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살이 제 2 막이 오르다
“축하해! 네가 이 집의 주인이 됐어!”
부동산 중개인 마크가 전화기 너머로 외쳤다.
2달 동안 앞으로 내가 살 집을 알아보기 위해 집 헌팅을 다녔다. 호주에서의 집구매는 호주와 한국이란 나라의 차이만큼 다른 법이어서 나름 재미도 있었다. 발 품이 많이 들었지만 배우는 게 많았다. 내 이름만 단독으로 적힌 계약서에 간단한 전자 사인으로 집 구매가 종결됐다.
2년여 전, 지금은 전 남편과 이혼을 동의하고, 변호사와 별거와 추후 이혼, 그리고 아들의 양육에 관한 내용과 절차를 듣고 서류들에 사인을 할 때보다도 집 구매란 행위는 ‘돌아온 싱글’이란 현실 파악을 명료하게 해줬다. 마침내 나만의 베이스 캠프가 설치됐다는 안정감이 들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자가살이’와 ‘세살이’란 상태가 ‘배우자 있음’과 ‘배우자 없음’보다 강렬한 효과를 주기도 하는 법인가 보다.
“이제 우리 이혼하자. 이렇게 계속 살 수 없어. 인생은 앞으로 전진해야 하는 거야.”
전 남편이 이런 말을 먼저 했을 때 말문이 막힐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뒤통수 맞은 듯한 배신감도 들었다.
‘내가 이혼을 “당”하는 거야?’
화가 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관계의 유통기한이 다한 상태란 사실을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결단은 쉬웠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 언젠가는 닥칠 일이란 걸 알자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혼 할 거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야 기반을 다질 시간이 많잖아.’
결단은 했어도 현실은 캄캄하고 막막했었다. 30대 중반의 출산과 40대에 이민 결심을 한 이민 1세대, 이민 후 오랜 기간 경단녀의 시간을 지내고 호주 일터로 진출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이민자라는 단어가 말하듯 주변에 무조건 내 편인 가족도 없었고, 나의 내밀한 속 얘기를 깊게 그리고 길게 나눌 친구들도 없었다. 원래 이민은 고독하고 외로운 것이란 사실을 감각적이고 현실적으로 알게 된 시간들이기도 했다.
둘이서 의지하고 살다 혼자 다시 서기, 낯선 호주 땅에서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하니 노동의 시간을 늘리고, 별거와 이혼에 관련한 영어로 씌어진 각종 법적 문서들과 절차들을 듣고 읽고 이해하기도 벅찼다. 당연한 말이지만, 호주의 이혼제도나 양육에 대한 권리나 의무 또한 한국과는 차이가 많았다. 한국은 이혼이 아직 유책주의라면 호주는 무과실주의다. 결혼 평등법이 통과되었고 성인들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중시하는 호주에서 부부나 파트너가 이혼을 결정했을 때 상대의 과실여부를 묻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무조건 일 년간은 별거 상태를 거치고 나야 이혼 신청을 할 수 있다.
이 때 별거상태는 주거 분리의 별거 외에도 한 지붕 아래 별거(Separation under the one roof) 도 인정을 해주고 있다. 만약 한 지붕 아래 별거인 상태에서도 각각의 파트너의 재정이 분리된 상태에서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면 호주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시작된다. 한 쪽이 다른 상대에게 양육비를 지급해야 하는 경우에는 임금을 받는 고용된 직장인이라면 상대 양육자에게 지불해야 할 일정한 금액의 양육비를 미리 차감한 상태로 임금을 받게 된다. "돈이 없어서 양육비 못 준다", 는 말이 성립하기 어렵단 뜻이다. 그리고 이별의 과정을 거치면서 호주 이혼에서의 실질주의와 아동복지 최우선의 원칙이 중심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미성년자 아이를 양육하는 일, 노동 시간이 불규칙한 장애인활동 지원사란 직업, 경제적으로 아직 주거 분리를 하기 어려운 상태의 조건들, 주거를 분리하면서 겪어내야 할 두려움과 외로움 등을 '한 지붕 아래 별거'란 제도 덕에 나 뿐만 아니라 아들에게도 순리적으로 그리고 급격한 변화없이 적응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 이혼 사실을 알리자 불안해 하는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 아빠의 이별에 너는 어떤 잘못도 없단다."
“아들, 엄마랑 아빠는 사랑해서 결혼을 했고 그래서 네가 우리에게 왔어. 엄마 아빠는 죽을 때까지 너의 엄마 아빠이고, 마지막 순간까지 지금처럼 너를 사랑할 거야. 단지 엄마 아빠는 같이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을 뿐이야. 대신 넌 앞으로 행복한 아빠, 행복한 엄마를 가질 거야. 그리고 네가 준비가 될 때까지 우리는 한 집안에서 하우스 메이트로 살아갈 거야."
나는 40대에 호주로 이민을 온 이민 1세대, 오십대에 다시 돌아온 ‘싱글’이고 그 뒤에 “맘”이 따라 붙는 ‘싱글맘’이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나의 베이스 캠프를 구축했다. 이제 난 베이스 캠프를 기점으로 거침없이 호주를 살아낼 계획이다. 이제서야 시작이다. 내 맘대로 내 멋대로 호주 살이 제 2막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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