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때는 모르는 것들을 이제는 알게 되었고, 이런 지식과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학교에 입학하면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더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건 오산이었다.
아주 whole new world가 펼쳐졌다.
아마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 뉴질랜드여서겠지??
일단 오클랜드 대학교는 시내에 여러 캠퍼스가 있다. 한국 대학교들은 대학 캠퍼스라고 하면 일단 건물들은 한 테두리? 울타리? 안에 있지 않은가? 여기는 테두리 조차 없다. 그냥 조금 걷다보면 "UOA(University of Auckland)" 엔지니어링 건물, 조금 더 걷다보면 UOA 교육학과, 이런식으로 차를 타고 한 10분을 가도 UOA 스포츠학과, 간호학과, 의예과 등등이 마구마구 튀어나온다. 마치 도시 하나가 전부 캠퍼스인 느낌이다.
영화에서만 보던 그런 캠퍼스 라이프이다ㅋㅋㅋ
하지만 그만큼 이 환경이 낯선 나에게 강의실을 찾는 것 자체가 아주 고난이도이다.
건물 이름과 강의실 이름이 숫자로 되어 있어서, 어떤 건물에 들어가야 하는지 들어간 그 건물이 맞는 것인지 수시로 확인해야 하고, 하루에 여러 강의가 있는 날이면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를 이동해서 다른 건물로 찾아 들어가야 한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참석해지만, 흐음.. 별로 크게 도움이 되는 정보는 없었다ㅋㅋㅋ
국제학생 오리엔테이션은 이 나라에 처음 온 학생들을 위해 뉴질랜드 나라에 대해서 소개하는 내용이었고, 내가 필요한 실제적인 정보가 별로 없었다.
오호호... 입학 첫째주에는..
사람들이 왜 안정적인 직장 혹은 (지루한 삶)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깊이 깨닫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이 별로 없었다.
여기가 아카데미와 연구를 중요시하는 대학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간호학과 100명 중에 나와 비슷한 또래는 10명도 안 되어 보였고, 나머지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온 만으로는 17~18세인 친구들이었다. 우리 회사 인턴들도 이들보다는 나이가 많았는데..ㅎㅎ
일단 국제학생, 나이가 30, 영어는 잘 못하고, 문화도 다른 내가 이들과 공통점을 찾아서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역할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여기 오니까 회사에서 당당하게 나돌아다니던 나는 사라지고, 괜히 목소리는 작아지고 생각이 들어도 말로 내뱉지 않고 그냥 조용히 수업만 듣는, 공부만 열심히 하던 20대 대학시절로 돌아가버렸다. 그 정도도 예전보다 더 심하게ㅎㅎㅎ
일단 버티자! 30대가 되고 내가 배운 건 일단 시간은 간다!이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것들이 익숙해지고, 낯선 얼굴들과 문화에도 점차 적응이 된다. 실제로 그랬다.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2학기가 지나니 내가 마치 오클랜드에 온지 10년은 된 것인 마냥 학교의 시스템과 건물, 강의실 위치가 아주 익숙해졌다. 첫 강의 때는 하루 전날 미리 근처에 가서 강의실을 확인했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강의실에서 시험을 본다고 해도 30분 전에만 도착하면 문제 없이 찾아낼 수 있었다.
노란 머리 하얀 얼굴 외국인들도 계속 보다보니 익숙해졌고, 뭔가 잘 지내고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그냥 저냥 아는 사람으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되어야 하는 거는 아니니까! 그러다가 그나마 나와 비슷하게 직전에 회사를 다니다가 다시 학교에 입학한 동양인 2명과 같이 다니게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결국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이 다니게 되는 거니까.
대학생의 좋은 점이자 또 다른 나쁜 점은! 시간은 많지만 돈은 없다는 점이다.
스무살 때는 내가 진정한 사회인이 될 수 있을까? 학생이 아니라 내 앞가림을 하는, 용돈을 받는 삶이 아니라 주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에 대해 걱정을 했었는데, 이런저런 직장을 다니면서 그래도 누구나 어쨌든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 구나 라고 깨달았다.
직장을 다닐 때는 작은 돈이었지만, 그래도 통장에 매달 돈이 들어오니까, 가끔 비싼 레스토랑에 가기도 하고, 쿠팡으로 필요한 물건을 고민없이 사기도 했었는데, 대학생 때는 그러지 못했다. 필요한 물건이라고 생각이 들어도 가장 싼 것을 할인할 때 사거나 꼭 사야할 때는 물건을 짚어들고 '이거 정말 필요한 것 맞아?'를 몇 번이고 스스로 질문하면서 구매했었다.
회사 다니면서 벌어둔 돈이 있어서 그 돈으로 다시 학생이 되어도 괜찮다는 결심을 하고 뉴질랜드까지 온 것인데, 막상 매달 들어오는 돈은 없고 나가는 돈만 있는 이 현실에 다시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스무살 때는 나이라도 어렸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30대가 되어서 다시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며칠을 고민하는 현실이 좀 답답하게 느껴졌다.
대학생 때는 방학이 있으니, 이때는 합법적으로 놀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지금 다시 방학을 맞이하니 괜히 알바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나이가 드니 합법적으로 놀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건 없는 것이고, 그냥 다 똑같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니, 이 시간에 뭐라도 더 나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올라왔다.
하지만..ㅎㅎ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나는 대학생이고, 학업 스케줄 때문에 알바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ㅎㅎ 이 상황에 또다시 적응하게 되고 내가 언제 회사에서 일했는지를 까먹을 정도로 다시 열공모드로 빠져들어서 공부하고 놀고를 반복하다보면 다시 취직하게 되겠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