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영화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문학도와 공학도의 사랑

by 루아나
tempImageUkJQ63.heic 브라질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먹는 국민 간식 퐁지케이주(Pao de Queijo)와 에스프레소 카페징뇨(Cafezinho)




‘아인슈타인이 환생한 거야?’


범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끌렸다.


내 인생은 흙수저 자체이고, 학창시절 내내, 너무 위로 튀지도 않게 너무 아래로 추락하지도 않을 정도로만 공부를 했다. 반은 노력 반은 운발로 임용고사도 중간 성적으로 합격했다. 합격이 목표이니 개의치 않았다. 1998년도에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고 이해찬이 교육부 장관직을 맡았다. 그는 교육개혁과 교육계의 세대교체를 외치며 교원의 정년을 65세에서 62세로 3년 단축했다. 그 덕에 젊은 교원 채용이 확 증가된 2000년도에 나는 교직에 들어설 수 있었다. 가뜩 들떠서 현장에 가보니 선배 교사들은 이렇게 분개하고 있었다.


“우린 해찬들 고추장은 쳐 다도 안 봐!”


반면에 그는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저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명석했다. 학창 시절 수학과 물리가 젤 쉬웠다는 그였다. 그걸 왜? 수학과 물리를 두려워했던, 문학을 사랑했던 나는 반문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종종 수학 교사가 본인에게 문제 풀이를 확인하고 수업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는 수학 올림피아드 출신이고 일년을 일찍 의과대학에 합격하고도 컴퓨터와 사랑에 빠져서 공과를 택한 사람이었다. 2007년, 그를 만나기 전 해에 나온 일본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속의 천재 수학자인 박사가 내 눈앞에 서 있는 환상이 종종 일었다. 내 삶이 영화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수학과 컴퓨터의 언어들이 너무 아름다워!”


우리는 한국과 브라질, 북반구와 남반구 만큼 정반대의 삶을 살아 온 터였다. 내가 초등때부터 가마솥에 불을 피워 밥을 해먹고 살았다면, 그는 가사도우미가 해주는 밥을 먹고 살았다. 언니들이 나를 업어 키웠듯이 내가 남동생을 업어 키웠다면, 그는 신생아 때부터 보모가 그를 키웠다. 내가 방과 후에 콩을 심으러 다녔다면, 그는 컴퓨터의 본체를 분해해서 조립하고 놀았다.


“한국인끼리 만난 사이였더라면 드라마나 영화속에서나 이어질 인연이었다.”


그는 미덕이 많은 사람이었다. 인물이 너무 곱고 부드러워서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는 겸손했고 예의가 바르고 반듯했다. 그가 한국으로 온 이유는 부모로부터의 도피라고 말했다. 아파트 출입구에 총을 든 경비원이 지키는 나라, 대낮에 걷다 가도 무슨 일을 당할지모르는 위험한 나라라서 어릴 때부터 엄마가 과잉으로 보호를 했다고 했다. 대학도 엄마랑 떨어지고 싶어서 집 근처가 아닌 상파울루로 갔고, 졸업 후에는 엄마가 자주 방문하지 못할 처음 들어보는 한국이란 나라로 유학을 왔다고 했다. 학창 시절의 소원이 버스타고 등하교였다니,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에 끼여 둥둥 떠다니던 내가 재수없게 들릴 법도 한, 그의 너무도 사소한 소원을 듣고 안쓰러워 하고 있었다.


"이렇게 훌륭한 청년도 있네!"


그는 겸손했고 정직했다. 약속을 어기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대 이상으로 화를 내고 힘들어 했다. 매일 낡아빠진 바지에 후줄근한 면 티, 그리고 운동화만을 입고 신고 살았다. 그래서 난 그와 결혼을 결정할 때까지 그의 아빠가 의사이고 엄마가 예술가라는 사실도 몰랐다. 그리고 그는 청정 암반수처럼 청명하고 순수했다. 어찌 보면 이 어지럽고 혼탁한 세계의 규칙과 질서를 모르는 듯 백치미가 흐르는데 또 똑똑함이 가미된 탁월함을 지녔다. 삶에서 너무 많은 굴곡과 시련에 낙서가 난무한 내 스케치북에 아무런 낙서가 그어지지 않은 그의 스케치북이 겹쳐지는 듯했다. 그래서 마음의 쏠림을 멈추지 못했다. 방구석에서 평생 공부와 컴퓨터만 만지다 세상에 갓 나온 듯한 그를 보고 있으면 신비감에 젖어 왠지 나도 자동으로 정화가 되고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반면에 저런 상태로 동물의 왕국인 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지, 저절로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아버님의 바람처럼 의사가 됐으면 어땠을 거 같아?”
“그럼 지금 당신을 못 만났잖아.”


뜬금없이 묻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말하는 진정성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과 어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군다나 나같은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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