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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을 떠나서(17)

ep. 17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태어나 겪는 일

by 에미꾸

한국에 있을 때 나를 만나는 모든 이탈리아 사람들은 나에게 '천천히'와 '걱정 없이'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나는 '그러니까 너희가 그렇게 살지'라고 대답했다.(웃음)

(속으로 대답했지만 무식한 발언이었다. 변명하자면 당시 유럽사람과 일처리에 지쳐있었다. 사실 아직도 행정처리와 일처리는 유럽을 따라가고 싶지 않다.)


'빨리빨리'라는 표현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식어가 된 것에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다. 모두 극한의 효율을 사랑하는 민족이 되어버렸는데, 이로 인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국가가 발전하여 지금 나의 세대는 무척이나 풍요로운 사회 속에서 자랐고, 잘 먹고 잘 배운 세대가 어른이 되어 만들 미래는 아마도 더욱 편리하고 살기 좋을 것이다.


모든 것에는 이면이 있어, 급격하게 변하는 세대 속에서 '삼포세대'라는 단어가 생겨났는데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뜻이다. 가치관이 변해 양상이 바뀐 것도 맞지만 모두가 만들어 놓은 기준점들이 너무 높아 애초에 시작하고 해낼 자신조차 생기지가 않는다. 나는 결혼도 출산도 하고 싶지만 아직도 학생이다. 이후 결혼과 출산을 하기 위한 신체적 나이도 자본도 없어 지금 이것들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에 가깝다.


대부분 유치원부터 몇 살에 무엇을 하는지가 정해져 있고, 그래야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이 경쟁사회 속에서 생각보다 맘 편하게 있기란 무척이나 힘들다. 그러니 마음속에 늘 '나는 잘 살고 있는가'라는 불안이 있다. 어린 시절 나는 그 누구보다 여유롭고 느긋한 사람이라 엄마의 속을 터지게 했지만 지금은 불안감에 잠식되어 잠도 못 자고 노래도 못하게 되었다.


이탈리아가 우리나라랑 기압이 달라 피로함을 많이 느낀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불면증은 사라졌다. 보통 3-4시에 잠들어 7-8시에 일어났는데 요새는 12시면 잠에 들고 8시에 일어난다.


오늘 이탈리아에 도착해 3회 차 레슨을 마쳤다. 1회 차 때 엄청난 혼란과 좌절을 겪고 무너지고 있으니 감사하게도 원장선생님이 나서서 솔루션을 주셨다. 내가 메조소프라노의 목소리와 자연스럽게 소리 내는 방식을 가지고 있으니, 시험이 얼마 안 남은 때에 메조소프라노로 공부하여 시험을 치면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나는 이미 수 차례 파트 변경을 했다. 처음 소프라노로 시작해 23살 정도에 메조소프라노로 바꿔야 한다는 대가의 말을 듣고 메조소프라노로 꽤 오랜 시간 공부해 왔다. 또 2년 전 다른 대가가 '힘들겠지만 시간을 들여 소프라노로 파트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돈을 벌 것이다'라는 얘기를 듣고 유학을 떠나기 전 고생고생 하며 소프라노로 파트를 다시 바꿨다.


'소프라노는 높은음이고 메조소프라노는 낮은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악기를 바꾸는 일이라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곡도 다를뿐더러 악기를 이렇게 갈아 끼우는 일이 흔치는 않다. 바이올린 전공이 비올라로 비올라 전공이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원장선생님의 말로는 대체로 10%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거쳐 자신의 파트를 찾아간다고 하셨고, 내 목소리 자체가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소리라고 하시니 용기가 생겼다. 좀 고생하면 어떠한가. 결과만 좋으면 됐지. 원장선생님께서 곡도 봐주시고 출장을 떠나시기 전 레슨도 수 차례 해주셨다.


내 나름대로의 잘해보자고 하는 열심이었고,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첫 수업을 마치고 3일 이내에 일어난 일로 첫 회 레슨을 마치고 난리를 친 것이 담당선생님의 기분을 상하게 했나 보다. 긴 문자가 도착했다. '이제 겨우 한 회차의 레슨을 마치고 무엇을 어떻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니? 제발 나에게 너의 고민을 직접 나누고 몇 주의 시간을 믿고 맡기지 않겠니?'


화, 금이 레슨을 받는 날인데 금요일 레슨 후 다음 주 화요일을 못 기다리고 난리를 친 것은 맞다. 그러나 이미 이탈리아사람들의 'Piano piano'(천천히 천천히)가 걱정되고 불안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원과정의 시험은 학교마다 1년에 한 번씩 6월 혹은 9월에 이뤄진다. 9월까지 시험이 이어지면 너무 심리적인 압박이 심할 것 같아 6월에 시험에 통과하기를 바랐고, 몇몇 학교는 3월 말까지는 제출할 비디오를 준비해야 하기에 하루하루가 피가 말랐다.


아이러니하게도 피가 마르니 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2회 차 레슨을 마치고 내 담당선생님은 너의 문제는 목소리도 파트도 아닌 정신이며 불안감을 던져버리고 노래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기쁘게 노래하기 위한 기술들을 배워야 하는데 매일 조금씩 작게 하고 6월 시험이 안되면 9월에 통과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부분은 아직까지 동의하지 못했다. 9월에 안되면? 상상하고 싶지 않다.)



아이로 돌아가 초보적이자만 모든 것의 근간이 될 수 있는 것을 알려주셨다. 이 부분은 원장선생님의 솔루션과 완전히 겹치는 부분이었다. 성악 전공자로 오랜 시간 노래한 사람들에게 미래를 위해 당분간 볼품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꽤나 힘든 일이다. 항상 좋은 목소리와 노래 실력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야만 일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사실 프로세계에선 당연한 일이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태까지 쌓아왔던 것을 버리길 두려워하고 초보자의 상태로 가고 싶지 않아 한다. 누가 초보에게 돈을 주겠는가.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남의 시선을 잘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원래 가지고 있는 성격도 그런 데다가 말도 안 되는 무시를 당한 긴 시간들이 나에게 큰 상처와 모멸을 줬지만 반대로 엄청난 인내심과 겸손함을 주었기 때문에 나는 필요하다면 곧장 초보단계로 돌아갔다. 이건 내가 그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


단 하루 모든 것을 다 잊고 기초로 돌아가 쪽팔린 연습을 했다. 레슨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된 오늘은 3일 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의 성장이 있었고, 드디어 노래다운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 마이너스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0이나 10으로 올라온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내 실력이나 목소리에 대한 자신감은 늘 있다. 하지만 나의 궁긍즘은 '도대체 왜 이 재료를 활용하지 못해 절망하는가'이다.


모든 것을 다 내어버리고 이탈리아로 나오면서 결심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노래의 즐거움을 다시 찾는다.

둘째 끝까지 가보고 가망이 없다면 이제는 그만둔다.


이 두 가지를 마음에 새기며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인간적인 매력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펼치며 살아보고 있다. 자연스러운 상태의 나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다.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빨리빨리의 민족으로 살아왔던 것과 반대로 느리게 걸어가야 한다. 나중에 조립이 잘 되고, 내 불안감이 확신으로 바뀔 때 분명히 가속이 붙을 것이다. 이미 늦은 사람이라 빨리빨리 되길 바랐는데, 역시나 안된다.


속도에 치우치기보다는 성실함에 치우쳐 보려고 한다. 그러면 다음 주에는 내 노래가 조금 더 즐겁게 들리지 않을까?





추혜미 사용법을 익히는 사진들. '오운완_오늘 운동 완료'처럼 '오연완_오늘 연습 완료'를 사진으로 남긴다. 위 두 사진의 포즈는 무언가를 잘 못할 때 흔히 '똥을 싼다'라고 표현하는데 친구들에게 '연습실에서 똥 싸는 중'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사진을 보내 대화의 포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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