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으로 서른을 찍고, 회사를 퇴사했다.
나름 즐겁게 다니던 회사였는데, 여러가지 불만들이 있었고 일단 멈추고 싶어서 퇴사했다.
사람들은 이직할 곳을 알아보고 퇴사를 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했지만,
난 더이상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았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HR 파트로 일하고 있었고, 회사는 HR 컨설팅을 하는 곳이었다. 내가 느끼기에 내가 하는 일은 개발자 같은 전문지식이 크게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처럼 다가왔다. 물론 내가 가진 심리학적 지식을 가끔 업무에 적용할 수도 있었고, 머리를 굴려서 이런 저런 일들을 유능하게 처리할 때도 있었지만,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회사라는 곳은 결국 한 개인의 성장이 아니라 조직(공동체와 여러 사람들)의 성공을 위해 한 사람 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 같이 일반 직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회사의 요청"에 따라 어떤 새로운 일을 맡아야 하는 상황들이 수시로 생길 수 있는 곳이었다.
난 좀 더 전문직으로 일하고 싶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토대가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할 수는 없고, 어떤 난이도가 있어서 경험이 필요하고, 결국 그로 인해 내 자리가 쉽게 위협되지 않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공동체의 성공이 아니라 한 개인의 성장과 성숙에 초점을 맞춰 왔어서 더 그런 갈망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서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누군지도 모르는 회사라는 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고,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새로운 일.. 새로운 일.. 뭔가 새로운 것...
고민 고민하다가 한국을 뜨자는 결론이 낫다.
너무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었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화였다.
쉬는 법을 몰라서 쉴 때도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정신없이 떠들다가 지쳐서 잠이 들고,
일을 쉬고 싶어도 일을 쉬면 불안하니까 끈임없이 달려가고,
내가 뭘 좋아하는 지 언제 행복한지 고민할 시간도 없이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한국이니까 지속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사회의 기대에 맞춰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 문화에 젖어들어 사회가 원하는 대로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일단 한국을 벗어나기로 하고,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뉴질랜드를 선택하게 되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양이 인간보다 많은 나라라고만 들어봤다.
전 세계 여러 나라를 가봤지만, 오세아니아 대륙은 밟아보지도 않았지만, 그냥 막연히 새로운 나라에서 시작하는 것에 기대감이 가득 찼다.
뉴질랜드에서 내가 배운 심리학을 살려서 뭐라도 해보려고 상담 석사나 박사를 찾아봤지만, 이상하게도 외국인들을 잘 받지 않았고, 뉴질랜드, 뉴질랜드를 계속 검색하다보니 "간호사" 라는 키워드가 계속 나타났다.
간호사??
상담을 배우면서 임상심리사나 정신보건 계열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서, 간호사라는 새로운 직업이 아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mental health nurse 라고 정신건강 간호사가 될 수도 있고, 뭔가 오랜 작업을 통해 사람을 치료하는 상담사보다는 직접 간호를 통해 실제적인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간호사라는 직업이 재밌어 보였다.
그렇게 24년 10월 급하게 영어 점수를 만들고, 뉴질랜드 유학 박람회에서 만난 유학원을 통해 뉴질랜드에서 이름이 있는 오클랜드 대학교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렇게 지원서를 제출하고 기다리기를 4개월, 25년 3월 개강하는 스케줄이었는데, 2월 초가 되어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또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개강 2주 전에 드디어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고, 2월 중순에 뉴질랜드로 날아갔다.
그렇게 나의 30대는 뉴질랜드에서 갑작스럽고도 특이하게 다시 대학생이 되어 시작하게 되었다.