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랑

같이 저녁이나 먹을래요?

by 루아나
울릉도 여행에서 사 온 나물밥을 보내주는 나의 친구, 초록



“같이 저녁이나 먹을래요?”


만약 내가 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어쩌다 떠올리는 희미한 추억 한 조각이었을 게다.

만약 그날 저녁 우리가 함께 소고기를 먹지 않았다면, 우리의 인연은 시작조차 없었을 게다.

만약 내가 울릉도로 홀로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를 만날 일 조차 없었을 게다.

만약 하루 먼저 떠날 예정이었던 그의 배가 바람으로 취소되지만 않았더라면 우리는 다시 만날 일이 없었을 게다. 이런 ‘만약’들이 우연히 쌓이고 또 쌓이는 일을 인연이나 운명이라고 부른다면 우리의 만남은 그런 이름이 붙어야 마땅했다.


‘울릉도나 가 볼까?’


갑자기 왜 울릉도였을까? 접근 좋고 친숙하고 볼 것 먹을 것 즐길 것 많은 제주도 대신?

때는2007년 8월이었다. 계획대로라면 가벼운 캐리어 가방과 울릉도가 아닌 10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메고 터키의 길들 위에 있어야 했다. 1996년, 바람의 딸인 한비야가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돌고 온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내 머리속은 벌써 히말라야, 캄보디아, 남미 등과 같은 나라 속을 헤매던 시기였다. 왠지 난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완성도가 높은 배낭 여행이란 생각, 그리고 가장 가난한 여행이 참 여행처럼 느껴지던 시기였다. 젊음이었다.


‘치기로 버틸 나이는 지났지!’


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던 내게 학년 부장이 방학 중 보충수업에 꼭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보충수업은 교사의 법적 의무가 아니나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사가 방학 중 보충수업이 전국의 기본값이었던 시절에 “노”를 말하기는 곤란한 일이었다.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30대 여자 교사들의 “노”는 호락호락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 시절의 “노”는 ‘좋은’ 관계를 종료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굳이 관계를 종료하면서까지 터키 여행을 고집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타 직업에 비해 긴 겨울방학을 갖는 교사라는 직업 덕에 혼자서 배낭여행을 몇 번 다녀봤는데 불편함이 많았다. 혼자하는 여행은 자유만큼 제약도 많았다. 제일 어려웠던 점은 내 눈앞의 감탄을 즉각즉각 나눌 대상이 없다는 점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과 SNS가 삶의 한 자락으로 자리잡은 시대였다면 좀 더 수월했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불편은 꼭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일인분은 팔지 않아서 포기하거나, 이 인분 시켜 일 인분 섭취하거나, 처음 만난 나 같은 홀로 배낭여행족들을 찾아 이 인분 시키기를 도전하던 여행이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흔한 일이지만 그 시대에 여자 홀로 하는 혼여(혼자 하는 여행),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혼자 마시는 술) 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이게 그리 흔하고 보편적이었다면 바람의 딸이 이렇게 한국에 인기를 얻지는 못했을 게다.


그래서 적절히 타협을 본 곳이 울릉도였다. 배를 타야만 도착 할 수 있는 곳, 기상이 허락해야만 배가 뜨는 곳, 배 멀미의 불쾌함을 감내해야 도달하는 곳, 그리고 아직 신비로움이 남아 있는 곳이어서 택했다.


“안녕하세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해외 단체 여행객들을 종종 만날 수 있던 제주도라면 건네지 않았을 인사였다. 그런데 이곳은 울릉도가 아닌가? 내국인들도 잘 찾지 않는 섬! 울릉도 5박 6일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외국인이 그와 그의 남동생이었다.


“브라질에서 왔어요. 동생이랑 여행 왔어요.”


난 영어로 물었는데 그는 한국어로 답했다. 외국인다운 어설픈 한국어였다.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는 형을 만나러 온 동생, 그리고 동생이 귀국하기 전에 형제 둘이 떠난 울릉도 여행이라고 했다.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적당한 곱슬머리의 예쁘게 생긴 두 젊은이가 사랑스러웠다.


십 여분의 호구파악 정도의 대화를 한 후 헤어져서 각자의 길을 걸었다. 나는 내가 걸어야 할 길이 앞에 있었고, 그들은 그들이 걸어야 할 길이 정해져 있었다. 그들은 오늘 오후 배로 돌아간다고 했고 내 배는 다음날 출발할 예정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은 같이 하는 여행에 비해 시간이 남아 돈다는 특징이 있다. 볼거리, 즐길 거리, 먹거리 등 서로 상의할 일이 없으니 당연한 이치다. 작은 섬 울릉도를 5박으로 온 나는 남아 도는 시간을 엿가락 늘리듯 사용하고 있었다. 울릉도의 관문인 도동항 근처에서 더덕을 까며 파는 할머니들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라, 배 떠났을 시간인데요?”


두 형제의 배는 바람으로 인해 취소가 되어서 내일 떠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셋은 근처의 식당에서 소고기를 구워 먹고 헤어졌다. 몇 번의 해외 배낭여행이 가르쳐준 대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가볍게 만나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면 반갑고 못 만나도 아쉬울 것 없는 그런 거리의 관계들이었다.


“어디 아파요?”


다음날 배 시간에 맞춰 나가니 손바닥 만한 항구에 두 형제가 또 보였다. 형의 얼굴은 하루 밤 사이에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증상을 들어보니 감기 몸살이었다. 그것도 한여름 8월에 감기라니.

근처 약국에 데려가서 증상을 설명해 주고 약을 사서 먹는 걸 보고 헤어졌다. 두 형제는 강릉항으로 그리고 나는 포항으로. 그렇게 우리의 만남과 사랑은 길에서 시작되었다.


“연락처 알려줘요. 다음에 서울 가면 밥이나 같이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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