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받는 기분
'환대'라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로 번역되는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 태어나서 듣지도 써보지도 않은 단어를 에어비앤비에서 일하며 처음 알게 됐고, 이제는 종종 눈에 띄는 것을 보니 업계에서는 이미 통용되는 단어였나보다.
2013년 에어비앤비를 처음 사용하고 지금까지 100번 넘게 에어비앤비에 묵으며 환영 받는 느낌, 그러니까 '환대'가 어떤 건지 다양하게 경험했다. 일본처럼 집이 작은 나라거나 친구와 함께 여행하는 게 아니라면 주로 호스트가 함께 머무는 '개인실'을 골랐기 때문에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녁에 들어오면 와인 마실 건데 피곤하지 않으면 같이 한 잔 하자고 불러준 싱가포르 홀랜드 빌리지의 호스트 마린(떠날 때까지 거의 매일 저녁에 호스트 부부와 와인을 함께 했다.) 출장 때마다 묵어 이젠 그냥 내 집 같은 샌프란시스코 돌로레스 파크의 호스트 켈리는 주방 리모델링 기간 동안 게스트를 받지 않으려 캘린더를 막아뒀는데 내 일정에 맞춰 특별히 열어주기까지 했다.
2022년 11월 아주 다른 종류의 환대를 경험했다.
전 세계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회사 정책 덕분에 3개월 간 한국에서 일하려고 들어왔고 한국 들어오면 매번 방문하는 제주에서 2주 정도 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침 올해부터 제주에서 일하는 친구 집에서 머물기로 하고. 남편은 아직 제주 발령을 기다리고 있어 방이 남는다며. 그렇다면 숙박 걱정 없이 제주에서 일하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하루이틀 정도 휴가 내고 제주를 즐기면 되겠다는 생각으로(엄청난 착각이었다) 편도 비행기 티켓을 들고 날아갔다.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친구 비행편에 맞춰 월요일 저녁 비행기를 탔고 제주공항에 세워뒀던 친구 차를 타고 함께 집으로 향했는데 집에 발을 들여놓고 30분만에 '아 잘못 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혀 환영 받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공항 주차장에서부터 이미 살짝 당황했다. 차 트렁크에 짐을 실으려는 나에게 "트렁크에 자리 없어" 하면서 뒷자리에 실어야 한다는데 짜증까진 아니나 귀찮음이 묻어나는 말투. 주차장에서 아파트로 들어오는 입구 비밀번호를 묻자 그냥 카드키 쓰면 된다며 역시나 피곤한 기색. 집에 들어오자 방과 욕실을 보여주며 어떤 스위치를 건들지 말라고 다른 건 알아서 쓰라고. 변기가 쉽게 물때가 끼니 조심해달라고. 타올이 어딨냐고 묻자 "개인 타올 안 가져왔어?"라고 되묻는 친구.
결정적인 건 헤어드라이기를 같이 쓰게 친구 방 욕실이 아닌 거실에 꺼내놓아줄 수 있냐고 묻자 안 가져왔냐며, 코드 꼽았다 뺐다 하기 번거롭다며 곤란해할 때였다. 난 이미 자기 일상으로 지치고 힘든 친구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주눅이 들고 눈치를 보는 상황이어서 얼른 지인에게 빌려보겠다고 말했고 차를 빌려주기로 한 제주 사는 오랜 지인에게 혹시 헤어드라이기 여분이 있는지를 물었다. 있다고 빌려주겠다고 바로 답이 왔고, 더 감동이었던 건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다음날 아침에 필요한 거 아니냐고 물어본 것. 필요하다고 하면 그 시간에 당장 갖다줄 기세였다. (다음 날 차를 빌려줄 때도 오랫동안 주차장에 세워둔 차라 남자친구가 일부러 타이어도 갈고 배터리를 충전시키기 위해 한참 몰고 다니다 갖다주며 나를 또 감동시켰다.) 그렇게 나는 환대의 기본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거구나 생각하며 심란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심란함과는 별개로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집에 누군가를 들이는 게 편하지 않은 게 분명한 친구가 방이 남는다고, 제주 오면 와 있으라고 해준 것부터가 어쩌면 내 친구로서는 엄청나게 환대를 해준 것일 지도. 나도 누군가를 내 집에 재워본 적이 없고 게다가 예민한 사람이라 친구의 행동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어쩌면 큰맘 먹고 나를 불러준 것일지도.
차와 헤어드라이기를 빌려준 환대가 천성인 제주 지인은 자기 집에 와 있으라며 방도 치워놨다고 여러 번 말을 꺼냈고 예약이 말도 안 되게 어려운 버터모닝을 두 번이나 예약해주며(무려 40-60통 전화를 걸어) 나에게 환대를 베풀어줬다. 매일 밤 12시까지 야근하고 주말에는 서울에 다녀와야 하는 내 친구와는 하루 한 번 아침에 인사를 할 뿐, 2주 묵는 동안 딱 한 번 식사를 함께 했다.
마음이 후끈하게 달아오를 정도로 온기를 내뿜는 지인의 환대, 눈치를 보게 되지만 속내를 헤어려보면 고마운 친구의 환대. 아주 다른 종류를 환대를 경험한 제주 워케이션이었다.
(참고로 나는 워케이션이 안 맞는 듯. 지척에 맛있는 음식과 드넓은 바다가 있는데 집에 갇혀 줌 회의만 하니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고, 견디다 못해 론치를 앞두고 무리해서 휴가를 냈다가 길에서도 자꾸 이메일 확인을 하다 결국 다음 날 휴가를 취소하고 아침 9시에 성산에서 제주시로 차를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