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 다녀왔다.
출산 후 첫 한국행이었다. 임신 중기에 다녀왔으니 대략 1년 만에 다시 가는 셈이다. 출발 하루 전까지 한국에 가는 것이 전혀 실감이 나질 않았다. 남편에게도 우리 지금 한국 가는 게 맞냐고, 너랑 나랑 아기랑 셋이서 가는 게 진짜 맞냐고 몇 번이고 다시 물어봤었다. 내가 지금 장거리 여행하러 가는 게 맞는 건가 짐은 뭘 챙겨가야 하나.. 하면서 머릿속엔 온갖 잡생각들이 넘쳐 났지만 그것뿐이었다.
짐은 뭘 챙겨야 하는지 아기 컨디션은 좋을는지 처음 보는 낯선 땅과 낯선 사람들, 낯선 말을 보고 듣고 적응은 잘할는지 걱정거리가 태산이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많이 설레었나 보다.
편도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기 안에서 아이는 많이 힘들어했다. 어른도 힘든데 갓 6개월이 지난 이 작은 아이는 오죽했을까. 나 좋자고 이 고생을 시키는 게 맞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기내에선 잠을 통 자질 못했다. 기내의 건조한 공기, 생전 들어보지 못했을 소음, 한 공간의 수많은 사람들의 인기척이 많이 거슬렸을 것이다. 덕분에 내내 엄마 팔에 안긴 채 토끼잠을 자야 했다.
부모인 우리는 말해 뭣할까. 기내식은 교대로 먹었으며 20분을 채 눈을 붙이지 못했고 팔에 늘 안고 다니느라 어깨와 목이 뻐근했다. 그렇게 피곤에 찌들어 도착한 한국은 너무나도 반가웠다.
이탈리아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이탈리아에 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이들에게는 이방인일 뿐이다. 이곳 말을 잘한다고 해서 그들과 같아질 수는 없다. 때로는 주눅도 많이 들고 항상 긴장하며 산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하니 마음이 후련해지는 느낌이다.
다행히 아이는 잘 적응해서 무난히 일정을 소화했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해결 못한 일은 다음 기회가 있으니 마음이 쓰이지 않지만 친정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걸린다. 해외에 나가 사는 딸은 불효녀가 된다. 더욱이 아이까지 낳고 사는 경우는 더더욱. 부모님을 뵈었을 때 다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지만 아쉬움과 미안함이 짜증으로 튀어나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말다툼으로 까지 번지게 된다.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마지막 날까지 부모님은 손녀딸을 오래도록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너무나 아쉬워하셨다. 나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두가 외국에 사는 내 탓인 것만 같다. 눈물이 펑펑 흘렀다. 마중하는 부모님을 볼 수가 없었다. 자식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는 것이 어떤 건지 부모님의 마음이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내가 떠나는 게 슬퍼서가 아니라 미안해서 뒤돌아 볼 수가 없었다.
출국길의 마음은 비교적 가벼웠다. 짧은 일정이 아쉬워서, 부모님의 배웅이 힘들어서 마음이 무거울 줄 알았는데, 내 삶, 내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편안했다. 남편과 아이, 셋만 있으니 마음이 편안했다. 가족을 만들고 가정을 이루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한국에 내가 20년 이상 살던 집이 있는데 그 집이 불편해졌다. 고작 1년 산 이탈리아 집이 내 집이라니. 이 6개월도 안 된 작은 아이가 이렇게 내 삶을 바꿔놓다니. 참으로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