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과학 시험이 끝나자마자 친구들은 내 자리로 몰려왔다. 친구와 답을 맞춰보다가 나는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어이없게도 덧셈을 하면 끝나는 문제를 덧셈을 잘못해서 틀렸던 것이다. 내가 책상에 엎드려 울자 친구들은 나를 다독이며 많이 틀린 거냐고 걱정해주었다. 아니, 한 개 틀렸어.
이게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인가. 지금 생각해도 친구들에게 등짝을 얻어맞지 않은 게 참 다행이다. 시골 학교라서 그랬던지 친구들은 착했고, 겨우 열다섯이었지만 저런 모자란(?) 친구 정도는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 줄줄 알았나보다. 믿을 수 없지만 그 후에도 내게는 저런 일이 여러 번, 아니 아주 자주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재수가 털리는데, 그때의 나를 참아준 내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잘한 것보다 잘하지 못한 것을 먼저 생각했다. 99개를 잘했어도 하나를 제대로 못하면 나는 오래 울었다. 완벽, 그리고 완전한 것. 나는 언젠가부터 늘 그것에 목을 매고 살았다. 중간에 어이없는 실수라도 발견되면 나는 며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진짜 바보가 아닐까.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나의 부족함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그때는 세상에 완전함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줄 알았다. 완전한 사람, 완전한 사랑, 완전한 가족, 완전한 지식.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얼마만큼 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강박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줄 곧 나를 지하 끝까지 내리꽂았다. 나름 대학에서 우수한 학생으로 불리며, 졸업했는데 처음 시작하게 된 사회생활은 엉망진창이었다. 그 흔한 숫자 맞추기, 서류 순서 맞추기, A 다음엔 B를 해야 하고, 틀리지 않아야 했는데 나는 늘 틀렸다. 지출 서류가 회계 담당 선생님에게 갔다 오면 형형색색의 인덱스는 늘 기본 구성품이었다. 그 무지개빛 택들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너 대학 나온 거 맞냐?”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사소한 실수 하나로 나의 존재가 온통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직장은 나의 쓸모와 자본을 등가 교환하는 일. 그런데 나의 노동은 엉터리였다. 자본과 바꾸지 못하는 마감용 떨이 노동. 그 노동이 내 존재의 값을 다시 매기는 것 같았다. “너는 역시 쓸모 없는 사람이야.”
아주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 온 구멍. 엄마는 늘 내게 너 같은 거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구멍은 그 말을 들으면서 함께 성장해버린 각인이었다.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이다. 그 후로 나에게 인생은 쓸모있음을 증명해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누군가 이를 두고 자아실현, 존재증명이라고 했지만 그렇게 우아한 말은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지독하게 절박했으니까. 사회에 나와 직장이란 곳에 출근하면서 이 구멍은 더 숨통을 조여왔다. 그 구멍을 들키지 않으려고 늘 전전긍긍했다. 그러면서 늘 완전한 모습을 꿈꿨다. 언젠가 완벽해질 때까지, 완전해질 때까지 나는 버텨야 해.
일을 하는데 숨이 막혀왔다. 내가 만든 구멍에 내가 빠져 죽을 것 같았다. 눈이 빠지도록 숫자와 글자를 들여다봐도 실수는 늘 터져나왔고, 내가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은 나의 노력과 관계없이 늘 깜짝 파티를 하는 것처럼 나를 놀래켜 주었고 (아주 고오맙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일을 한다는 것은 정해진 과업을 정확하게 이행하는 것이 아닌 이미 벌어진 문제들을 때마다 그때의 최선으로 땜빵을 하는 일에 가까웠다. 미리 모든 문제를 예측하고 대비하고 계산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발차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데 아주 깊은 바다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다시 나의 구멍을 보았다. 완벽함이 늘 빠져나가던 구멍. 그리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들여다 보면서 생각했다. 구멍이 있어서 나는 숨을 쉬는구나. 구멍이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때부터는 그렇게 메우려고 애썼던 구멍을, 내버려두기로 했다. 이 구멍을 다 채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니 그럴 필요가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을,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요 며칠 날씨가 너무 좋았다. 겨울을 유난히 못견뎌하는 나에게 봄은 늘 기분 좋은 설렘을 준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바람에서 더 이상 찬 기운을 느낄 수 없게 되면 기분이 들뜨기 시작한다. “아, 어디라도 가고 싶다.” 회사의 점심시간은 늘 칼 같은 한 시간. 왼손에 핸드폰, 오른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쥔 채로 사무실에 들어가는 발걸음은 쇳덩이 같다. 자켓 주머니에 들어있는 차키를 괜히 만지작거렸다.
오늘은 금요일. 아침 아홉시부터 신나게 일을 한다. 오늘 따라 문의전화는 왜 이렇게 많고, 뭐 해달라는 요청자료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시계를 보니 오전 열시 삼십분. 무슨 생각이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 저 오늘 반차 좀 쓸게요.” 그리고는, 팀장 말도 제대로 듣지 않고 결재를 올려버렸다. 동시에 친구에게 빠른 손으로 카톡을 보낸다. “반차 씀. 나오셈. 밥 먹고 꽃구경 갑시다.”
하루를 통으로 비우는 연차가 있지만 나는 반차의 가벼움, 그래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즉흥성을 더 좋아한다. 연차는 하루 종일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팀 동료에게 인수인계를 해야 하고, 또 그만큼의 눈치도 봐야 한다. 그러나 반차는 상대적으로 여기에서 자유롭다. 오전에 할 수 있는 일을 다 처리하고 가면 되니까.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때도 나는 결석보다 조퇴를 좋아했었다. 결석은 왠지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다. 하루를 온전히 쉴 수는 없지만, 잠깐이어도 좋아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반차.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꽉 메우지 않아도 기쁠 수 있는 절반의 행복.
나는 그렇게 조퇴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커피를 마시고, 벚꽃을 보고, 꽃사진을 찍어서 프로필을 걸어놓고 집에 돌아왔다. 오늘도 좋은 반차였네. 어차피 완벽하지 못할 거라면, 절반의 행복을 찾기로 했다. 행복은 완전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찰나에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미처 다 채워지지 않아서, 조금 모자라서 더 완전한 반쪽짜리 행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