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 - 태명 짓기
아이가 생겼다.
다들 묻는 첫 질문은?
'태명이 뭐예요?'
태명은 사실 나의 몇 주간의 쇼크상태가 슬슬 가라앉고 있을 때 남편과의 장고 끝에 정했다. 우리가 아이를 가진 곳은 추정하건대, 가평 아침고요 수목원. 조카의 첫 탄생을 목격하고 놀러 간 곳에서 나도 새 생명을 만들어냈다.
지명과 연결하여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평이, 두부, 아침이, 잣 등등등.. 토속적인 것은 죄다 남편의 아이디어. 우리 아이가 가평이라는 구수한 태명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못마땅했던 나는 '콩이'라는 태명을 제안했다.
콩이라는 태명을 떠올린 것은 사실 초기에 둘이 심하게 싸우던 시절.
식탁에 올려져 있던 첫 초음파 사진에서였다.
둘이 손을 잡고 찾아갔던 야간 응급실에서 받은 콩만 한 아기집이 있는 사진을 보며, 우리 아이의 존재를 선명히 각인했던 순간이었다. 이윽고 이어지던 며칠간의 싸움 중 아침마다 출근길에 눈에 밟히던 그 사진 덕에 나는 임산부로서 존재를 인정하고 아이도 인정하고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야 말았더랬지.
콩이 군은 그렇게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웃픈 스토리.
그 무렵 한 편의 영화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는데, 바로 '너의 이름은' 이란 일본 청춘 애니메이션물! 난생처음 누군가의 이름 짓기를 수행했던 터라 제목만으로도 나의 흥미를 끌었다.
하지만 초기라 거동이 불편했기에 흥미만 가진채 넘어갔었더랬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들이 인기를 얻은 경우는 꽤 있었지만, 동글동글 귀엽지도 소년 소녀들이 나오는 애니들은 나 같은 일덕들에게나 소비되곤 실제 상영관에서는 사라지기 일수였기에 너무나 이상해 보였다. 하지만 몇 달 뒤 영화를 보곤 몇 가지 이유들을 추정해 볼 수 있었다.
*스포일러 포함
한 지방에 사는 소녀 미츠하는 신사에 거주하며 예비 무녀로 행사를 치러내는 독특한 시골소녀이다. 남주 타키 군은 대도시 도쿄에 살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평범한 남고생.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 둘의 몸이 바뀌기 시작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여기서 흥행 포인트로 추정되는 하나, 성별 체인지 판타지이다. 이 뻔한 설정은 관습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들에서 소비되어왔는데, 90년대 영화 체인지에서부터 최근에는 너무도 시대적 인물이 되어버린 여주인공 길라임이 등장하는 시크릿 가든까지.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쉽게 발견해볼 수 있다. 김건모의 명곡 핑계에서도 나오듯 '내게 그런 핑계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이 지구 상에 남녀란 성별이 등장하며 오랜 시간 동안 풀리지 않았던 숙제는 바로 남녀라는 이질적 존재의 속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 즉 입장 바꿔 생각하기였다. 사실 트랜스를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타 성별의 고충을 이 성별 체인지를 통해서는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해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소재인가! 하지만 이것만으로 흥미를 끌기엔 약하다.
두 번째로 추측한 것은 신카이 마코토 효과! 초속 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 등에서 익히 보아온 안구를 정화시키는 서정적인 그림체 덕도 있을 것이다. 전체 풍경이 굉장히 세밀하고 맑게 묘사되다 보니 보는 내내 자연경관을 보는 느낌이 든다. 타키와 미츠하가 시간을 넘나들때도 도쿄와 시골의 장면 전환은 스펙터클한 실사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현실같은 풍경 속에서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몸이 계속 바뀌어가는데 점점 익숙해지며 자신들만의 룰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몸이 바뀌지 않게 되며 타키는 그녀가 살던 곳을 추적해나간다. 그리고 발견된 실마리는 미츠하가 마지막으로 보려고 했던 혜성! 혜성의 조각이 낙하하며 초토화된 마을을 자료에서 찾아내며, 타키는 의문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바로 이들은 3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서로의 몸이 바뀌었던 것! 운석 낙하라는 대재앙이 발생하고 미츠하의 시간은 끝나 있었다. 과연 타키가 미츠하를 구할 수 있을지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숙제가 된다.
갑작스러운 재난을 겪고, 이를 막기 위해 주인공이 노력한다 라는 영화 속 설정에서, 2011년 대지진을 겪었던 일본도, 2013년 세월호 사건을 겪은 우리나라가 왠지 모르게 겹쳐져 보였다.
여기서 세 번째 포인트, 극적인 영화적 설정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다는 추측을 해보게 된다.
산자락을 열심히 뛰어다니는 소년, 소녀의 마음에 빙의해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싶었던 우리의 마음을 투영할 수 있다. 이름을 기억해내야만, 그녀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 작위적일 만큼 반복적으로 "너의 이름은?"을 외치는 소년, 소녀들에게서 우리는 어떠한 간절함이나 잊지 않으려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나눠보는 것이다.
기억해내지 않으면 결국 추억 저 뒤편에서 잊게 된다. 영화의 흥행 성적에서, 같은 상흔을 가진 국민들의 희생자들을 기억해내려는 마음을 읽어볼 수 있었다면 확대해석일까.
이 글을 쓰는 사이, 마침 2017. 4.16 3주기를 지났다. 다시 영화를 보고 싶어 졌다.
태아에게 이름을 지어주며, 그것을 부르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안에 있는 존재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콩이야"
라고 부르는 순간, 아이와 나는 한층 더 가까운 존재가 된 것 처럼 느껴졌다. 친구처럼, 가족처럼, 보호해야 할 절대적 존재로써 콩이는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점점 낯선 어떤 존재에서, 내 일부로, 잊고 싶지 않은 중요한 이가 되었다.
우리 아이는 언젠가 콩이가 아닌, 진짜 등본상의 이름을 갖게 되겠지만, 이 태명 짓기라는 작은 행위가 우리의 행복한 관계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길 바래본다. 매주 차마다 네가 아프지 않길 떨며, "너의 이름을" 불렀음을 기억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