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가 고장났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까르르 웃었다."
간단한 자기 소개 시간이었다. 퀸즈타운으로의 가족 여행, 두 남자는 스노우 보드에 빠져서 스키장으로 가고 나 혼자 단체 관광에 합류했다, 말하자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웃었다. 겉으론 쿨한 척 따라 웃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마치 슝하고 솟구쳐 팡팡 터지는 불꽃처럼 요란했다. 오래 전부터 만들어졌으나 말로 발화되지 않은 문장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뭔가가 고장 났다.’
우리 가족의 마지막 가족 여행은 뉴질랜드의 퀸즈타운 이었다. 퀸즈타운은 천상의 세계가 내려 앉은 마을처럼 아름다웠다. ‘멜버른 하늘병’ 이란 말이 한국 이민자들 사이에서 우스개 소리처럼 회자된다. 멜버른의 청명하고 짙은 파란색 하늘을 구경한 사람이 멜버른을 떠나면 멜버른의 하늘이 그리워 생기는 병이다. 나 또한 둘째라면 분노할 정도로 멜버른의 하늘을 사랑하는 사람인데도 퀸즈타운의 겨울 자연은 얼얼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동화속 배경으로 등장할 법한 풍경의 마을 이었다.
퀸즈타운은 추위와 스노우 보드를 애정하는 두 남자의 취미 저격을 위해 계획한 여행이었다. 3명이 이루는 가족은 언제나 2:1 로 나뉘어 지는 법이었고 그 중에 1은 대부분 내 몫이었다. 내 가족은 이레봐도 저레봐도 내가 외톨이 되기 쉬운 구성이었다. 신경 타입으로 봐도 두 남자는 신경 다양인, 나만 신경 전형인이란 점에서 내가 소수자고, 성별로 봐도 내가 열세였고, 무엇보다 모든 사항을 압도하는 점, 바로 취미에서 둘의 일심동체는 넘사벽이었다.
“딸년들이 다 엄마 편만 들고 나랑은 얘기도 안 하려고 해!”
생전에 무능하고 자식들과 대화 한 마디 변변하게 할 줄 몰랐던 아빠는 말년에 딸들을 원망했었다.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어른이 되어서도 술술 말문이 트인다는 사실을 아빠가 삶으로 증명해 준 터였다. 그런 아빠 밑에서 평생을 산 나는 이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들이 당신하고만 놀라고 하잖아.”
자존심이 상했다. 아들과 아빠의 친밀한 관계를 두고 질투를 하는 엄마라니? 누가 들으면 미친년 소리 듣기 딱 좋은 상황이었고, 내 입에서 이런 유치한 말이 튀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타인에게 내어 놓기가 두려운 말이기도 했다.
반면에 생각해 보면 내가 아들이어도 아빠랑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게다. 게임은 테트리스 밖에 모르는 엄마가 제공하고 제안하는 놀이들은 ADHD 아들의 흥미를 유발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은 것들이었고, 반면에 ADHD아빠가 제안하는 비디오 게임이나 에니매 시청은 아들의 집중과 관심을 단박에 사로 잡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ADHD 들은 한번 좋아하는 일에는 과몰입과 과집중이 일어난다는 사실이고, 둘이 파티타임을 보내는 동안 엄마인 나의 주 역할은 집안일로 고착이 되어간다는 점이었다.
처음엔 서로 상의를 해서 계획을 세우고 노력을 많이 했다. 엄마랑 노는 시간과 아빠랑 노는 시간을 적당히 분리해서 배치하고, 주 1회의 아들과 엄마의 요리 시간을 배정하고, 아빠의 집안일을 늘려 보기도 했다. 그런데 별 효과가 없었다. 보모와 가사 도우미가 키운 남미 출신의 남편은 일상생활 기능이란 면에서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설상가상인 점은 ADHD 들의 주 특기인 낮은 작업기억과 실행능력 탓에 집안일을 시키고도 결국은 내가 다시 일일이 마무리를 짓고 다녀야 했다. 일을 이중으로 하는 느낌이 들었고, 노력대비 효율성이 저조했다.
어찌보면 우리 부부는 아들을 너무 사랑해서 말다툼이 잦았다. 아들은 엄마도 아빠도 사랑하고 양쪽과 관계도 좋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빠와 밀착된 시간을 보내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빠를 사랑하는 아들이 아빠의 흥미를 닮아가는 일은 지극히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한 번 좋아하면 끝장을 보듯 좋아하는 사람들, 두 남자는 5일 동안 스노우 보드를 탔다. 좋아하지도 않는 스키를 “가족”이란 이름을 위해 ‘가족여행’이란 이름에 걸맞게 처신하기 위해 3일을 탔더니 4일째는 스키를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그래서 독립적인 멋진 엄마인 척 제안했다.
“난 여행사 끼고 밀포드 사운드에 다녀 올게. 둘이서 재밌게 놀아.”
사실은 너무 서글펐다. 왜냐면 이번 여행만이 아니라 모든 가족여행은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다. 식사를 할 때도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도 둘은 게임과 에니매가 주 화제였다. 중간에 내가 다른 주제를 말하려 하면 남편은 화를 냈다. ADHD 들은 컴퓨터 화면에 백개의 창을 열어 놓은 것처럼 생각은 많은데 또 자주 잊기 때문에 잊기 전에 말을 하려고 말이 빠른 경우도 종종 있지만, 상대가 중간에 말을 끊으면 하던 말을 잊어버리기 쉬우니 남편은 화를 냈다. 그 둘의 대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다 보면 내가 불청객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나의 주 임무는 듣는 척하거나 앉아서 딴 생각을 하거나 딴 짓을 하는 것이었다. 물에 기름을 친 듯 둥둥 떠다니는 내가 있었다.
“복에 겨웠네. 남들은 독박 육아라 사네 마네 하는데 넌 남편이 애랑 잘 놀아서 문제야?”
사람들은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독박 육아만 아니라면 다른 종류의 양육과 관계의 어려움은 말도 못 꺼낼 사연이 되어야 할까? 엄마 아빠가 균형을 이룬 대화와 양육, 그리고 세 가족의 역할과 관계가 적절히 조화된 가정을 꿈꾸는 일이 왜 복에 겨워 말하는 투정처럼 받아들여져야 할까.
퀸즈타운에서 호주로 돌아오는 비행기안,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나 혼자 따로 국밥 여행은 가지 않을 거라고. 아예 나 홀로 여행을 떠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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