄과 치즈 토스티(멜번 사람들은 토스터를 ‘토스티’라고 자주 부른다.)와 밀크 쉐이크를 맛있다며 먹는 P를 보니 헤일리도 오늘 노동의 만족도가 급상승을 한다.
이제는 집에 갈 시간, 쇼핑 센터 안에 택시가 들어오고 나가는 공간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택시를 기다린다. 휠체어에 앉아 토비를 꼭 안고 휠체어 택시를 기다리던 P가 의자에 앉아서 일반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두 분의 할머니를 보자마자,
"니 이름이 뭐야?"
이런 상황이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다 보면 흔해서 헤일리는 이제 익숙해졌다.
그냥 지켜 보고 있다가 개입해야 할 순간이 올 때만 개입을 한다. 처음에 이런 상황에서 헤일리는 너무 혼동스러웠다.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는 제법 익숙졌는데 고객이 상대에게 해를 가하는 것도 아니고 나쁜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인사하고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폐인이자 지적 장애를 가진 P의 사회적 소통의 방법이라고 생각을 한다. 비장애인이 고유한 사회적인 소통 방법이 있다면 발달장애인에게도 당사자에게 맞는 사회적 소통의 방법이 있을 뿐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장애인 활동 지원사들이 당사자들과 밖으로 나가는 이유도 어찌보면 비장애인들과 장애인들이 소통할 기회를 주기 위함도 있다.
헤일리가 일하는 쉐어홈에서 26년째 일하는 동료가 말했다.
“헤일리, P는 말하는 걸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쇼핑센터에 가면 카페 같은 곳에 가서 주문같은 거 할때 직원과 직접 소통하게 하면 아주 좋아해.”
4년째 발달 장애인을 지원하는 헤일리는 제법 전문적인 장애인지원사가 되어 가고 있다.
‘고객이 먼저 인사를 했을 때 받고 싶은 사람은 받으면 되고, 싫으면 대꾸를 안 하던지 각자 알아서 하면 되겠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친절하게 인사할 필요는 없겠지.’ 라고 생각을 고쳐 먹자 이 분들과의 외부활동이 편안해지고 스트레스 레벨이 낮아졌다.
보통 할머니들은 휠체어에 앉아, 텔레토비의 닳아 빠진 토비를 훑어보면 장애인이란 사실을 금방 이해하니까 아주 친절하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 비장애 당사자들도 일상적으로 장애를 경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지니 장애인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헤일리는 생각한다.
토비의 배꼽 버튼을 누르면 토비가 말을 몇마디 하는데 오늘도 P는 두 분의 할머니 앞에서 배꼽을 누르면서,
"이것 봐. 토비가 말도 해. 토비가 오늘 밀크쉐이크를 사줬어. 이 옷도 토비가 사줬어."
할머니들은 그에 장단을 맞춰,
"너무 럭키하다. 토비가 옷도 사주고 말도 하고."
할머니들의 적극적인 반응에 신이 난 P는,
"나랑 토비랑 사진 좀 찍을래?"
할머니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보인다. 진짜로 사진을 찍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혼동스러운지 헤일리를 쳐다본다.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헤일리, 이제 출동할 타이밍이다.
"제가 찍어 드릴게요. 토비랑 포즈 좀 취해보세요."
집에 돌아 온 P는 헤일리에게 말한다.
“오늘 고마워. 언제 또 나랑 이스트랜드 갈 거야?”
"제가 아니라 토비에게 물어보셔야죠!"
둘이 배꼽이 빠지라고 웃는다.
잠시 후 P는 아이패드로 텔레토비를 보시다가 두 시간의 외출이 피곤하셨는지 고개를 떨구고 주무신다. 헤일리는 토비에게 퇴근 결재를 받는다.
"토비야, 나 퇴근하고 다음에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