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부류의 사람들
▲ 일주일 마다 보내주는 학교 소식지에 실린 구구단 빌딩 수학 구구단 활동을 놀이와 접목시켜 교육. 온라인 수업 기간 동안 가정학습 과제로 제출한 학생들의 작품들을 일주일마다 학교 소식지에 실어서 아이들의 동기와 흥미를 유발한다. ⓒ 이혜정
코로나 정국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분야 중 하나가 교육이다.
하루하루 쏟아지는 교육관련 뉴스들을 따라 읽기도 바쁘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이 지닌 막강한 여파를 고려한다고 해도 한국의 우왕좌왕 교육계를 납득하기는 어렵다. 한 나라의, 그것도 이번 코로나 정국에서 ‘K 방역’으로 한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떨치고, ‘선진국가로의 진입’에 들뜬 국민들이 사는 나라에서 교육계의 성적표가 이처럼 초라하다는 것은 믿기 힘들다.
비단 코로나 사태가 아니어도 한국의 교육은 중심도 없고, 기본 철학도 미비하다. 학교 안에서 교사들은 ‘옳음과 그름’, ‘교육적 활동과 반 교육적 활동’, ‘민주적 교육과 반민주적 교육’을 사유하고 성찰할 기회 따위는 어차피 없었다. 매일 발등에 내리 꽂히는 온갖 잡다한 일들을 겨우겨우 해내기도 바쁜데, 그들에게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고, 그에 맞춰 일년 계획을 세우고, 또 그 안에서 교육적인 하루의 계획을 세우기를 바라는 건 요망하다.
한국의 많은 구성원들은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들을 ‘영혼 없는 사람들’, ‘철밥통’을 근거로 나태한 조직쯤으로 조롱한다. 내가 한국에서 교사일 때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하다.
한국을 떠나 해외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들을 영혼없이 살아야만 하도록 만든 것은 한국 교육의 시스템이지 교사 본인들이 아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비판적이고 문제의식을 가진 교사들이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생존하기 어렵게 만든다. 교사의 모든 판단과 교육활동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할 때 문책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자율적이고 교육 전문가로서의 판단과 실천 대신 위에서 내려오는 전달과 지시 등을 따를 수 밖에 없다. 교육부-교육청-각 학교로 이어지는 철벽같은 한국의 관료 사회에서 소통은 언제나 일방적으로 흐르기 쉽고, 교육적 활동에 꼭 필요하지도 않은 '일이 일을 낳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만들기 일쑤다. 이런 구조는 영혼없이 살거나, 영혼을 유지한 채 자괴감으로 시달리거나, 영혼을 지키기 위해 교육계를 떠나는 교사들을 양산하기 쉽다.
학교 밖의 사람들은 학교내의 상황을 낱낱이 이해하기 어렵다.
아이들이나 학부모들과 직접 만나는 사람들은 결국 현장의 교사들이고, 대부분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교사들이 모든 사회적 비난과 비판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게다가 요즘 학부모들은 교사들에게 교수학습 활동을 넘어선 인권감수성, 성인지 감수성, 폭력에 대한 감수성, 평화감수성 등 민주시민으로서의 높은 소양을 요구하는 시대다.
아이러니한 점은 정작 많은 교사들도 이런 교육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렵게 학교의 시스템을 바꿔 달라고 입을 떼면, 사회로부터 ‘배부른 소리’, ‘밥그릇 싸움’, 심지어는 ‘싫으면 관둬라. 들어가고 싶어 줄 선 사람이 널렸다.’ 는 비정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 Student Assessment Opportunity(등교 수업 준비를 위한 진단 평가) 긴 등교 수업으로 발생했을 학생들간의 학업 성취를 진단하고 교사들의 수업 계획을 위해 등교 일주일전 담임과 학생 일대일 면담을 실시하는 호주 학교. ⓒ 이혜정
법에서 정한 대로 따르는 퇴근 시간 마저도 ‘칼퇴근’이라며 비난 거리로 삼는다.
나는 교사들은 노동의 권리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더 철저하게 보장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교사가 만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장차 노동자로 살아간다면, 그들이 어떻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고 본인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야 하는지를 교사들이 몸소 보이는 것은 중요하다. 양육을 해 본 사람이라면 가장 좋은 교육은 부모가 모범을 보일 때임을 잘 알고 있다.
교사의 칼퇴근을 비난할 게 아니라(실제로 칼퇴근을 못하는 교사들도 널렸다), 본인의 작업장에서 법에서 정한 퇴근 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업주와 이를 강제하지 않는 국가 기관을 상대로 투쟁해야 마땅하다. 나의 권리를 찾기 위해 겨우 유지되는 상대의 권리를 짓밟고 야유를 보내는 방식은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데 보탬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현 시스템으로는 '교육의 신'이 들어와도 어쩔 수 없는 구조인게, 한국의 교사들은 다른 국가의 교사집단과 비교했을때 이미 엘리트 집단이다.
교육 분야에 관한 한, 한국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학교 현장의 실체를 매일 최전선에서 경험하는 학교 내부자 들과 수박 겉핥기 식으로 교육을 이해하는 외부자 들.
내부자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풍토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전국민이다.
가장 아픈 지점은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기 어렵다는 점이고, 부모들은 학교와 교사를 신뢰하지 않으며 사교육에 돈을 쏟아 붓고, 교사들은 낮은 직업 만족도와 패배감 등에 시달린다. 코로나 정국에서 보여진 관료들의 표정도 유쾌해 보이지는 않는다. 현장의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대한민국 거의 모든 학교가 그들의 지침 만을 바라보고 있다면 숨이 막힐듯하다.
한국 교육을 발전시키려면 현장의 실무자들이 내는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이들을 배제한 정책들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이번 코로나 정국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전세계에서 좋다는 제도들을 다 도입하고 예산은 예산 대로 투입해도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기 쉽다. 우리 집의 주된 살림 살이를 정확한 이해도 없는 옆집 주인이 관장하면서 '시키는 대로만' 할 수 있다면, 주인의식과 애정을 갖고 돌보기는 어렵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교사들만의 전유물도 아니고 그들만의 책임도 아니다.
이젠 학교 밖의 구성원들이 발을 빼고 훈수두는 방식이 아닌, "함께 바꿔보자"는 애정어린 마음으로 함께 변화를 모색해 보면 좋겠다.
앞으로 교육부 장관도 교육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 밑에 관료들도 현장의 경력과 경험이 풍부한 교사들로 채우면 어떨까 싶다. 현장의 경험이 부족한 늘공(늘상 공무원의 줄임말, 직업 관료를 말함)으로만 채우지 말고, 일정 경력을 갖춘 교사들이 몇 년간 선출되어 봉사하고 다시 교실로 돌아가는 제도는 어떨까?
최소한 지금처럼 교육정책과 현실이 기름에 물 붓듯 따로 놀지는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