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과 졸업생의 PM 도전기 (1)
나는 현재 초기 IT 스타트업의 처음이자 유일한 PM(Product Manager)으로 1년 넘게 일하고 있다. 우리 회사는 프로그래밍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생성형 AI 기술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과 툴을 개발한다. 그런데 불과 1년 전만 해도,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IT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영어교육과 졸업생이다.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을 선호하는 성향 때문에 교사나 공무원이 되는 것이 늘 꿈이었고, 대학교 3학년을 마친 2023년에 휴학을 하고 행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내 역량과 열정이 부족했던 걸까,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점수를 받은 나는 결국 고민 끝에 눈물을 머금고 빠른 포기를 결심했다. 오랫동안 계획해온 길이 틀어지면서, 나는 한 학기 만에 다시 복학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2023년 2학기는 정말 미친 학기였다. 공무원이라는 꿈에 대한 마지막 미련과 조기 취업에 대한 희망을 안고, 11월까지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학교 생활도 병행했다. 또, 앞으로 선택할 새로운 진로에서는 학점이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체육 교양 6개를 포함해 총 21학점을 신청했고, 이 악물고 수업을 들은 덕분에 4.25/4.5의 성적으로 사범대 최고 권위 성적 장학금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아리, 대외활동, 인턴 기회를 계속 찾아봤고, (당연히 불합격했지만) 네이버 인턴에도 지원해보았다. 이런 탐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IT 회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문득 휴학 직전이었던 2022년 2학년에 들었던 파이썬 교양 수업과 교육 공학 전공 수업이 떠올랐다.
고3 정보 시간에 배운 파이썬이 꽤 재미있어서, 나는 대학에서도 꼭 파이썬 교양 수업(컴퓨팅 기초: 처음 만나는 컴퓨팅)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전공과 필수 교양을 먼저 치우느라 결국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수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수업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나는 밤을 새워 나만의 파이썬 게임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수업에서 배운 것 이상으로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대학에 들어와서 그렇게 몰입하며 강한 도파민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놀랍게도, 이때는 아직 챗GPT가 나오기 전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서 어떻게 그렇게 해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교육 공학 전공 수업에서는 에듀테크 서비스들을 조사하고 활용했는데, 파이썬 교양 수업과 함께 시너지가 나면서 자연스럽게 기술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IT 기업은 물론, 애초에 회사원이라는 직업 자체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시험 준비를 위해 휴학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이 내 진로로 이어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다시 복학 후의 2023년 2학기로 돌아가 보면, 나는 학교와 병행하며 준비한 7급 공무원 1차 시험에서 1점 차이로 떨어지게 되면서, 11월 마지막 시험을 끝으로 새로운 진로와 직무에 대한 치열한 탐색을 시작했다. 로스쿨, 마케팅, 경영, 교사 등 고려해보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그러던 중, 정말 우연히 인터넷에서 PM이라는 직무를 알게 되었고, 또 몇 주 뒤에 에브리타임에서 스프링캠프 스타트업 인턴십 매칭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14개 회사 중 딱 한 군데가 100% 재택, 100% 유연 근무제에, PM 인턴을 유일하게 뽑고 있었다. 나는 PM 인턴 공고가 귀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마케팅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기에 '안 되면 말고~' 하는 생각으로 가볍게 지원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서류 전형에 합격하고, 실시간 과제가 동반된 실무 면접과 임원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을 했다. 실무 면접 전날, 학교 도서관에서 PM 관련 책 5권을 빌려 빠르게 훑었는데, 나중에 면접관께서 실무자라고 생각될 만큼 면접을 잘 봤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종강 직후인 12월 18일에 인턴으로 입사했고, 내 재능을 알아봐준 이 회사에서 지금까지 PM으로 정규직 근무하고 있다.
간혹 내가 어떻게 PM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이 긴 스토리를 들려주면 굉장히 좋아한다. 방황하는 청춘의 반짝이는 열정이 느껴져서일까. 좋은 대학교에 들어간 것 치고는 공부 하기를 정말 정말 싫어하는데, 나에 대해 알아가고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며 미래를 향해 계속 발전하는 것에는 집착에 가까운 욕심을 가진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랄 때가 많다.
이 경험들을 통해 나는 인생이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름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시험 준비는 늘 무언가에 가로막히는 느낌이었고, 반면에 별 생각 없이 도전했던 PM이라는 길은 한 번에 활짝 열렸다. 결국, 뚫리는 길이 내 길이자 내 운명인 것 같다. 1년 전만 해도 내가 PM이라는 진로를 선택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1년 후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지금도 나는 계속해서 탐색하고 도전하며, 그다음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