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모으면서 자주 활기차고, 가끔 무기력했다.

무기력을 떨쳐내는 아주 쉬운 방법

by 슥슥


1.

재테크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3년 차 재린이라 돈에 대한 철학이라고 말할 것이 아직은 없지만, 그래도 경험으로 한 가지 깨달은 사실 하나는 있다. '저축 목표를 달성한다 해도 무기력은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것' 돈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뜬금없이 웬 무기력이냐고? 나에게는 재테크의 과정이 이 무기력을 떼어내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병과 같았던 무기력을 조금씩 벗을 수 있었던 계기는 아무래도 (조금은 충동적인) '독립'이라고 할 수 있다.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었던 무기력의 묵직한 무게도 환경이 바뀌니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해', '어차피 늦었어'라고 좌절했던 내면의 목소리가 옅어지고 '지난달보다 식비라도 아껴보자', '가계부 앱이라도 받아보자', 'to do list는 꼭 수기로 써보자'와 같은 구체적인 행동의 언어들로 바뀌어 갔다.







2.

처음에는 그렇게 내가 변할 것만 같았다. 희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침에 적어둔 할 일을 마치고 쭉쭉 시원하게 밑줄을 그을수록 통장 잔고도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간과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정신적 피로와 체력적 한계. 퇴근 후에도 경제 유튜브를 보고 포스팅을 하랴, 재테크 스터디 미션을 하랴, 주식 기초 책을 읽으랴 새벽 1시가 넘어 잠드는 일이 많았다. 흡사 생산적이고 발전적으로 보였으나 몸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촘촘히 채운 주중을 보내고 나면 주말 아침엔 늘어지고 싶은 마음이 비례해서 커져갔다. 그때는 그게 그저 게으름인 줄 알았다. 하지만 활기 넘치는 주중 → 무기력한 주말 → 다시 활기찬 주중의 생활이 자주 반복된다는 걸 깨닫고 인정해야 했다. 나의 무기력이란 평생 관리해야 할 '헤르페스 바이러스'구나.







3.

헤르페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면역력이 떨어질 때마다 입가 주변에 작은 물집이 생기는 피부병.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지만 이 바이러스의 특징은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한 번 이 헤르페스 균에 감염되고 나면 몸속에 계속 잠복해 있다가 몸의 컨디션에 따라 언제든 다시 재발한다. 나 또한 이 질병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무기력은 이 피부질환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이번 달도 마찬가지였다. 돈 공부 습관이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점, 회사에서는 조직개편 대상자가 되었고 설상가상, 갑작스럽게 퇴사자가 생긴 후 업무량도 급격히 많아졌다. 집에서 클래식이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심신을 달래도 겨우 붙잡은 의욕은 회사만 가면 낮은 포복으로 기어 다녔고, 스스로를 비난하는 언어들도 머릿속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눈물 제어 장치도 망가져 퇴근 후에 갑작스레 우는 날도 많아졌다.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다 보니 읽고 쓰기에도 게을렀다.


회복이 쉬이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원치 않은 환경에 강제적으로 노출되면서 생긴 정신적 피로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작은 물집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기력이 시작된 것이다.







5.

'아무것도 하기 싫다' 주말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었다. 마치 손과 발에 무거운 추를 단 것처럼 자꾸 바닥으로, 침대로 고꾸라졌다.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유튜브에서 '무기력을 극복하는 방법'을 검색하는 정도였다. 오늘 본 정신의학과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무기력증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유독 큰 사람들'이 걸리게 된다고. 즉, 완벽주의 기질이 다분한 사람들이 현실의 나와 이상의 나 사이의 격차를 과도하게 느끼면서 "나는 잘 못해 → 아무것도 하기 싫어"의 사고 패턴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었다.







6.

사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알고 있었다. '완벽주의'는 초등학교 성적 통지표에서부터 쓰여 있을 정도로 나를 끈질기게 쫓아다닌 스토커 같은 단어였다. 건조한 목소리로 무기력의 원인을 설명하는 의사에게 그래서 더욱 되묻고 싶었다.

"이놈의 완벽주의 강박을 내려놓는 방법을 좀 알려달라고요...!"


내 마음속 외침이 들린 걸까. 의사는 이어 무미건조하게 해결 방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무기력을 해결하려면 첫째, 목표를 낮춰야 합니다. 둘째, 사람들과 만나야 합니다. 셋째, 햇볕을 쐐야 합니다..... (생략)"


하아. 첫 번째부터 난관이었다. 어떻게 목표를 줄여야 하는 걸까?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영상을 본 지 5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사실 답을 모르겠다. 평상시 내가 어떻게 목표를 설정하고 어떻게 하루 일과를 계획하고 있는지 노션 기록을 가볍게 훑어보았다. 그렇게 계속 과거의 나를 반추하다가 조금 우스운 점 하나를 발견했다. 이 고민을 하기 시작한 오늘은 해야 할 일을 얼추 끝 맞췄다는 사실이다.








7.

'무기력을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유튜브를 본 후 샤워를 마치니 어질러진 책상이 보였고 하나 둘 제자리에 놓으니 며칠간 외면했던 노트북이 눈에 들어왔다. 미뤄둔 은행 볼 일만 조금 해보자 하고 PC를 켰던 것뿐인데 지금 일기 쓰기까지 무리 없이 이어가고 있는 내가 보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무기력 극복은 내가 유튜브를 통해 방법을 찾아 헤맬 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정확한 원인이나 해결 방법을 파헤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닐까.

무력감의 늪에 빠지기로 선택한 것도 나이고, 그런 자신을 건져줄 수 있는 것도 오직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동아줄은 내가 갖고 있다는 것.

오늘은 이것만 유념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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