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드라이브 3주차
자, 수업 이야기는 이쯤 하고
첫날에는 꼭 해야 하는 게 하나 있죠.
우리 이제 자기소개를 시작해 봅시다.
맙소사. 설마 했던 일이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편집 디자인 수업의 첫날. 나는 그때 첫 줄, 첫 번째 자리에 앉아 홀로 몸이 굳어지고 있었다. 이변이 있지 않는 한, 운을 떼야 하는 첫 타자는 나임이 분명했다.
뭐부터 이야기해야 하지? 이름? 나이? 했던 일? 이 수업을 등록한 이유? 허겁지겁 나에 관한 신상 정보가 뒤엉켜 떠오르던 순간, 강사님의 다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부터 할까요? 앞부터? 아님 뒤부터?”
오, 배우신 분이다.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시다니. 강사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곳저곳에서 소리가 쏟아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음성은 다름아닌 내 옆에서 터져 나왔다. “뒤에서요!!” 검정 가죽 자켓을 입은 남자 수강생이었다. 목청 큰 그 덕분에 한순간 순서가 달라졌다. 무려 처음에서 끝으로. 그게 뭐라고 얼굴에 화색까
지 돌며 뒤에서부터 들리는 타인 소개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흐름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수강생이 마치 짠 것처럼 이름과 나이, 했던 일과 수강 이유를 차례대로 말하고 있었다. 그 공식에 내 정보만 살포시 얹으면 될 일이건만 이상하게 시간이 흐를수록 내 얼굴엔 당혹감이 서렸다.
왜냐고? 그들이 내뱉는 숫자가 생각보다 훨씬 어렸기 때문이다. 수강생의 평균 나이는 많아 봐야 20대 후반이었다. 한두 해 정도 사회생활을 하다 경로를 바꾸려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뽀송한 얼굴로 대학을 막 졸업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 취업을 목표로 하는 국비 지원 수업에서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는 흔할 수 없겠지. 하지만 ‘3’이라는 숫자가 이토록 희귀할 줄은 미처 몰랐다.
어느새 나는 다른 이의 소개말에서 숫자만 걸러 듣고 있었다. 귀를 세우고 사람들의 나이에만 주목한 것이다. ‘2’라는 숫자가 거듭해 나오자 순간 어떤 이미지 하나가 그려졌다. 내가 저기 먼 뒷좌석에 앉아있는 모습. 그 멀찍한 거리감에 마음이 휑했다. 외로운 상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내 차례. 허둥거리며 일어나 입을 열었다.
“이혜리라고 하고요. 홈쇼핑에서 MD 일을 하다가 성격상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수업을 등록하게 되었어요. 음 나이는...... 30대입니다.”
사실을 말했으나 어쩐지 찜찜한 소개. 애매하게 가린 나이를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데도 왜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인지 자리에 앉아 한참을 부채질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런 다짐도 했던 것 같다. 앞으론 친목이고 뭐고 무조건 수업에만 몰두하자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평일 9시부터 6시까지 진행되는 수업은 그 자체로 내 혼을 쏙 빼놓았다. 포트폴리오 제작을 위한 일만으로도 정말이지 하루가 모자랐다.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나면 카드뉴스를, 카드뉴스를 완성하고 나면 브로슈어와 북커버를 매만져야 하는 식이었다. 10년 가까이 엑셀만 다루던 직장인이 어도비 프로그램을 제대로 켤 수나 있을까 싶었는데, 그런 우려가 무색하게 빡빡한 스케줄은 내 몸을 알아서 단련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포트폴리오 페이지는 어떻게든 채워나가고 있는 반면에 관계의 페이지는 여전히 빈 상태였다. 가까이에 앉은 옆자리 수강생과 일러스트 툴 기능을 서로 물어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말을 섞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매월 제비뽑기로 자리 교체를 해야 했던 규칙도 나의 낯가림력(力)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어차피 5개월이면 헤어질 사람들인데 뭘’
실제로 수업 기간 중 자주 했던 생각이다. 돈독한 관계를 만들기엔 기간이 짧고, 정을 나누기엔 애매한 인연이라는 걸 내포하고 있었으나 사실 나 또한 알고 있었다. 스스로 세운 벽을 허물 자신이 없어 내뱉는 허술한 핑계라는 것을.
입도, 마음도 굳게 닫혀 있던 내가 빗장을 연 날은 허무하게도 수업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은 수강생 전원이 함께 쓴 롤링페이퍼를 확인하는 날이기도 했는데, 이때 예기치 않게 내 이름이 여러 번 거론되고 말았다.
마지막 날이 주는 애틋한 분위기에 취해 숨겨두었던 속내를 여러 명의 종이에 털어놓은 게 이유였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모니터만 보던 사람이 갑자기 롤링 페이퍼에 진심을 고백한 것이다.
이후 어디선가 “혜리 님 글 보고 놀랐어요”라는 말이 나오더니 곧이어 “저도요.”, “나도”, “나도 그래”라는 대답이 순식간에 이어졌다. 묘한 광경이었다. 뭐랄까, 내가 꼭 키팅 선생님이 된 것 같았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강제로 학교를 떠나는 그를 향해 학생들이 비장한 얼굴로 하나둘씩 책상 위에 오르던 그 엔딩 장면처럼 말이다. 학우들의 얼굴이 영화 등장인물처럼 심각하진 않았지만 내 고백의 수신자들은 어쩐지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것 같은 얼굴이랄까.
.
벌써 1년이나 지났지만 이때를 떠올리면 잠시 멍해지고 만다. ‘2’와 ‘3’이라는 숫자를 두고 생각이 많아져서다. 그땐 왜 몰랐을까. 아득해보이는 나이도 사실 몇 마디의 진심이면 가까워질 거리였는데.
+ 덧.
종강하고 며칠 뒤,
친화력 좋은 한 명의 학우가 이런 그림을 보내왔다.
3주차 글감 :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