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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슥슥 Apr 07. 2024

뜬금없이

에세이 드라이브 1주 차



오후 6시. 긴장되는 마음으로 메일을 열었다. 태재 님이 말한 대로 6시 정각이 되자 ‘[에세이 드라이브] 56기 주행을 시작합니다’라는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서둘러 클릭을 했다. 짧은 인사말 아래에는 파란 배경색으로 강조한 7음절의 단어가 쓰여 있었다. 첫 번째 글감등록. 내가 며칠간 기다렸던 낱말은 단 두 자였다. 등록. 앞으로 나는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발음하는데 2초도 되지 않는 이 어휘를 두 페이지 분량의 문장으로 길게 풀어써야 한다. 그 사실을 직시하자, 역시나 속마음이 기침처럼 튀어나왔다. “으, 하기 싫어”   




또 시작이다. 글 쓰기 싫은 진심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생각해 보면 웃긴 심보다.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내 손으로 태재 님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에세이 드라이브를 등록했으면서 대체 왜 이런 저항감이 드는 걸까. 나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쓰기에 대한 거부감은 이번만의 일은 아니었다.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있는 글쓰기 모임에 들어갔을 때도 미간을 찌푸리며 쓰기를 이어갔고, 호기롭게 독립출판을 목표로 했을 때도 울며불며 빈 페이지와 마주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쓰기 앞에서 내 얼굴은 대부분 밝지 않았다. 누군가 좋아하는 취미가 뭐냐고 질문하면 아주 작은 목소리로 ‘글쓰기’라 대답하고 혼자 양심의 가책을 느낄 정도로 쓰기에 대한 애정이 미약해져 있었다.      




그런 내가 대체 왜 에세이 드라이브를 등록할 생각을 했을까. 그것도 에세이 스탠드를 수강한 지 2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 뜬금없이 말이다. 아무래도 그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뜬금없이’라는 부사 안에는 내가 뭉뚱그린 어떤 상황과 감정이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950일 전, 당시 나는 망원역을 향하면서 혼자 배실배실 웃는 중이었다. 그것도 연신 실룩대던 입꼬리가 남사스러워 입술에 힘을 잔뜩 주면서 말이다. 나름 자중하는데도 그토록 미소를 감출 수 없었던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내가 쓴 글에 처음으로 호의적인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 귀에 들어온 말’이라는 글감이 어려워 며칠을 고민하다 마감일을 하루 앞두고 부랴부랴 써낸 글이었다. 냉정한 혹평에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하며 합평회에 참석했는데, 의외의 문장이 들려왔다.      


“혜리 님의 다음 글이 궁금해요.”      

윽. 말도 안 돼. 나도 모르게 ‘내 귀에 들어온 말’을 튕겨내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것은 감출 수 없었다. 물론, 긍정의 문장 외에도 다듬고 고쳐야 할 점들이 함께 언급되었다. 그럼에도 누군가 나의 뇌에 구간 반복 버튼을 누른 듯 저 문장을 홀로 곱씹다 보니 그렇게 길거리에서 홀로 히죽대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유난스러운 반응임은 알지만, 한동안 그 버튼에 의지해 글을 썼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버튼이 나를 조금씩 망가뜨렸다는 것도.      




언제부터 글쓰기가 싫어졌나 돌이켜보면, 바로 그때쯤이다. 내가 자꾸 누군가의 피드백을 ‘기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말이다. 블로그에 그저 개인 일기를 늘어놓았을 뿐인데도 나는 읽는 이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것도 이왕이면 기분 좋은 댓글이 달렸으면 하는 바람을 한가득 품고서. 하지만 기대감은 대체로 실망과 동행하는 법. 실력은 갖추지 못했으면서 이상한 모양새로 부푼 나의 기대는 채워지기 어려웠다. 형식적인 인사말이 오갈 뿐, 블로그 이웃들은 사사로운 일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브런치 이웃들과도 애매한 댓글로 허술하게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는 와중에 나의 글쓰기 예열 시간은 갈수록 길어졌다. 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지조차 잊은 채 네이버 국어사전 유의어를 지나치게 살펴보며 단어를 골랐다. 그때의 나는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물집처럼 부풀어 있었다. 얼마 안 가 맥없이 터지고 마는 의미 없는 수포인 걸 알면서도 타인의 인정을 맹목적으로 갈구했던 것이다. 외적 동기는 보상이 없으면 힘을 잃는다고 했던가. 남을 기준으로 삼고 쥐어짜듯 글 쓰는 내가 쓰는 즐거움이 옅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여 아주 오랜만에 글감을 마주하고도 다시 이런 마음이 들고 말았다. 

‘아, 쓰기 싫어’      








여전히 난 쓰기의 기쁨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에세이 드라이브를 등록한 건 나 또한 궁금해서다. 좀처럼 쉬워지지 않고, 쓰는 과정에서 번번이 실망하는데도 왜 나는 계속 쓰기를 부여잡고 있는지 나조차 모르겠으니까. 이번 온라인 글쓰기로 그 단서를 찾고 쓰는 즐거움을 작게나마 만회하면 좋겠다.





1주 차 글감 :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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